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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뮈 Jan 31. 2023

시련에 무너지고 굴복하다.

고통에 대한 예찬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바다는 잔잔하고 고용한 날도 있지만 방심한 그 사이 파도는 거칠어지기도 한다. 바다가 평온한 날이 얼마나 될까... 시련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예찬한 예술가들이 많다. 시련을 따라오는 고통에 직접적으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시련을 통해 배우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흔한 진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한 예찬은 인간이 고통을 느낄 때가 가장 진실하다는 것이다. 기쁨과 행복감을 느낄 때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끼며 해석하고 표현하게 된다. 기쁨에 쉽게 흥분할 수도 있지만 기쁨을 쉽게 잊기도 한다. 행복감을 별 의미 없이 자주 느낄 수도 있지만 행복감에 대한 믿음이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진실한 이야기는 고통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예찬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가장 진실한 곳에 대한 존중이고 찬양이다.


"나는 고통의 표정을 좋아하지. 그건 진실되다는 것을 알기에."

ㅡ 에밀리 디킨슨



시련에는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으며 누구의 탓도 아니다.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이 내 인생에 찾아오는 계속되는 시련들이다. 시련을 피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시련을 만난 내 고통스러움을 직면하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시련을 극복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시련, 그것을 내게 보낸 삶과 세상에 대한 분노, 고통을 견디는 자기 모습에 대한 연민과 슬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의 부재로 따라오는 무기력과 우울... 그 시간을 견디어 회복될 때 즈음 또다시 찾아오는 시련, 그렇다. 삶은 그토록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진실이며 고통에 대한 예찬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이고 힘이다.



         [최우람, 천사, 202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최우람 작가의 <천사>는 충격적이었다. 아름다운 황금옷을 입은 천사의 모습과 행위 사이에는 마치 이상과 현실처럼 너무 큰 괴리가 있다. 희망과 힘, 구원의 존재로서의 모습은 없이 지치고 초라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황금빛 천사는 내 고통을 덜어주고 내 삶을 시련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시련은 내 선택이 아니지만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구원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시련 때문에 무너질 것인가.

시련 앞에 굴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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