오늘도 베란다 한 구석에서 양팔을 벌리고 섰다.
내 앙상한 뼈대 위로 축축하고 묵직한 삶의 편린들이 하나둘 얹어진다. 젖은 빨래가 잔뜩 얹어져 다리가 휘청거린다. 균형을 잘 맞춰 널지 않아 한쪽으로 쓰러졌던 경험을 생각하며 왼쪽에 무거운 청바지 하나, 오른쪽에 두툼한 니트 하나를 널어두니 딱 알맞다. 알아주는 이 없지만 치열하게 무게의 중심을 계산하여 균형을 맞춰준다.
하루 종일 젖은 빨랫감들을 말려 그것들이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낄 새도 없이 옷가지들은 걷어져 내 곁을 떠난다. 그리고 나는 또 다음 빨래를 말릴 때까지 어둡고 차가운 창고에 들어간다. 내 몸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한때는 매끈매끈 윤기가 났지만, 지금은 햇볕과 물기로 얼룩져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세월의 흔적만 묻어 나오는, 누가 보아도 그저 낡은 빨래 건조대일 뿐이다.
세월이 지나며 느끼게 된 것은, 빨래는 억지로 말린다고 해서 마르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햇살, 바람, 그리고 시간. 당장 마르지 않을 것 같던 옷가지들도 버티다 보면 어느새 보송보송 가벼워져있다. 축축한 빨랫감에 기꺼이 내어주었던 내 몸도 시간이 지나 건조되어 가벼워져있다.
바람이 많이 불고난 다음 날 아침, 베란다 문을 여니 빨래 건조대가 넘어져있다. 건조대가 넘어진 순간들은 많았지만, 이번엔 플라스틱 접합 부분 한 군데가 부서져있다. 몇 년간 잘 애용하던 터라 아쉬운 마음에 펼쳐보았다. 역시 왼쪽 부분이 말썽이다. 버리기엔 오른쪽은 멀쩡하고, 그대로 쓰자니 반쪽은 무용지물인 빨래 건조대. 지금 쓰러져있는 게 건조대가 아니라 마치 나인 듯하다.
수평이 깨지는 순간, 모든 일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무거운 빨래가 버거워 흔들리던 건조대 다리의 떨림을 떠올리다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아이의 학원 스케줄과 남편의 퇴근 시간, 그리고 집안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는, 전업주부라는 이름의 건조대가 거기 서 있다.
5학년이 된 아들의 땀 냄새 배었던 옷을 내 팔에 널 때면, 아이의 성장통이 머금은 습기가 내 몸에 옮겨온다. 남편이 짊어지고 온 묵직한 피로가 담긴 작업복을 내 팔에 걸칠 때면, 그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른다. 나는 그들의 축축한 일상과 고단함을 침묵으로 받아낸다.
빨래가 다 마르고 나면 가족들은 보송한 온기를 입고 각자의 세상으로 떠난다. 소임을 다한 나는 텅 빈 몸으로 집구석, 차가운 벽 틈으로 밀려난다.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그 씁쓸한 뒷맛을 느낄 새도 없이 다음 날의 젖은 일상을 맞이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워야 한다. 내일, 다시 해가 뜨면 나는 또 기꺼이 팔을 벌려 그들의 무게를 받아낼 것이다.
빨래가 떠난 자리엔 기분 좋은 바람 냄새만 남았다. 가족들의 등에 보송한 계절을 입혀 보내고 홀로 남은 베란다. 하지만 비워짐으로써 비로소 다시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삶이 내어주는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 한들, 결국 시간이라는 볕 아래 마르지 않는 고통은 없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기분 좋게 하루를 접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