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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Nov 01. 2022

알갱이 유체와 알갱이 고체

복잡계로 설명하는 막힘 전이 - 압사 사고의 과학적 이해

2022년 10월 29일은 비극적인 날이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로 꽃다운 생명이 덧없이 사라졌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통계물리학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압사 사고의 과학적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또한 대학에서 학생처장을 맡으면서 축제에서 압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부터 통계물리학에서 알갱이 시스템의 동력학(dynamcis of granular systems)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알갱이 시스템은 모래, 쌀, 구슬, 돌멩이 등과 같이 알갱이(granular)의 동력학적 행동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탐색하는 것을 말한다. 알갱이 시스템이 관심을 끈 것은 도로에서 보행자의 행동, 통로에서 탈출 문제(evacuation problem), 싸일로에서 막힘, 도로의 정체 현상 등을 연구하면서 확대된 것이다. 자율적인 사람의 행동도 좁은 통로나 좁은 문을 지날 때, 사람의 밀도가 높아지면 자율성은 사라지고 자율성이 없는 알갱이처럼 행동한다.      


   보행자 통행 동력학(perdestrian dynamics) 또는 군중 보행 동력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행자의 밀도이다. 보행자의 밀도가 낮으면 양방향으로 진행하는 보행자들은 줄잇기 보행으로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하다. 사람이 많은 횡단보도 양방향에서 사람이 건너기 시작하면 보행자들은 줄잇기 보행으로 약간의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서로 잘 교행 한다. 단방향 통행에서도 비슷하다. 사람의 밀도가 적으면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하다. 알갱이를 파이프에 흘려보낼 때 밀도가 작으면 알갱이는 쉽게 흘러내린다. 이제 알갱이의 숫자가 많을 때의 통로에서 보행이나, 쌀이나 곡물을 넣어둔 싸일로(silo)에서 알갱이의 흐름을 생각해 보자. 알갱이 사이에 마찰이 없으면 알갱이들은 쌓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알갱이들은 마찰이 있기 때문에 혼잡(jamming) 현상이 발생한다. 알갱이의 밀도가 낮을 때 흐름이 유지되던 파이프에서 알갱이의 밀도가 점점 높아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밀도가 높아지면 알갱이들 사이의 접촉이 늘어나고 어떤 곳에서 알갱이들이 흐름을 막는 알갱이 어긋남이 발생한다. 두 개 이상의 알갱이들이 서로 어긋나서 옴짝달삭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알갱이 흐름이 막힌다. 이러한 어긋남이 출구에서 발생하면 출구가 막혀서 아무도 나갈 수 없게 된다. 싸일로에서 흘러내리던 곡물 알갱이가 가끔 막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싸일로 입구가 막히면 입구를 쳐주거나 하여 어긋난 알갱이들을 풀어주면 흐름이 재개된다.    


[그림 1] 알갱이의 고체 상태와 액체 상태. 조밀하게 쌓인 고체는 흐를 수 업지만, 액체나 기체는 쉽게 흐른다.          


  그런데 알갱이 흐름에서 꽉 막힘이 일어나는 현상은 통로나 파이프의 알갱이 밀도가 임계밀도(critical density)를 넘어서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을 통계 물리학자들이 발견하였다. 이를 혼잡 전이(jamming transition)이라 한다. 보행 도로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더 이상 매끄러운 흐름이 일어나지 못하고 부분적인 꽉 막힘이 전체 통로의 흐름을 꽉 막아버리고 더 이상 흐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러한 혼잡 전이는 알갱이의 크기, 알갱이 사이의 마찰력, 알갱이의 모양 등에 의존한다. 양쪽이 벽으로 막힌 통로에서 사람들이 걸어갈 때 사람의 밀도가 혼잡 전이가 일어날 수 있는 임계값을 넘어서면 완전한 정체 현상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앞뒤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대학 축제에서 얻은 경험 - 알갱이 유체화


  필자는 2016년에 대학에서 학생처장을 지내면서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패킹하여 움직이는 혼잡 전이에 의한 사람의 알갱이화 현상을 목격하고 대학 축제의 방식을 바꾼 적이 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5월이면 일주일 동안 대학 축제가 열리고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금요일 저녁에 유명 가수를 초빙하여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축제는 항상 학생회관 앞 광장에서 열렸는데 출입구의 한쪽에 무대를 설치한다. 한쪽은 학생회관의 벽이 막고 있고 다른 쪽은 호수이기 때문에 무대의 구조는 한쪽이 막힌 깔때기 모양을 형성한다. 필자가 점검을 해 보니 안전에 문제가 많은 구조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매년 그런 식으로 축제를 열었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축제를 진행하자고 한다. 축제의 주관도 학생회가 주관하고 학생처는 지원을 하기 때문에 크게 축제 진행에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해의 축제는 예전 방식대로 진행이 되었다. 나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회관 4층 난간에서 행사를 내려다보면서 직원들을 지휘했다. 그날 축제 행사에서 나는 이론으로만 배웠던 알갱이의 유체화 현상(fluidization of granular system)을 목격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걸그룹 트와이스가 등장하는 때였다. 그날 축제가 열리고 트와이스가 노래를 부른다는 소식이 sns와 카톡을 타고 지역의 중고등학교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 소식을 접한 중고등학생들이 가세하여 참가자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4층 난간에서 학생들의 유입을 모니터링하던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 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이 깔때기 모양의 무대 앞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연신 학생 진행자, 대학 직원들이 통제를 했지만 밀려드는 학생들의 흐름을 제어할 수 없었다. 트와이스가 등장하기도 전에 깔때기에 갇힌 학생들은 패킹되기 시작했다. 위에서 보니 학생들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학생들은 겨우 응원 막대를 치켜들고 응원만 가능한 정도로 빽빽하게 패킹되어 있었다. 깔때기의 입구에는 나가는 사람은 없고 들어오는 유입만 있었다. 나는 사고 가능성을 직감하고 핸드폰으로 직원들에게 더 이상의 학생 유입을 차단토록 했지만, 입구에 배치한 한두 명의 인원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마침내 트와이스가 무대에 등장하자. 상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광장에 패킹된 학생들은 트와이스의 노래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파동을 만들기 시작했다. 꽉 막힌 알갱이가 스스로 협력적인 운동을 시작하자 마침내 유체화(fulidization) 현상이 일어났다. 알갱이들 사이의 미세한 틈새가 생기면서 학생들은 좌우로 또는 앞뒤로 파동을 만들어 냈는데 마치 유체가 출렁 것 같았다. 그 파동에서 누군가 넘어진다면 전체가 무너지면서 압사 사고가 생길 수 있었다. 나는 4층 난간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학생들이나 직원들은 이 상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통계물리학에서 jamming transition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정말로 심각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졸이면서 빨리 트와이스의 노래가 끝나기를 고대했다. 전화로 무대 근처의 직원에게 절대로 앙코르를 받아주지 말고 트와이스를 바로 퇴장시키라고 지시했다. 정말 다행히 트와이스의 무대는 무사히 끝나고 앙코르 없이 트와이스는 퇴장했다. 트와이스의 퇴장으로 축제는 끝났다. 나는 즉시 앞쪽의 통로를 개방토록 지시하여 학생들의 패킹 현상을 풀었다. 축제는 무사히 끝났다. 몇 년 전 여름에 봉사 나갔던 학생들이 산사태로 사망한 참사를 꺾었기 때문에 나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학생들이 활동하도록 했지만, 한순간 제어 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 2] 싸이로에서 알갱이들의 꽉 막힘 현상. 아치모양으로 입구의 알갱이가 버팀목이 되면 위에서 누르는 알갱이들은 더이상 흘러내릴 수가 없다. 막힘 상태가 된 것이다. 알갱이가 사람이라면 누구도 문을 빠져 나올 수 없다.    



  나는 축제가 끝나고 학생, 직원들과 평가 회의를 열고 사람이 패킹되어 알갱이처럼 행동하면, 알갱이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혼잡 전이와 알갱이 유체화 현상의 심각성으로 설명하고 내년에는 이런 상태의 축제 콘서트는 불허한다고 설득했다. 우리 학교에는 넓은 운동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콘서트를 열지 않았다. 왜 운동장에서 콘서트를 열지 않냐고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이웃 아파트에서 큰 소리에 민원이 심해서 열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내년 대학 축제의 콘서트는 운동장으로 옮길 것을 지시하고, 이웃 아파트 부녀회를 찾아가서 양해를 구했다. 다음 해 축제는 운동장에서 열었고, 운동장에 구획을 정해서 각 구획마다 제한된 숫자의 학생만 입장토록 했다. 이렇게 시스템을 바꾸자 축제 콘서트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날 걱정 없이 축제를 열 수 있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콘서트가 열리니 더 많은 사람들이 여유있게 참여할 수 있었고, 유명 가수가 출연하자 이웃 아파트의 주민들도 우리 대학의 축제를 즐겼다.



군중 운동의 알갱이 고체화

   

   제한된 구조에 알갱이들이 패킹되어 임계밀도를 넘어서며, 알갱이는 더 이상 움직임 불가능해진다. 구형의 알갱이들이 멋대로 패킹될 때 최대 패킹 부피는 64% 정도이며, 아주 조밀하 패킹된 육방밀집구조(hexagonal close packing)의 임계 부피는 약 74%이다. 육방밀집구조는 계란을 안정적으로 최대로 쌓을 때 생기는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 패킹된 상태에서 알갱이들이 함께 떨리거나 알갱이들이 한 지점에서 구령에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일시적인 유체화가 일어난다. 지진이 생길 때 지층이 지진의 일정한 진동에 의해서 유체화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이렇게 일시적 유체화가 생기면 패킹 구조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지진이 일어난 후에 산사태나 모래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이다. 알갱이가 사람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람이 패킹된 상태에서 한 방향으로 미는 힘을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통로가 경사져 있다면, 경사 방향으로 힘을 받고 떠미는 힘에 의해서 무너지기 쉽다. 사람이 떠미는 힘을 지탱할 수 있는 한계 힘이 있다. 사람은 안간힘을 다해서 한계 힘을 견디지만, 물리적으로 지탱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넘어진다. 패킹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면, 다시 넘어진 상태에서 패킹이 일어나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고체화 상태가 된다. 그 상태에서 알갱이 하나가 받는 압력은 어마어마한 크기가 된다. 이것이 압사 사고의 원인이다.      


   이러한 압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한된 통로나 구역에 너무 많은 사람이 패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패킹이 일어나지 않고 계속 흐름이 일어나도록 한 방향으로 통행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양방향에서 사람이 유입되면 어느 순간 막힌 지점에서 패킹이 일어나면서 고체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다. 사람은 자율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자율적으로 움직이다가도 사람의 밀도가 너무 많아져 더 이상 자신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무생물의 알갱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 사람의 알갱이화를 막는 것이 사고를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사람은 패킹되지 않도록 계속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단위 면적 당 알갱이의 숫자가 절대로 임계밀도를 넘지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행사에서 우리는 이러한 패킹과 알갱이화 현상에 대한 현상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로 인한 압사 사고를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반성하고 고쳐 나가야 하겠다. 고결한 젊은 생명을 더 이상 잃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염원해 본다.    


참고문헌: 

T. S. Majmudar, M. Sperl, S. Luding, and R. P. Behringer Phys. Rev. Lett. 98, 0580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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