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자유롭기를
사람들은 누군가 힘들어할 때 서로에게 '파이팅!' 또는 '힘내!'라고 외쳐준다.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피상적이고 보편적인 위로의 말이다. 세상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외쳐댄다. 마음이 힘들 땐 충분히 그 힘든 감정에 머물러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부정성을 경험해야 비로소 다시 힘을 내어 긍정성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타자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더 이상은 힘을 낼 수 없을 만큼 온 힘을 다 했고 지금 이렇게 지쳐있는 나에게 자꾸 힘을 내라고 속 모르는 소리들을 떠들어 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순간마저 나는,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은 나 자신 외에는 없다.
고통스러웠던 일들과 상처가 되었던 일들을 돌이켜 깊이 생각해 보면 본질적으로 내가 선택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면서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내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을 하지 않을 다른 방법이 내게는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니기에 내 탓을 하지 않는다.
그릇된 선택은 언제든 또다시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주 어리석으며 삶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여 매 순간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 선택은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느끼는 슬픔과 우울함, 벗어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들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유 없는 감정이란 세상에 없다. 내 감정은 내 삶 속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살고 싶다. 나는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온전한 나로서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모든 감정은 오직 정당하다.
[황홀, Rapture], 2001, Kiki Smith, 서울시립미술관.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키키 스미스 작가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그녀의 전시회명은 '자유낙하'로서 온전히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대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위의 사진은 그녀의 전시회에서 대표적인 조각상으로서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대상을 '늑대'라는 상징적 대상으로 설정하고, 늑대의 몸속에서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는 모습을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했다. 내가 쓴 글에 힘을 실어주는 감사한 작품이다.
오늘도 나는 자유를 선택했고 그녀 덕분에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