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샘을 지키고 빛의 길을 걷는 지혜의 여정

잠언 4장 강해

by Joseph H Kim

가장 위대한 유산, 영혼의 대시보드를 세팅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지혜의 여정에 계속해서 동참하고 계신 진리의 순례자 여러분께 주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앞선 잠언 1장부터 3장까지의 긴 호흡을 통해 우리는 지혜(히브리어: 호크마, חָכְמָה, Chokmah) 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놀라운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깊이 묵상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새롭게 문을 열고 들어갈 잠언 4장은, 그동안 닦아온 지혜의 거시적인 원리들을 우리의 실제적인 일상, 즉 내면의 마음(히브리어: 레브, לֵב, Leb) 과 삶의 발걸음(히브리어: 데렉, דֶּרֶךְ, Derek) 이라는 치열한 현장 속으로 끌어내리는 매우 역동적인 본문입니다.


잠언 4장의 문을 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차가운 교실의 강단에서 율법을 낭독하는 깐깐한 교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거실 벽난로 앞에 자녀들을 다정하게 불러 모은 늙은 아버지의 온기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여러분, 현대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두둑한 통장 잔고나 번듯한 부동산, 혹은 명문대의 빛나는 졸업장을 물려주기 위해 평생을 바치며 희생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디지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선택과 양심마저 소리 없이 재편하는 이 첨단의 시대에, 부모가 자녀에게 쥐여줄 수 있는 진짜 생존 무기는 결코 썩어 없어질 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보의 홍수와 수많은 유혹 속에서 스스로 바른길을 찾아내고, 맹독성 문화로부터 자기 영혼을 방어해 내는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힘, 곧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한 윤리적 도덕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었던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생생한 신앙 전수의 현장입니다. 아버지의 심장 깊은 곳에서 아들의 심장으로, 그리고 다시 오늘 우리의 심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이 가슴 뜨거운 지혜의 편지를 통해, 오늘 잃어버린 우리 삶의 방향성을 되찾고 영혼의 대시보드를 새롭게 세팅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그 지혜의 첫 번째 여정으로 함께 발걸음을 내디뎌 보겠습니다.


첫 번째 여정: 십자가의 은혜로 빚어진 지혜의 유산


먼저 잠언 4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한 절씩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음미하며 읽어보겠습니다.


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2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3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5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잠언 4장의 시작은 매우 친밀하고 따뜻한 가정의 풍경을 우리에게 그려줍니다. 1절에서 솔로몬은 아들들아라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차가운 교실에서 법조문을 낭독하는 율법 교사의 모습이 아니라, 벽난로 앞에 자녀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의 인생 경험을 나누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 권력의 왕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왕의 권위로 군림하지 않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아들들과 영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는 바로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전수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의무요, 배우는 것은 자녀의 의무입니다. 이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신앙의 유산이 흘러갑니다.


특히 3절의 고백은 우리의 가슴을 아주 깊게 울립니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우리는 솔로몬의 아버지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었던 다윗 왕이며, 그의 어머니가 밧세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팩트로만 따져본다면, 솔로몬의 이 고백은 조금 의아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었으며, 밧세바에게도 솔로몬 외에 다른 아들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자신을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라고 특별하게 표현했을까요?


탁월한 신학자들과 성경 주석가들은 이 짧은 구절 속에 담긴 깊은 구속사적 은혜와 슬픈 가족사를 지적합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결합은 끔찍한 불륜과 살인이라는 죄악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범죄의 결과로 잉태되었던 그들의 첫 번째 아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 속에서 그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회개했지만,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뼈저린 슬픔과 처절한 회개의 골짜기를 통과한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은혜로 다시 주신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자신이 완벽한 혈통이나 뛰어난 자질을 가졌기 때문에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철저히 부모의 눈물 어린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하심 안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유약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라크(רַךְ, Rak)와 외아들이라고 번역된 야히드(יָחִיד, Yachid) 는 단순히 숫자가 하나라는 뜻을 넘어, 부드럽고 연약하여 누군가의 사랑과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별한 사랑의 대상임을 의미합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눈에 비친 솔로몬은 십자가의 은혜와 용서를 상징하는 언약의 자녀였습니다.


다윗은 이토록 귀하고 연약한 아들에게 권력의 암투에서 살아남는 법이나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군사적 전술을 가장 먼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노년의 아버지는, 아들의 심장 한가운데에 영원히 변치 않을 지혜의 말씀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4절). 이것이야말로 다윗이 솔로몬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주려 애쓰고 있습니까? 현대 사회는 좋은 대학의 졸업장, 넉넉한 통장 잔고,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물려주는 것을 부모의 능력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의 전수는 그러한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출판된 지혜로운 아빠들을 위한 유머러스하면서도 뼈가 있는 조언들을 엮은 책의 내용을 잠깐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아빠들이 육아를 하며 깨달은 눈물겨운 진리들이 짧은 트위터 글로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어릴 때 받았던 양육 방식이 성공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장마차와 마차도 그 시대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시대에 맞게 당신의 양육 방식을 업데이트하십시오. 또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당신은 당신의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인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주 순식간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조언은 이것입니다.

아빠의 어휘 사전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는 내가 틀렸다입니다. 겸손과 취약함 속에는 엄청난 힘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완벽함이 아니라, 부모의 겸손한 동행과 존재 자체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따뜻한 동행과 지혜의 전수에 관한 가슴 뭉클한 예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지역사회에서 있었던 핀우드 더비, 즉 소나무 자동차 경주 대회 이야기입니다. 여덟 살 난 소년 길버트가 컵스카우트 모임에서 작은 나무토막 하나와 네 개의 플라스틱 바퀴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스카우트 대장의 지시는 이 재료들을 가지고 아빠와 함께 멋진 미니 자동차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길버트의 아빠는 가정과 아이에게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길버트가 설명서를 내밀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빠는 코웃음을 치며 외면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도록 나무토막은 방구석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목공 기술이 전혀 없었기에, 자신이 설명서를 읽어주고 어린 길버트가 직접 톱질을 하고 사포질을 하며 스스로 자동차를 만들게 했습니다.


경연 대회 날, 체육관에는 다른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만든 화려하고 유선형의 날렵한 자동차들이 즐비했습니다. 반면 길버트가 혼자 깎아 만든 블루 라이트닝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는 삐뚤빼뚤하고 흠집투성이인 아주 투박한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 곁에는 모두 듬직한 아빠들이 서 있었지만, 길버트 곁에는 어머니만이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길버트의 못생긴 자동차를 보며 킥킥거렸고, 길버트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경주에서 놀랍게도 길버트의 투박한 자동차가 화려한 자동차들을 하나씩 물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에서 승리하여 길버트가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 감동은 우승 트로피에 있지 않습니다. 길버트는 비록 투박할지라도, 그리고 아빠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나무를 깎고 조립하며 삶의 장애물을 극복해 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방향을 잃지 않도록 설명서를 읽어주며 응원해 준 묵묵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그리고 솔로몬이 다시 자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것은 화려하게 포장된 성공의 결과물이나 세상의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험난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힘, 곧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본문 8절과 9절은 우리가 이 지혜를 높이고 품을 때, 지혜가 우리를 영화롭게 하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우리 머리에 씌워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지혜를 꽉 붙잡는 것은 치열한 영적 몸부림입니다. 세상의 유산은 쓰면 쓸수록 사라지고 닳아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자녀의 평생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영광의 관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여정: 인생의 두 갈래 길, 당신의 내비게이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가정의 따뜻한 품에서 시작된 솔로몬의 교훈은 이제 10절부터 인생의 길이라는 거대한 은유와 스케일로 전환됩니다. 본문 10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천천히 묵상해 보겠습니다.


10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11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12 다닐 때에 네 걸음이 피곤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14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15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16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17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구약성경에서 길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데렉(דֶּרֶךְ, Derek) 은 단순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물리적인 도로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데렉은 한 사람의 삶이 지향하는 목적의식적인 방향성이자, 그가 평생에 걸쳐 구축해 온 도덕적 생활 방식 전체를 포괄하는 매우 거시적인 단어입니다.


솔로몬은 우리 앞에 선명하게 대조되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와 정직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파멸로 이끄는 사악한 자와 악인의 길입니다.


우리는 잠언 4장의 이 부분에 적용된 문학적 장치의 탁월함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 시인들은 중요한 메시지를 강조할 때 교차 대구법이라는 정교한 구조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교차 대구법은 주제를 대칭적으로 배치하여 독자의 시선을 중심 메시지로 강렬하게 이끌어가는 수사학적 기법입니다. 14절과 15절의 구조를 살펴보면 이 기법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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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에서 보듯, 솔로몬은 점층적이고 반복적인 동사들을 연속으로 사용하여 악의 길에서 단호하게 돌아설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구절이 악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그 길에서 벗어나려는 영적 투쟁이 동반되어야 함을 보여준다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악을 행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종의 악의 중독자들처럼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6-17절).


이 대목에서 저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자동차 내비게이션, 즉 GPS와 관련된 촌극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미국의 한 뉴스 채널에서 보도된 내용입니다. 어떤 운전자들이 렌터카를 몰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GPS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크고 안전한 주도로가 아닌 인적이 드문 동네의 좁고 험한 숲길로 경로를 안내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석에서 창밖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 길이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길은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운전자들은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직진하십시오라는 기계음을 맹신하며 끝까지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 결과 차는 깊은 진흙 구덩이에 처박혀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구조된 후 나는 그저 GPS가 시키는 대로 갔을 뿐이다라고 항변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같으십니까? 사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영적 현주소를 정확히 꼬집어주는 메타포입니다. 세상의 문화와 세속주의라는 내비게이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많은 돈, 더 높은 권력, 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의 길로 가라고 경로를 안내합니다. 그 길이 비록 불의의 떡을 먹고 강포의 술을 마시는 길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스마트한 지름길이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변증가였던 C.S. 루이스는 그의 명저 순전한 기독교에서 진정한 진보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진보란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실수로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면, 그 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닙니다. 잘못된 길에 서 있다면, 진정한 진보란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아서서 올바른 길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내비게이션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은 열심이 아니라 파멸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슈브(שׁוּב, Shuv)라고 하는데, 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180도 완전히 바꾸어 생명의 길로 돌아서는 결단을 뜻합니다.


솔로몬은 18절과 19절에서 이 두 갈래 길의 종착지를 극명한 빛과 어둠의 대비로 묘사하며 결론을 맺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과 같습니다. 중동 지방의 일출을 상상해 보십시오. 새벽의 여명은 처음에는 희미하고 옅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밝아져 마침내 세상을 온전히 비추는 한낮의 눈부신 광명에 이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지혜로운 삶은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좁은 길 같고 외로워 보이지만, 갈수록 그 은혜와 평강이 선명해지며, 마침내 온전한 영광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반면 악인의 길은 칠흑 같은 짙은 어둠입니다. 빛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장애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수많은 덫과 함정에 걸려 넘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넘어뜨린 것이 무엇인지, 왜 자신이 불행한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무서운 영적 시각 장애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잘못된 길에 서 있다면 오늘 즉시 발걸음을 돌이켜, 날마다 한낮의 광명을 향해 나아가는 의인의 궤도에 진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여정: 생명의 샘,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이제 솔로몬의 교훈은 잠언 4장의 최고 절정이자 심장부,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진입합니다.

20절부터 마지막 27절까지의 말씀을 깊은 묵상으로 읽겠습니다.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무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그리고 빛의 자녀로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이나 가슴(heart)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감정적인 기분이나 로맨틱한 사랑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마치 발렌타인데이에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핑크빛의 하트 모양 초콜릿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히브리인들에게 마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었습니다.


잠언에 자주 등장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레브(לֵב, Leb) 는 단순한 감정의 보관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지성과 의지와 양심과 감정이 모두 통합된 전인적인 중심이자 존재의 사령부입니다. 인간이 내리는 모든 도덕적 결정, 하나님을 향한 헌신, 그리고 삶을 이끌어가는 의지의 동력이 바로 이 레브, 즉 마음에서부터 뿜어져 나옵니다.


특히 23절의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말씀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의 영혼을 울리며 경성케 해온 위대한 명언입니다. 이 구절을 원어의 의미를 살려 깊이 분석해 보면 그 영적 무게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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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분석에서 보듯,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조용한 산사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는 식의 수동적인 평정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침입해 들어오는 온갖 죄악의 바이러스와 유혹의 적군들을 철저히 차단하는, 피를 말리는 영적 전투이자 방어선 구축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군사적인 태세로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잠언은 우리의 마음이 곧 생명의 근원, 즉 맑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수원지이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수원지가 오염되면, 아무리 화려한 수로를 만들어 놓아도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물이 독을 품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분노, 시기, 탐욕, 그리고 음란함의 찌꺼기를 방치해 두면, 우리의 입술의 언어와 손발의 행동,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모두 치명적으로 병들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7장에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시며, 그 모든 악한 것들이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적인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금은 유머러스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예화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의 한 가족이 휴가를 맞아 로드트립을 떠났습니다. 차 뒷좌석에 앉아 풍경을 보던 십대 딸이 길가에 세워진 프로즌 요거트 프랜차이즈인 TCBY의 간판을 보고 갑자기 손뼉을 치며 소리쳤습니다. 아하! 세상에, 이제야 알겠어. TCBY가 바로 세계 최고의 요거트라는 뜻의 The Country's Best Yogurt의 약자였구나! 딸은 십 년이 넘도록 동네에서 그 간판을 수백 번도 더 보아왔지만, 그 글자가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잠언 4장 23절 말씀을 수없이 암송하고, 예쁜 액자에 넣어 거실 벽에 걸어두며,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삽니다. 하지만 정작 일상생활 속에서 내 마음의 보초를 서는 일에는 너무나 무감각합니다.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TCBY 간판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형국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이 잠언의 설교를 들은 후, 마음을 지키라라는 말씀을 작은 포스트잇에 적어 자동차 대시보드에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운전할 때마다 계기판의 경고등을 확인하듯, 내 영혼의 대시보드에 교만이나 분노의 빨간불이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다른 비유를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엄청난 금은보화와 현금이 가득 쌓여 있는 대저택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외출을 하거나 잠자리에 들 때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시겠습니까? 당연히 이중 삼중으로 튼튼한 자물쇠를 채우고, 최첨단 CCTV와 보안 시스템을 가동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재물과 통장 비밀번호를 지키는 데는 그토록 예민하면서도, 정작 영원한 생명의 샘인 자신의 마음의 문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미디어와 부정적인 가십, 음란한 생각들에게 활짝 열어둔 채 무방비 상태로 살아갑니다. 지혜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 문 앞에 성령님의 검을 든 영적인 경비원을 24시간 철저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의 오래된 지혜로운 이야기 하나가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인디언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세모 모양의 뾰족한 양심이 들어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죄를 짓거나 나쁜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세모 모양의 양심이 빙글빙글 돌면서 뾰족한 모서리로 우리 마음의 벽을 콕콕 찔러 아픔과 가책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죄를 지으면 금방 울음을 터뜨리고 회개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죄를 짓다 보면, 빙글빙글 도는 세모의 뾰족한 모서리가 점점 닳고 무뎌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서리가 다 깎여나가 동그란 원형으로 변해버리면, 그 양심은 아무리 마음속을 굴러다녀도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아픔이나 죄책감도 주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디모데전서에서 경고했던 화인 맞은 양심, 영적 무감각의 무서운 실체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형으로 무뎌지기 전에,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예리한 숫돌에 우리의 영혼을 기경하고 양심을 날카롭게 갈고닦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24절부터 27절을 통해, 지켜진 마음이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행동 강령으로 제시합니다. 흥미롭게도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시작된 교훈은 입술, 눈, 그리고 발이라는 신체의 각 부위로 확장되며 구체화됩니다. 이는 매우 해부학적이고 유기적인 점진성을 보여주는 탁월한 전개입니다.


첫째,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4절). 마음에 가득 찬 것이 결국 입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우리 입술에서 원망과 불평, 남을 헐뜯는 비난과 파괴적인 언어의 습관을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마음의 샘이 맑으면 언어의 물줄기도 맑아집니다.


둘째,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5절). 시선은 영혼의 창입니다. 스마트폰 스크린과 화려한 광고들이 1초 단위로 현대인들의 시선을 빼앗는 유혹의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푯대와 거룩한 목표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고정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무너진 것도, 선악과를 바라보던 그 시선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27절). 궁극적으로 철저하게 지켜진 마음, 거룩해진 입술, 정결한 시선은 바른 행동과 삶의 궤적을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좌우로 비틀거리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다 깊은 곳을 소리 없이 항해하는 거대한 핵잠수함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십시오. 잠수함 내부에는 승조원들이 수개월 동안 바다 밑에서 버틸 수 있도록 충분한 식량과 식수, 그리고 원자력이라는 엄청난 에너지가 비축되어 있습니다. 피지컬적으로는 완벽한 요새와 같습니다. 그러나 잠수함이 가진 생존을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 잠수함의 심장부에 있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진북(True North), 즉 정확한 기준점과 좌표에 정렬되어 있지 않다면 그 잠수함은 결코 임무를 완수할 수 없으며 결국 암초에 부딪히거나 심해에서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 인생의 항법 장치입니다. 내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고 재산이 넉넉하다 할지라도, 내 마음의 영점 조준이 진북이신 하나님께로, 그분의 생명의 말씀에 정확히 정렬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삶의 풍랑 속에서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마음이 주님께 정렬되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세상의 어둠을 뚫고 빛의 목적지를 향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샘을 굳건히 지키며 돋는 햇살의 길로 힘차게 걸어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잠언 4장의 말씀은 그저 옛 시대의 진부한 도덕적 훈계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늘어놓는 잔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생명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는 우리들을 빛의 나라로 이끌기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의 편지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눈물로 빚어낸 은혜의 유산이 솔로몬에게 어떻게 지혜로 전수되었는지 보았습니다. 부모 세대의 눈물의 기도와 신앙의 모범은 자녀 세대를 지켜내는 가장 든든한 영적 울타리가 되며,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자녀들의 머리 위에 쓰일 가장 아름다운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정은 결코 완벽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유혹에 이끌려 길을 잃고 방황할 수도 있고, 세상의 세속적인 내비게이션에 속아 깊은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습니다. 무뎌진 인디언의 세모 양심처럼 우리의 영혼이 딱딱하게 굳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오류를 깨달은 즉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차를 돌려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진보이듯,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여 날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을 180도 수정하며 돌아가는 거룩한 회개의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성벽에 성령의 파수꾼을 세우십시오. 세상의 독이 흘러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닫아걸고, 영혼의 대시보드를 수시로 점검하십시오. 구부러진 언어를 잘라내고, 헛된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며, 여러분의 발걸음을 영원한 진리의 길 위에 단단히 세우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록 어두운 터널을 지날지라도 결국 돋는 햇살과 같이 점점 크게 빛나, 마침내 주님 품에 안기는 그 한낮의 광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잠언 4장의 핵심 성구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언 4장 18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기도


생명의 샘이 되시며 온갖 지혜와 명철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잠언 4장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이 생명수가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시고,

굳어진 양심을 부드럽게 기경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 세상의 화려한 불빛과 거짓된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악인의 길로 쉼 없이 유혹할 때,

그 길을 철저히 피하고 단호하게 돌아서서 생명의 길을 걷는 영적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우리 영혼의 대시보드를 점검하게 하시고,

죄로 인해 무뎌진 우리 마음의 모서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날카롭게 벼려 주시옵소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우리의 마음을 나차르, 곧 철저한 파수꾼의 심정으로 지켜내게 하사,

우리의 입술과 눈빛과 발걸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향기를 온전히 뿜어내게 하옵소서.


영원한 진리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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