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비임비의 소소한 대화
임비 이 말은 매우 조심스럽게, 뒷담화로 쓰는 말 아닌가.
곰비 맞아. 이 말을 쓰려면 너무 많은 지뢰밭을 건너야 해.
그럼 교육이 왜 필요하냐, 한 번 나쁜 놈은 영원히 나쁜 놈이냐, 개과천선이란 말은 왜 있냐, 이러면서 뭔가 희망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말은 다 옳다는 거야.
임비 그럼 이 말을 왜 가져왔어. 솔직히 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란 말을 일정부분 신뢰해. 사람들은 이 말을 순화해서, ‘사람 참 안 변해’라고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사람 고쳐 쓰지 않는다고 하잖아. 내가 겪어봐도, 사람 쉽게 고쳐지지 않더라고. 고쳐 쓸 사람까진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서도 보면 당하는 놈은 만날 당하고, 일 저지르는 놈은 만날 일만 저지르잖아. 사람마다 성향이 있고, 기질이 있는 거 같아.
곰비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말이라면서 그렇게 막 이야기 해도 되는 거야? 근데 사람들은 보통 이 말을 언제 쓸까?
임비 치명적인 문제점을 거듭 드러내면서 고치지 못할 때겠지. 아니면 과거 이력이 나쁜 쪽으로 화려한데, 그런 사람과 연애든 사업이든 뭐든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 경종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곰비 맞아. 그래서 좀 전에 네가 말했던 ‘사람 참 변하지 않아’와는 무게가 다르지.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예전에 대도라고 불린 사람이 있었잖아. 최고 부자들 집만 털었다는 신출귀몰한 도둑. 물방울 다이아를 훔쳐서 유명했는데, 그 이후로 종교도 갖고, 괜찮은 분과 결혼도 하고 보안회사 들어가서 자신의 능력치를 역으로 발휘하면서 진짜 개과천선이 뭔지 보여줬던 사람.
임비 근데 끝은 결국 사람 고쳐쓰는 게 아니다,로 결론 났었지. 다시 좀도둑질로 교도소를 들낙거렸으니까. 심지어 일본까지 원정 가서 좀도둑질 하다가 걸렸잖아. 그때도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었잖아.
곰비 맞아. 하지만 난 이 말을 바꿔 쓰고 싶어. ‘사람 고쳐 쓸 수 있다. 다만 초반에 실기하면 그 비용이 엄청날 뿐이다.’
첫단추를 잘못 꿰면 엄청난 시간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그 첫단추는 대개는 출생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고.
임비 와, 또 부모 문제구나. 그러면 사람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이러니 부모 되는 게 얼마나 겁나는 일이야. 그만 겁줘.
곰비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어줄게. 거듭 말하지만, 극단적인 예야. 그러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
제임스 팰런이란 신경과학자가 있어.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뇌를 연구하면서, 범죄자는 태어나는 거라는 생각했어. 사이코패스와 일반인의 뇌가 다르다는 걸 알았거든.
예를 들면 전전두피질 활성화율이 떨어지고, 측두엽이 손상되었으며 등등. 뇌를 스캔하면 그 차별점이 보인대. 동시에 알츠하이머병도 같이 연구하고 있었지. 그래서 자신과 가족의 뇌도 찍어서 연구했어.
임비 어째 불길하다.
곰비 네 불길함, 맞아. 어느 날 비교용으로 찍은 가족의 뇌사진 속에서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뇌를 발견한 거야. 처음엔 살인자의 뇌 사진이 가족의 뇌 사진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
임비 정말 불길하군. 설마 자기 자식의 뇌? 아님 부인의 뇌?
곰비 바로 자신의 뇌였어.
임비 뭐라고?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자기 뇌였다고? 근데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아니라 신경과학자가 되었다고? 뭐, 이런 개과천선보다 더한 희망 카드로 사람을 고문하려는 거야?
곰비 당연히 처음엔 부정했지. 하도 사이코패스 살인자들 뇌를 보다보니, 자신의 뇌가 그렇게 변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어. 무엇보다 자신은 살인은커녕 폭력적이지도 않고, 결혼해서 세 아이를 둔 행복한 사람이었단 말이야.
임비 그럼 자신의 연구는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거군.
곰비 너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내고 말겠니? 제임스 팰런은 그때부터 자신의 가계를 뒤지기 시작했어.
임비 가계를 뒤져? 계보와 유전은 달라. 설령 살인자 조상이 있어도 세대가 섞이면서 희미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도대체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어디까지 끌고 가려는 거야.
곰비 맞아. 하지만 이 사람의 조상들은 역사책에도 나오는 폭군에 살인자들이 많았다는 거지. 결국 이 학자의 뇌 역시 조상들처럼 사이코패스 살인자 뇌와 같았고. 곰곰이 되짚었어. 난 왜 이런 뇌를 갖고 태어났는데 그런 성향이 발현되지 않은 걸까, 하고.
임비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는데, 어째 다시 조상탓 할 거 같아서 조마조마 하다.
곰비 그는 여태까지 연구했던 자신의 자료들을 다시 살펴봤지. 수감된 사이코패스 살인자들 중 70% 이상이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고, 특히 그중 어린 시절에 학대 받은 사람이 99%였다는 거야. 이 사람은 애초에 범죄자는 태어나는 거라고 했던 자신의 생각을 뒤집기 시작했어.
우리를 만드는 건 본성이 아니라,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하고.
학대와 그 정도의 스트레스가 타고난 나쁜 본성을 발현하도록 하는 거라고.
임비 학대하지 말란 거는 몰라도 과도한 스트레스까지 안 주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
곰비 적어도 환경과 교육으로 본성을 엎을 수 있다는 거잖아. 꼭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을 제대로 건너지 못하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거지. 당사자는 물론 우리 온 사회, 부모, 학교, 친구가 몽땅 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비용은 엄청난 거라고.
따라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이렇게 흔하게 유통되는 한편 ‘개과천선’이란 말도 있다는 것은, 사람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인내와 고통의 비용은 매우 크다는 거야.
임비 희망이야, 절망이야? 부모들한테 미안한 일이지만, 몇 년 전 엄마를 죽인 아이가 생각났어. 언제나 1등 아니면 야구방망이로 맞다가, 맞다가 엄마를 죽였던 사건.
아, 이토록 무거운 희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