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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Jun 11. 2022

모방 행동과 집단 접착제

새 떼의 군무 현상이 여론 형성을 설명할 수 있다!

금강하구의 철새 도래지나 충남 천수만과 가로림만에 날아온 겨울 철새는 수만에서 수십만 마리가 집단을 이루어 군무(flocking)를 춘다. 바다의 멸치나 전갱이는 포식자를 피하려고 물고기 떼(fish schooling)를 형성한다. 매와 같은 포식자가 새 떼를 공격하면 새 떼는 홍해가 갈라지듯이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곤 한다. 물고기 떼도 상어나 참치와 같은 포식자가 공격해 오면 떼의 모양을 요리조리 변형하면서 공격을 피하곤 한다. 동물, 사람, 자석(magnet) 등과 같은 시스템은 구성요소가 많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복잡계이다. 새 떼나 물고기 떼가 움직일 때 그 움직임을 조절하는 지휘자 또는 조정자가 없다. 오로지 각 개체의 자율적인 행동이 집단 현상(collective phenomena)을 유발한다. 이러한 집단행동(herd behavior)에서 나타나는 창발 현상(emerging phenomena)을 연구하는 통계물리학자들이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새 떼의 집단 비행을 이해하기 위해서 새 떼의 비행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탈리아의 이론 통계물리학자들은 로마역 근처에 고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매일 아침 날아오르는 찌르레기(stirling)의 군무를 촬영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울산 태화강변의 대나무숲에 날아온 까마귀 떼의 군무가 유명하다. 찌르레기는 아침에 먹이 활동을 하기 위해서 함께 날아오른다. 새 떼를 촬영한 다음 각 새를 하나의 검은 점으로 표시한 다음 새의 비행경로를 추적하고 이웃한 새들과의 관계를 조사해 보았다. 이 과학자들의 목표는 3차원 공간에서 비행하는 새 집단의 집단행동과 자체 조직화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새 떼의 비행 자체는 물리적 현상이므로 물리 법칙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운동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이웃 새와의 상호작용과 돌발변수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가끔은 새들이 제멋대로 행동함으로 행동 잡음(noise behavior)을 넣어 주어야 한다.     

 

  그림 1. 새의 군무. 새는 옆에 있는 새들의 행동을 모방하여 자신의 비행을 자율적으로 조절한다. 이러한 자율 행동은 집단적 창발현상을 유발한다.


    헝가리의 통계물리학자 토마스 비첵(Tamás Vicsek)은 새들이 일정한 속도로 날면서 일정한 거리의 이웃한 새들의 평균적 비행 방향을 인지하고 자신의 방향을 조절해주는 소위 비첵모형(Vicsek model)을 제안했다. 각 새들이 방향을 조절할 때 방향 잡음(directional noise)을 조금씩 넣어 주었다. 새들은 각자의 속도를 가지고 위치를 변화한다. 이런 비행모형은 새들의 집단 비행 현상을 재현해 주었다. 간단한 물리 모형이 새들의 군무와 유사한 현상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실제 새들의 운동과는 세세한 부분이 다르지만, 집단 비행 현상을 과학적으로 재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비첵은 새들이 방향을 바꾸는 잡음의 세기를 조절해 보았는데 잡음의 세기가 너무 크면 새들이 흩어져서 집단 비행을 유지하지 못했다. 비행하는 새의 평균 속력의 크기를 구해보면 새들이 한 방향으로 비행하는지 또는 멋대로 비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새의 평균 속력은 새 집단의 질서를 파악할 수 있는 질서 맺음 변수(order parameter)이다. 새의 평균 속력은 방향 잡음의 세기가 임계점(critical point) 보다 커지면 영이 되었다. 즉, 새들의 방향이 제멋대로 이기 때문에 새 속도를 더하면 영이 된다. 새의 속도는 벡터이므로 새의 비행 가능한 360도 모든 방향에 대해서 똑같은 확률로 날아간다는 뜻이다. 즉, 비행 잡음이 크면 집단 비행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행 잡음이 임계점보다 작아지면 새의 평균 속력은 영보다 커지며, 방향 잡음의 세기가 임계점에서 멀어질수록 평균속도가 연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비평형 연속 상전이(nonequilibrium continous phase transition)이라 한다.      


   물은 100도씨에서 끓어 액체인 물이 기체인 수증기로 변환한다. 이렇게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phase transition)라 한다. 물이 끓는 현상은 평형 상전이라 한다. 물을 끓이기 위해서 물리적 조건인 1 기압의 압력, 온도 100도씨 등의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어야 한다. 물분자는 무기질 물질이며 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상태가 결정된다. 반면 새와 같은 생명체는 일종의 능동 물질(active matter)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 세균, 바이러스, 살아있는 세포 등은 주변 환경에 따라서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능동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행동 역시 능동 행동이다. 사람의 집단행동, 복잡한 거리에서 많은 인파의 행동, 큰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출입구로 이동하는 현상,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파는 행동 등은 대표적인 능동 행동이다. 이런 시스템들은 모두 비평형 상태에서 행동하는 현상이다. 비평형 현상에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은 재미있는 현상을 유발한다.


   이탈리아 물리학자들이 새 떼의 비행을 세심히 분석하여 다양한 특징을 알아냈다. 로마역 근처에서 새 떼들이 날아오를 때 새 떼의 규모는 200마리에서 50,000마리까지 다양했다. 새들은 떼로 날면서 서로 응집력(cohesiveness)을 보였다. 이러한 응집력은 새들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발생했다. 새들은 가까이 있을 때 서로 붙어서 비행하려는 응집력이 강했으며 서로 멀어질수록 응집력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경향성은 일반적인 예측과 잘 맞았다. 사람도 가까이 있는 사람과 응집력이 세지만 아무리 친해도 멀리 떨어져 지내면 응집력이 약해진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이웃에 사는 사촌이 더 낫다는 말이 헛말은 아니다. 새들은 비행할 때 방향 비등방성(directional anisotropy)을 나타냈다. 새들은 비행할 때 이웃한 새들을 인지하는데 최대 6마리에서 7마리 정도의 이웃한 새와 강하게 상호작용했다. 새들의 눈은 앞쪽을 보고 있으므로 시야 내에 보이는 새들과 보조를 맞춘다. 비첵모형에서 새 한 마리는 일정한 거리 내에 있는 모든 새와 같은 크기로 상호작용한다고 했지만, 실제 새 떼는 그렇지 않았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7마리 정도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새는 국소적 비등방성(local anisotropy)을 갖지만 7마리 이상을 넘어가는 다른 새들을 볼 때는 전역적 등방성(global isotropy)을 갖는다. 이웃한 새 7마리 이상은 모든 방향에 대해서 뭉뚱그려서 본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각 개인의 생활을 살펴보면 적은 수의 사람들과 강하게 또 유유상종하듯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어울리지만 전체 사회에 묻혀 들어가면서 각자의 개성은 사회 전체에 스며든다.     


    새들은 이웃한 새들과 강하게 상호작용하지만 서로 충돌을 피하려고 너무 가까워지면 강한 회피행동을 한다. 마치 딱딱한 공이 서로 충돌하면 반발하듯이 딱딱 핵 반별력(hard-core repulsion)을 받아 운동하는 것처럼 묘사할 수 있다. 한편 새 떼가 무리를 짓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졌을 때 서로 응집해야 한다. 새는 이웃한 7마리의 이웃을 보고서 그들과 응집하려고 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고립을 피하려고 응집하며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 회피한다. 새들은 날아가면서 방향을 바꾼다. 각 새는 이웃한 새를 보면서 그 새들의 평균적인 비행 방향을 인식한다. 자신의 비행 방향이 이웃한 새들의 비행 방향에 어긋나 있으면 자신의 비행 방향을 이웃 새의 평균 비행 방향에 맞춘다. 물론 비행 방향을 완전히 평균 방향에 맞출 수는 없으므로 방향 잡음이 조금 첨가된다. 이렇듯 새들은 응집(cohesion)회피(avoiding)방향 맞춤(directional alignment) 행동으로 집단 비행을 할 수 있다. 응집이나 방향 맞춤은 이웃한 새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모방 행동(imitation)이라 할 수 있다. 새 각 개체의 모방 행동이 결국 집단 전체의 운동으로 나타난다. 새들의 모방 행동은 새의 인지적 한계와 물리적 인식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지만, 국소적인 상호작용 행동이 결국 전역적인 무리 지음 행동을 나타낸다. 나의 행동은 이웃한 새가 나를 따라하고 나도 이웃한 새들의 행동을 따라한다. 이렇게 서로의 행동이 되먹임(feedback)되면서 전체의 행동이 조절된다. 이렇게 새 떼의 무리 지음 행동은 조율자가 없는 자기 조직화 행동(self-organized behavior)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새 떼의 집단 비행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어떤 이점이 있을까? 새의 군무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흥미 있는 일이지만 군집행동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앞에서 예로든 사람으로 분비는 혼잡한 길에서 보행 운동(pedestrian motion), 고속도로에서 차량정체(trafffic jam), 드론이나 소형위성의 군집 비행(satellite constellation), 드론 쇼(drone show)에서 드론의 비행에 응용, 주식시장에서 시장 붕괴 현상(market collapse) 등을 이해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해서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BTS의 음악이나 동영상이 한꺼번에 큰 인기를 끌거나, 갑자기 어떤 음원의 다운로드가 폭증하는 현상은 사람들의 따라 하기 행동이다. 어떤 옷이나 액세서리가 갑자기 유행하는 것도 사람의 모방 행동의 결과이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등 다양한 선거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뚜렷한 관점에 따라 투표하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분위기나 자신의 옆에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성향을 따라가기도 한다. 선거에서 투표행위(voting)나 정당이나 어떤 주제에 대한 여론 형성(opinion formation) 역시 모방 행동이 큰 영향을 준다. 사회에서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집단 접착제(collective glue)는 매우 유동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A당이 집권했지만, 다음 선거에서 B당이 집권할 수 있다.


[1] T. Feder, “Statistical physics is for the birds”, Phys. Tod. 60, 28 (2007).

https://physicstoday.scitation.org/doi/10.1063/1.2800090

[2] M. Al-Ghazi, “Flocking for survival” Phys. Tod. 61, 13 (2008).

https://physicstoday.scitation.org/doi/10.1063/1.3027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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