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하늘의 나침반

잠언 3장 강해

by Joseph H Kim

지혜문학의 정수, 일상으로 스며드는 하나님의 임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성경의 지혜문학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가 우리의 복잡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위대한 영적 유산입니다. 그중에서도 잠언은 단순한 도덕적 격언이나 고대 사람들의 처세술을 모아놓은 책이 결코 아닙니다.


브루스 월트키(Bruce K. Waltke)와 같은 탁월한 구약 학자들의 주석에 따르면, 잠언 1장부터 9장까지는 이어지는 수많은 잠언들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신학적이고 해석학적인 렌즈 역할을 합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잠언 3장은,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신뢰가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과 윤리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혜문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성과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 현대인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미래에 대한 짙은 안개와 같은 불안감과 우울증, 그리고 관계의 단절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 이성의 오만함은, 결국 허무함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잠언 3장이 들려주는 하늘의 지혜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영혼을 먹먹하게 울립니다.


오늘 이 시간, 고대 히브리어 원어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바탕으로 성경이 본래 의도했던 진리를 함께 캐내어 보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이 진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의 일터와 가정, 그리고 내면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생명력 있게 적용될 수 있는지 따뜻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잠언 3장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아버지의 교훈(1-12절), 둘째, 생명나무로서의 지혜가 지니는 우주적 가치(13-26절), 셋째, 지혜를 소유한 자의 실천적인 이웃 사랑(27-35절)입니다. 자, 이제 이 경이로운 지혜의 숲으로 함께 걸음을 내디뎌 보시겠습니까?


첫 번째 교훈: 마음판에 새겨야 할 하늘의 성품 (1-4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언 3장 1절)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언 3장 2절)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3장 3절)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3장 4절)


지혜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 권위적인 억압이 아닌, 가슴 절절한 사랑의 언어로 훈계를 시작합니다. 본문에서 '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라(תּוֹרָה)는 단순히 율법주의적인 규칙이나 금지 조항의 나열이 아닙니다. 토라의 어원은 '방향을 제시하다', '교훈하다'는 의미를 지니며, 우리 삶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가장 안전한 길을 뜻합니다.


이 하늘의 교훈을 지킬 때 주어지는 축복은 장수와 평강입니다. 여기서 평강을 의미하는 샬롬(שָׁלוֹם)은 단순히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과 외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 모두가 완벽하게 조화롭고 온전한 상태, 즉 충만한 참된 안식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명상, 심리 상담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고군분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진정한 샬롬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교훈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을 때뿐이라고 선언합니다.


특히 3절은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신학적 단어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바로 '인자'와 '진리'입니다. 원어로는 헤세드(חֶסֶד)와 에메트(אֱמֶת)입니다. 헤세드는 상대방의 어떠함이나 상황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언약적이고 충성스러운 사랑을 뜻합니다. 에메트는 견고함, 확실함, 그리고 결코 배신하지 않는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는 본래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핵심 용어입니다. 잠언은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이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을 목에 매고 마음판에 새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대 중동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귀중한 인장이나 부적을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가장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거나, 중요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적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지갑이나 수첩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 즉 '마음판(레브, לֵב)'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넘어, 나의 인격과 삶의 태도로 완전히 녹아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성품을 지닌 사람에게 주어지는 약속은 놀랍게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은총(헨, חֵן)'과 귀중히 여김입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관계를 철저한 이익의 교환이나 네트워킹의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타인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겉모습을 꾸미고 화려한 스펙을 쌓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호의와 존경은 의도적인 이미지 메이킹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헤세드와 에메트라는 하늘의 성품이 우리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와 타인의 삶을 적실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거룩한 열매인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전적인 신뢰 (5-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장 5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장 6절)


이 두 구절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해 주는, 참으로 많은 신앙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인생 구절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는 명령에서, 신뢰하다의 히브리어 바타흐(בָּטַח)는 바닥에 얼굴을 대고 완전히 엎드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단어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무게를 온전히 맡기는 상태를 의미하지요.


마음(레브, לֵב)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단순한 감정의 저장소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의지, 그리고 결단이 이루어지는 전인격의 중심 통제실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플랜 B나 비상구를 남겨두지 않고,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모든 방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철저한 위탁을 뜻합니다.


솔로몬은 신뢰의 반대 개념으로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의지하다로 번역된 샤엔(שָׁעַן)은 지팡이나 목발에 체중을 싣고 기대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어 원어에 숨겨진 매우 충격적이고 깊은 통찰을 발견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의지하지 말라"고 할 때, 일반적인 부정어인 로(לֹא)를 사용하지 않고 알(אַל)을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의 어근을 추적해 보면 알랄(אָלַל), 즉 '아무것도 아님(nothing)'이라는 뜻과 연결됩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참으로 놀라운 의미가 도출됩니다. "너의 얄팍한 명철에 기대는 것은, 곧 아무것도 아닌 텅 빈 허공에 너의 체중을 싣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성은 그 자체로 훌륭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이 창조주의 지혜를 대체하는 궁극적 의존의 대상이 될 때, 그것은 결국 썩은 지팡이나 부러진 갈대와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깊은 상처를 내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고대 랍비들의 문헌은 이 알(אַל)이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재미있게 해석했습니다. 하늘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을 견고한 파이프(통로)를 통해 공급받는 것으로 상징을 풀어냈지요. 두려움과 염려라는 적군이 우리의 삶을 포위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견고한 생명의 파이프에 우리의 마음을 연결해야 합니다. 만약 이 통로를 나의 얄팍한 계산에 연결한다면, 흘러나오는 물은 이내 우리의 교만과 두려움으로 인해 흙탕물처럼 오염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이토록 전적인 신뢰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6절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답합니다. '인정하다'로 쓰인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지식적인 동의를 넘어선, 경험적이고 친밀한 관계적 앎을 의미합니다. '범사'라는 것은 주일 아침 예배당 안에서의 종교적 행위만이 아닙니다. 월요일 아침의 피곤한 출근길, 직장 상사와의 갈등, 재정을 관리하는 방식, 심지어 배우자와 다투고 화해하는 그 모든 평범하고 세속적인 일상 속에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신뢰할 때, 하나님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직역하면 "너의 길을 곧고 평탄하게 만드시리라"입니다. 이는 인생에 장애물이나 고난이 전혀 없으리라는 값싼 성공 복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거대한 폭풍우를 만나 경로를 이탈한 것 같은 그 막막한 순간에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가장 영광스럽고 선한 목적지로 정확하게 재탐색하여 인도하시겠다는 신실한 약속입니다. 내 영혼의 절대적인 내비게이션이신 창조주께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세 번째 교훈: 겸손의 치유력과 첫 열매의 경제학 (7-12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언 3장 7절)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잠언 3장 8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언 3장 9절)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장 10절)


이성적 교만은 우리 안에 지혜가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독초입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과신은 필연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이탈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히 악에서 떠나는 태도는, 영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의 육체적 영역에까지 강력한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줍니다.


8절에서 '네 몸'(원어로는 탯줄 혹은 배꼽)과 '골수'라는 표현은 단순한 해부학적 용어가 아니라 인간 육체의 가장 깊은 중심이자 생명력이 솟아나는 근원을 상징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통제하려는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으며 뼈가 마르는 듯한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얻는 영혼의 참된 안식은, 상처 입고 망가진 육체와 마음의 세포들을 치유하고 윤택하게 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우리에게 공급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이 신뢰는 마음속에만 머무는 추상적 관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갑과 재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9절은 우리 소유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할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쓰다 남은 여유분을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모든 자원과 호흡의 절대적인 주인이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나의 물질로 고백하는 신앙의 아름다운 절정입니다.


재물은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목적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청지기적 도구일 뿐입니다. 돈이라는 우상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지 않고, 기꺼이 내 소유의 첫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빈곤의 공포를 씻어내는 하늘의 풍성한 채우심, 곧 창고가 넘치는 은혜를 약속하여 주십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잠언 3장 11절)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 3장 12절)


하지만 여러분, 믿음의 길을 걷는 신자의 삶에 항상 물질적 축복과 육체의 강건함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은 이 지점에서 우리가 예기치 않게 직면하게 되는 '고난'과 '징계'의 문제를 다룹니다. 현대 사회는 쓴소리를 거부하고 귀에 듣기 좋은 긍정의 메시지만을 취하려 합니다.


그러나 잠언은 여호와의 징계(무사르, מוּסָר)가 철저히 '사랑의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역설합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다섯 살 난 아이가 굴러가는 공을 주우려고 쌩쌩 달리는 차도로 갑자기 뛰어들려 한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존중해 주어야지"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며 아이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어 뒤로 끌어당길 것입니다. 아이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겠지만, 아버지의 그 과격해 보이는 행동은 결코 분노가 아니라 아이의 생명을 살려낸 가장 처절하고 깊은 사랑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가 파멸의 벼랑 끝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은 때로 고난이라는 메가폰을 통해, 혹은 뼈아픈 책망을 통해 우리의 걸음을 멈춰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겪는 환난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절망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이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참된 자녀'라는 가장 눈부시고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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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교훈: 생명나무를 품에 안은 자의 영광 (13-26절)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잠언 3장 13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잠언 3장 14절)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잠언 3장 15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언 3장 18절)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잠언 3장 19절)


잠언 3장의 중간 단락은 마치 한 편의 장엄한 교향곡처럼 지혜의 우주적 가치와 영광을 찬양합니다. 13절의 '복이 있나니(아슈레이, אַשְׁרֵי)'로 시작하여 18절의 '복되도다(메우샤르, מְאֻשָּׁר)'로 끝을 맺으며, 지혜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궁극적이고 완전한 행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은과 금, 부동산과 주식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불태웁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한 보석과 당신이 밤새워 사모하는 성공의 조건들도, 이 하늘의 지혜가 가져다주는 영혼의 부요함과는 결단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압도적인 선언은 18절에 등장합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생명나무(에츠 하임, עֵץ חַיִּים)'에 비유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지혜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여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불타는 화염검에 의해 철저히 차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이제 그 막혀버린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길을 다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그 영광스러운 생명나무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참된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십자가라는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의 나무에 친히 달리셔서, 우리를 위한 영원한 생명나무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대인들은 과학과 이성, 철학이라는 수많은 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떠난 세상의 사상들은 거센 삶의 폭풍우 앞에서는 비에 젖어 허물어지는 종이상자처럼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만이, 어떠한 인생의 환난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굳건히 지탱하는 흔들림 없는 생명의 뿌리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지혜는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9절은 여호와께서 바로 이 지혜(호크마, חָכְמָה)와 명철(테부나, תְּבוּנָה)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다고 선언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원리가 바로 이 지혜라면, 우리가 그 지혜를 인생의 반석으로 삼고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과 일터 역시 창조의 본래 목적대로 가장 아름답고 튼튼하게 세워질 줄 믿습니다.


다섯 번째 교훈: 이웃을 향해 흘러가는 지혜의 강물 (27-35절)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언 3장 27절)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잠언 3장 28절)


성도 여러분, 잠언이 가르치는 하늘의 지혜는 결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련하는 고상한 명상이나 책상머리의 철학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생명나무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 자는, 필연적으로 그 받은 사랑을 내 이웃을 향해 따뜻하게 흘려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회복은, 반드시 이웃과의 수평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되기 마련입니다.


27절은 우리의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아끼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여기서 '선'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나 입에 발린 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의 절박한 필요를 채워주는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내 지갑에 있는 재물과 내 손에 있는 힘의 궁극적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내 손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주어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한 사랑의 배달부'로 부르셨음을 의미합니다.


더욱 우리의 양심을 찌르는 것은 28절이 강조하는 '시간의 윤리'입니다. 이웃이 간절히 도움을 청할 때, 내 수중에 그를 도울 것이 있음에도 "지금은 바쁘니 내일 다시 오라"고 미루는 행위는 심각한 악이자 어리석음입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여덟 살 난 아이에게 25센트를 주었습니다. 누나가 "그 돈을 불우이웃에게 기부하는 게 어때?"라고 제안하자,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난 이걸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그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기부하게 만들래!".


이 아이의 귀여운 핑계가 혹시 우리 어른들의 마음속에도 고스란히 숨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선행을 결심하면서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내일 시간이 나면"이라며 그 책임을 끊임없이 유예합니다. 선행을 내일로 미루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웃의 절박한 생존보다 나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이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참된 지혜자는 "사랑을 실천할 가장 완벽한 타이밍은,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바로 지금"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잠언 3장 29절)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잠언 3장 30절)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잠언 3장 31절)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잠언 3장 32절)


세상을 살다 보면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며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악인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우리의 마음은 억울함으로 요동칩니다. 그러나 잠언은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포악한 자의 겉모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시며 그들의 화려한 집에는 결국 여호와의 무서운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반면 세상의 눈에는 조금 미련해 보일지라도 묵묵히 정직을 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친밀한 '교통하심(우정)'이 늘 함께하십니다. 거만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비웃음을 당하게 될 것이나,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지혜로운 자는 결코 썩지 않을 영광을 기업으로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지혜, 불확실성을 뚫고 나아가는 능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잠언 3장은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지만 정작 내 영혼이 걸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너무나도 선명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우리의 얄팍한 명철로는 한 치 앞의 미래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지혜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을 다해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의 굽어진 길은 곧게 펴지며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말라가던 우리 영혼의 뼈에는 하늘의 윤택함이 공급될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생명나무의 은혜를 깊이 맛본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을 불안하게 움켜쥐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핑계 대지 않고 오늘 당장 따뜻한 손을 내미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는 아버지의 숨겨진 사랑을 발견하고, 이웃의 처절한 눈물 앞에서는 내 주머니를 기꺼이 여는 삶. 이것이 바로 거친 세상의 바다를 가장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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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토록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과 진실함으로 매일 우리를 찾아오시는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거친 폭풍우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만을 의지하며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통제하려 했던

우리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을 이 시간 깊이 회개합니다.


부러지기 쉬운 헛된 지팡이에 내 영혼의 무게를 실으려 했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우리가 월요일의 출근길부터 주말의 쉼까지 우리 삶의 모든 순간, 범사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권을 인정하며 엎드리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굽어지고 험한 인생길을 가장 선하고 완벽한 목적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때로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과 아픈 책망조차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징계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직 생명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혜만을 나의 유일한 반석으로 굳게 붙잡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염려로 말라가던 우리 영혼의 뼈가 윤택해지고 하늘의 평강이 강물처럼 넘치게 하옵소서.

나아가 이 놀라운 은혜가 결코 우리 자신만의 배를 불리는 데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손에 남은 작은 힘과 자원들이, 남몰래 눈물 흘리며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해

내일로 미루어짐 없이, 어떤 계산도 없이 오늘 당장 따뜻한 위로와 실제적인 도움으로 흘러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시대를 향해 생명을 전하는 거룩한 사랑의 배달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토록 변함없는 지혜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생명나무의 지혜를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히 여김을 받는 빛나는 영광과,

창고가 가득 차고 새 포도즙이 넘쳐나는 하늘의 풍성한 복이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따뜻하고 넉넉하게 함께 머물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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