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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Jun 08. 2022

걷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스토리 텔링 ㅡ강화

강화도 갑곶돈대에서 연미정까지 (강화1)

유월 초의 날씨는 여름의 초입을 알리듯 약간 덥지만, 습기가 없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강화도는 참 매력적인 섬이다. 이제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연결되어 있어서 인천이나 서울에서 접근이 쉬워서 수도권 시민이 많이 찾는 섬이 되었다. 필자는 강화도 나들길 여러 코스를 주파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코스가 여럿이다. 강화 나들길은 20코스가 개발되었는데 걷기를 할 때 마다 코스는 멋대로 선택한다. 강화 나들길 걷기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걸은 코스는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이었다. 호국돈대길은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다음에 얘기해 보겠다. 오늘은 강화 나들길 1코스인 심도 역사문화길을 걸었다. 나와 내 아내는 틈날 때마다 강화 나들길을 걷는다. 심도 역사문화길은 강화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서 동문-용흥궁-고려궁지-강화향교-은수물-강화 성곽길-북문-북장대-연미정-갑곶돈대를 걷는 18km 거리의 6시간 코스이다. 우리는 제1 코스와 겹치는 강화읍의 여러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반대 코스를 택했다. 갑곶돈대-옥개방죽-연미정-황현장균묘-오읍약수-북문-고려궁지-용흥궁-강화읍 코스를 택했다. 점심 1시간 정도를 빼고 4시간 정도를 걸었다.


    강화에는 돈대, 보, 진이 많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갑곶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이 있다. 이들 돈대와 보는 제2 코스에 속해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10시 조금 넘어 갑곶돈대 주차장에 도착했다. 연휴를 앞둔 토요일이었지만 강화로 들어가는 차들이 많아서 강화에 들어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오늘을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있어서 갑곶돈대 입장료가 없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돈대와 전쟁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오는 학생들이 한 무리가 지나간다. 갑곶돈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갑곶돈대 탱자나무”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일부러 탱자나무를 보고 간다. 둘레길 걷기의 좋은 점이 이런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일정을 조금 변경할 수 있다. 이 탱자나무는 적이 쳐들어올 때 방비용으로 심었다고 한다. 탱자나무는 보통 남부 지방에서 잘 자란다. 내 고향 남도에도 커다란 탱자나무가 있었는데 노랗게 열린 탱자는 유자를 닮아 먹어보라고 우리를 유혹했다. 노란 탱자를 한입 깨물면 그 시큼한 맛은 레몬을 능가하며 눈이 저절로 감겼다. 갑곶돈대 탱자나무는 나이가 300살 정도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지만, 나이 많은 나무줄기는 속이 텅 비고 겨우 풋탱자 몇 개를 매달고 있고 가지 몇 개는 누렇게 죽어간다. 옆의 다른 가지는 새로 솟아나 잎이 무성하다. 수백 년을 살아온 인고의 세월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강화에는 53개의 돈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갑곶돈대는 1232년부터 1270년 사이의 고려 시대 대몽 전쟁 때에 강화를 지키던 주요한 돈대 중의 하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침략하여 많은 조선군을 죽였다. 갑곶돈대의 탱자나무는 19세기 이후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난을 그대로 목격했을 것이다.


[그림 1] 갑곶돈대 탱자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이 300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쪽 가지는 죽어가고 옆 가지는 다시 순이 나왔다.     


   탱자나무를 보고 나서 우리는 갑곶돈대와 붙어 있는 가톨릭 갑곶 순교성지를 방문하였다. 강화도는 우리나라 기독교 전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강화는 고려대장경이 만들어진 곳이고, 마리산은 우리나라에서 양의 기운이 가장 센 곳이고, 강화는 성공회 선교지의 한 곳이며, 가톨릭 선교의 중심지였으니 과히 종교의 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우리 민족이 이민족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한 것은 보면 19세기에 조선의 극한 상황에서 민초들이 열망했던 구원에 대한 갈망을 읽을 수 있다. 갑곶 순교성지는 갑곶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어 옛 강화대교를 보고 염하(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강)에 흐르는 물살을 느낄 수 있으며 종교적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을 걷다 보면 세 쌍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마치 구원을 염원하며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이곳에는 순교한 삼위가 순교하기 직전에 구원을 바라며 기도하는 모습 같다. 십자가의 길은 신도가 아니더라도 종교적 영성을 얻을 수 있다.


[그림 2] 강화 갑곶 성지 세 쌍 은행나무.      


   십자가의 길을 뒤로하고 야외마당에 도달한다. 야외마당의 끝은 염하강의 옆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강화대교 밑을 지나 강화인삼센터를 옆에 두고 철책선이 처져있는 염하강 옆길을 걷는다. 철책에 군인은 보이지 않지만, 군인들이 가끔 지나갔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군인이 지나갔던 길은 풀들이 꺾여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고에 숙연한 마음이다. 민족을 끊어 놓은 철책에 덩굴식물은 하염없이 철책을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섬의 바닷가를 걷다 보면 태양을 가려줄 마땅한 그늘이 없다. 햇빛을 오롯이 맞아야 한다. 오늘은 약간 구름이 끼어 있어 햇빛이 그리 따갑지 않다.


   좀 걷다 보니 조그만 공장단지가 있다. 산길로 들어가기 위해서 공단길을 조금 걸어야 한다. 토요일이라 일하는 사람이 없고 공장을 지키는 멍멍이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지나가자 멍멍이들도 놀랐는지 날카롭게 짖어 댄다. 덩치가 큰 녀석을 가만히 있는데 작은 녀석이 더 열심히 짖어 댄다. 이 네 우리는 야트막한 야산 숲길에 접어든다. 이곳은 철책에 가깝고 차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 숲에 새들이 많다. 딱따구리 여러 마리가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박새 한 무리는 놀라서 우리보다 앞서 날아가면서 산길을 안내한다. 키 작은 싸리나무는 크기는 작지만 예쁜 분홍색 꽃을 매달고 있다. 이곳의 싸리꽃은 다른 곳보다 꽃의 좀 크다. 동네 옆 야산이라 묘지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묘지 옆의 탁 트인 공간에는 주광성이 큰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유독 인동초와 엉겅퀴가 눈에 띈다.


[그림 3] 강화에 피어 있는 인동초. 한 줄기에 노란 꽃과 흰 꽃이 같이 피어 있다.


      인동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꽃이 피면 '너가 이곳에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꽃이다. 한 덩굴에서 노란색과 흰색 꽃이 함께 핀다. 요즘은 빨간색과 흰색이 같이 핀 인동초도 자주 본다. 인동초를 보고 있으면 김대중 대통령이 생각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동초라고 불렸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한길을 걸어 대통령이 되고 IMF 위기를 극복하고 벤처 붐을 일으켜 지식산업이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임을 보여주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우리 생활에 깃들어 있지만, 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음으로 양으로 고초를 겪은 분들이 많다. 미세먼지처럼 공기가 나빠지면 호흡하기 꺼림칙해지지만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숨을 쉬게 된다. 민주주의도 비슷한 것 같다. 포퓰리즘에 의한 선동은 쉽게 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다. 인동초의 한 줄기에 두 가지 색깔의 꽃 피어 있는 것이 마치 민주주의라는 줄기에 진보와 보수의 꽃이 함께 피어 있는 것 같다. 한 줄기의 두 꽃이 서로 싸운다면 결국 줄기는 죽게 될 것이다. 산에 핀 인동초를 보며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생각해 보며 산길을 걷는다.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엉겅퀴는 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6월에 들어서면서 나들길 주변에서 보랏빛과 분홍빛이 섞여 있는 엉겅퀴꽃을 볼 수 있다. 엉겅퀴를 귀화식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엉겅퀴, 가시엉겅퀴, 고려엉겅퀴는 우리나라의 토종식물이다. 지느러미엉겅퀴, 서양 가시엉겅퀴는 귀화식물이다. 엉겅퀴 종류는 여러 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듯하다. 엉겅퀴의 꽃말은 ‘나를 날 건드리지 마세요'란다. 엉겅퀴에 뾰족한 가시가 있어 잘못하면 찔리기 쉬우므로 붙은 꽃말일 것이다. 엉겅퀴의 씨는 하얀 깃털에 붙어 있어서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쉽게 퍼질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엉겅퀴라고 부르는 것은 잎에 톱니 모양이 없다. 반면 가시엉겅퀴는 잎과 줄기에 톱니가 나 있다. 많은 줄기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린 지느러미엉겅퀴는 큰 덩이를 이루고 있다. 오랜만에 여러 종류의 엉겅퀴꽃을 볼 수 있었다. 6월의 꽃에는 나비와 벌이 많이 날고 있다. 노랑나비, 흰나비들이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고 다리에 꽃가루를 잔뜩 매단 꿀벌은 분주하다. 곤충의 수고는 올해의 결실을 담보하고 내년에 들판의 야생화를 활짝 피게 할 것이다. 내년 이맘때의 산과 들은 더 많은 꽃으로 넘쳐날 것이다.


[그림 4] 엉겅퀴꽃. 다양한 종류의 엉겅퀴가 강화에 자생하고 있다. 꿀벌 한 마리가 다리에 꽃가루를 짠득 매달고 있다.      


   나지막한 산길의 끝에는 벌판이 펼쳐져 있다. 지도를 보니 북쪽에 옥개방죽이 염하강 언저리를 따라있다. 강화의 많은 지역은 간척지이다. 조상들은 서해의 물이 빠졌을 때 방죽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너른 간척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강화는 이렇게 지형이 변했고 곳곳에 농사짓는 논이 많다. 인천시청에서 옛날 강화 지도를 본적이 있는데 그 모습은 지금의 강화와 너무 달랐다. 간척 사업은 옛지형의 모습을 감춰버린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저수지와 수로에 물을 가두어 두어 가뭄을 타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농수로 옆길을 걷다 보니 어미 오리가 8마리의 새끼를 달고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다. 족제비싸리 밑의 농수로를 헤엄치는 오리 가족이 이채롭다. 부화에 성공한 어미 오리에게 갈채를 보낸다. 걸을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그림 5] 어미 오리와 새끼오리. 부지런한 어미 오리는 벌써 부화를 마치고 새끼오리를 수로에 데리고 나왔다.      

  농수로의 끝은 옥개방죽의 철책을 따라 연미정까지 걷는 길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연미정에 왔을 때 철책 넘어 북한 땅에는 대형 선전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었다. 지금은 그런 선전문구는 없지만, 물이 빠진 염화와 조강(강화도와 북한 사이의 한강 하구를 부르는 이름)  너머에 아련히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하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롭게 남북을 넘나들 수 있을까?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철책 사이를 쉽게 넘나들며 날고 있다.     


<연미정 느티나무의 눈물>

도도히 흐르는 조강의 물살은

연백과 강화를 가르고

유도는 징검다리처럼 외로이 떠 있네

새들은 한가로이 철책을 넘어

자유로이 남북을 넘나드는 데

연백의 미루나무는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연미정의 제비는 손짓에 인사하네

5백 살 느티나무는 처절한 핏빛에

눈물 흘리며 그 자리 서 있네     


*유도: 조강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남의 군인도 북한의 군인도 진입할 수 없는 DMZ에 속한 작은 섬.


   점심때가 되어서야 연미정에 도착했다. 연미정 근처에는 식당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연미정 할머니네 밥집이다. 식당 문을 열었더니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식당이 문을 닫았나 했다. 아내는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식당 옆에서 강화도 이동 관광 안내하는 분이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불러서 밥을 해달라고 하면 밥을 해 주신단다. 할머니는 밥하는 데 20분이 걸린단다. 직접 양은 냄비에 밥을 해 주신다. 할머니의 밥상은 정겨운 백반 밥상이다. 반찬으로 나온 개복숭아 장아찌가 이채롭다. 처음에는 매실장아찌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색깔이 초록이고 아삭하기 그지없다. 개복숭아는 그냥 먹을 수 없는데 이렇게 장아찌로 만드니 맛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연미정에 올랐다. 연미정에서 보니 건너 북한 땅이 지척이다. 한강의 끝자락인 조강 건너 조금 더 올라가면 개성일 것이다. 왼쪽은 아마 연백이고 연백평야는 연백 쌀로 유명하다. 연미정 양옆에는 수백 년 나이의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왼쪽은 태풍 링링으로 그만 부러져 버리고 그 자리에서 어린 순이 솟아나고 있다. 500년 묵은 느티나무는 70여 년 전에 조강을 핏빛으로 물들였던 민족의 애환을 얘기하고 있다. 연미정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여럿이다. 저 천진하게 잔디에서 띠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평화를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강화가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해 본다.     


2022년 6월 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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