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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Mar 05. 2023

걷알스ㅡ아지랑이 피는 봄을 고대하며

걷다보면 저절로 알게되는 스토리텔링 ㅡ남행열차에서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황사나 미세먼지는 거의 없었다. 오늘은 갑작스럽게 ktx를 타고 대구를 가는 중이다. 일부러 기차의 창가 좌석을 예매했다. 삼월 초의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봄은 만끽하고 싶었다. 기차 타기 전에 커피 한잔을 들고 탔다. 커피 한 모금에 봄빛을 담고 싶다. 나의 소소한 희망은 이내 물거품이 되었다. 온 산하가 미세 먼지에 잠겨있다. 어쩌다 이리되었을까?


어려서 살았던 남도의 한적한 시골에서 봄날이면 동네 양지바른 곳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다 지치면 봄볕을 쬐곤 했다.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넓지 않은 밭뙈기 너머 냇가 사이에 논이 펼쳐 저 있고, 신작로와 나란하게 경전선이 놓여있었다. 멀리 보이는 가야산은  아지랑이 사이로 산이 지글거리며 보인다. 봄볓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긴 기적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차칸 수를 세어본다. 지금까지 보았던 기차길이보다 더 긴지 항상 궁금해했다. 매번 최고 길이보다 짧다. 동네 아이 중에서 누구도 기차를 타본 적이 없다. 몇 달 전에 감자를 먹다 심하게 체해서 엄청 고생을 하는데 나을 기미가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체를 잘 치료한다는 치료사를 만나러 처음 기차를 타고 순천에 갔다. 배가 아파 완행열차를 처음 타본다는 기대감을 느낄 수 없었다. 순천의 체증 치료사는 의사는 아니지만 용했다. 내 입으로 손을 짚어넣어 뭔가를 끄집어냈는데 굵은 감자덩이다. 그 감자덩이를 꺼내자 체증이 쑥 내려가며 배 아픈 것이 사라 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체증을 치료하고 어머니는 눈깔사탕을 몇 개 사주셨다. 눈깔사탕을 입안에서 녹이며 돌아오는 기차에서 아지랑이 피는 남도의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보았던 봄빛은 다시 볼 수없었다. 인간들이 추구하는 편리함은 우리의 소소한 행복마저 빼앗아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남녘의 봄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다시 창가를 응시하지만 들녘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를 해치며 살아 갸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을 수 없는 크나큰 빚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3년 3월 5일 남녘을 향하는 기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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