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1장부터 9장까지가 지혜의 본질과 우주적 가치에 대한 웅장한 서론이자 심오한 권면이었다면, 10장부터 시작되는 솔로몬의 잠언은 그 지혜가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살아가는 거친 일상의 한복판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브루스 월키와 트렘퍼 롱맨 같은 탁월한 구약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대조법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의인과 악인의 삶이 어떻게 극명하게 갈라지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솔로몬의 첫 번째 잠언집으로 분류합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살펴볼 잠언 11장은 추상적인 진리를 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의 저울, 이웃과의 대화, 재정적인 보증, 심지어 여성의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영역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일의 거룩한 예배당 안에만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의 사무실과 화요일 오후의 시장 골목, 그리고 우리의 모든 재정적, 관계적 거래 한가운데서 우리 삶을 지켜보고 계심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이 시간, 본문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대속의 은혜를 함께 발견하며, 일상 속에서 지혜의 길을 걷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잠언 11장 1절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성도 여러분, 잠언 11장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주제는 다름 아닌 시장 경제와 비즈니스 윤리입니다.
고대 근동의 상인들은 허리춤에 가죽 주머니를 차고 다녔는데, 그 안에는 물건의 무게를 달기 위한 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상인들은 살 때 쓰는 무거운 돌과 팔 때 쓰는 가벼운 돌, 두 종류의 추를 교묘하게 숨겨놓고 사람들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놀라운 단어를 사용합니다. 속이는 저울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토에바(tow'ebah)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도덕적으로, 또는 종교적 의식적으로 구역질이 날 만큼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것을 뜻할 때 쓰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우리의 일상적인 비즈니스 속임수와 경제적 불의를 가증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공평한 추로 번역된 히브리어 샬렘(shalem)은 완전한, 결함이 없는, 평화로운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상거래와 인간관계가 속임수 없이 온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큰 기쁨으로 삼으십니다.
현대 사회는 종종 이윤 극대화라는 명목 아래 작은 속임수나 편법을 지혜로운 처세술로 포장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실한 성도의 영성이 주일의 기도 소리에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영수증의 숫자와 세금 신고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맺는 계약의 정직함에서 증명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의 일터가 곧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저울 눈금 하나에도 창조주의 시선이 머물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의 시작점입니다.
잠언 11장 2절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정직의 문제를 다룬 후, 말씀은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동기인 교만과 겸손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단순히 남들 앞에서 우쭐대는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신의 인생 운전대를 자신이 쥐겠다는 영적인 반역입니다.
교만이 지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바로 영적인 시력 상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짙은 안개가 낀 밤, 거대한 해군 전함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레이더 전방에 불빛이 나타나자 충돌을 직감한 전함의 함장이 무전으로 호기롭게 명령했습니다. "여기는 해군 전함이다. 충돌 위험이 있으니 당장 너희의 항로를 15도 변경하라!" 그러자 무전기 너머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기는 캐나다 측입니다. 그쪽이 15도 항로를 변경하십시오." 화가 난 함장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나는 해군 함장이다! 당장 항로를 변경하라!" 상대방도 지지 않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등병입니다. 그쪽이 변경하십시오." 결국 함장은 분노로 이성을 잃고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우리는 태평양 함대에서 가장 크고 막강한 전함이다! 당장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무전기 너머로 짧고 묵직한 침묵이 흐른 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여기는 등대입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교만이 가진 치명적인 맹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교만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스스로 너무 크고 강하다고 믿기 때문에, 진리의 등대 불빛 앞에서도 자신의 항로를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결국 수치와 치욕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거친 바다 위를 떠도는 연약한 존재임을 깊이 자각하기에, 진리의 빛에 순응하여 기꺼이 자신의 항로를 수정합니다. 오직 겸손한 자의 심령에만 생명을 살리는 지혜가 머물 수 있습니다.
잠언 11장 3절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잠언 11장 4절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잠언 11장 5절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잠언 11장 6절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이 단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성실 또는 완전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툼마(tummah)입니다. 이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속부터 겉까지 질감이 완벽하게 똑같은 도덕적 순전함과 무결함을 의미합니다.
3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은 이 정직과 성실이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궁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악한 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타인을 속일 다양한 선택지들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그 복잡하게 얽힌 거짓의 덫에 자신이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반면, 성실한 자는 오직 진리의 말씀이라는 단 하나의 나침반만을 바라보고 우직하게 걷습니다. 처음에는 그 길이 좁아 보이고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그 툼마의 무결함이 그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냅니다.
특히 4절은 황금만능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폐부를 찌르는 엄중한 경고를 던집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재물을 모으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이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 앞에서는 그 어떤 통장 잔고도 우리의 영혼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임종을 앞둔 영국의 헨리 뷰포트 추기경이 "나의 이 모든 재물로도 죽음의 시간을 단 1분도 매수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절규했던 일화는 재물의 철저한 무익함을 증명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신자에게 값없이 덧입혀진 공의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는 유일한 구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11장 9절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잠언 11장 10절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잠언 11장 11절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잠언 11장 12절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잠언 11장 13절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솔로몬의 지혜는 개인의 내면적 영성을 넘어, 우리의 언어 생활이 속한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으로 시선을 넓힙니다. 본문은 특별히 남의 이야기를 퍼뜨리기 좋아하는 자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언어의 파괴력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가슴 철렁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남의 험담을 퍼뜨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가벼운 입술 때문에 마을의 선량한 목회자가 큰 오해를 받고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은 사람이 찾아가 눈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목회자는 사과를 부드럽게 받아들이며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당신의 깃털 베개를 가지고 교회 종탑 꼭대기로 올라가서 그 베개를 찢어 깃털을 바람에 날려 보내 주시겠습니까?" 그는 영문을 몰랐지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다시 내려온 그에게 목회자가 말했습니다. "이제 바람에 날려 간 그 깃털들을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나도 빠짐없이 주워 모아 오십시오." 그는 경악하며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깃털들은 이미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걸요." 그러자 목회자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당신을 개인적으로 용서할 수는 있지만, 당신이 흩뿌린 말의 깃털들이 이 공동체와 사람들의 마음에 입힌 상처는 결코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십과 험담은 이토록 공동체를 산산조각 내는 독약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자는 이웃의 연약함을 목격할 때 결코 소문을 내지 않고 무겁게 잠잠합니다. 신실한 자는 이웃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덮어주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랑으로 중보기도를 올립니다. 우리의 입술이 공동체를 찢어놓는 무기가 아니라, 허물을 덮어주고 성읍을 진흥하게 하는 축복과 생명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언 11장 14절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가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언 11장 15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잠언의 말씀 중 15절은 피상적으로 읽으면 단순히 "재정적인 보증을 절대 서지 말라"는 실용적인 경제 지침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낯선 사람의 빚을 무책임하게 떠안아 가족까지 파탄으로 몰아넣는 행위를 엄중히 경계합니다. 보증서기를 거절하는 자만이 재정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부정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우리 주님의 가슴 따뜻하고 장엄한 구원 역사는 이 구절의 철저한 반전에서 꽃을 피웁니다. 이 지혜의 말씀을 완벽하게 역행하심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뒤바꾸신 단 한 분, 바로 온 우주의 참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은 분명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한다"고 명시합니다. 에베소서 2장의 선언처럼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철저한 외인이었고,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빚을 진 자들이었으며, 영적으로 완전한 파산 상태에 놓인 사형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사, 기꺼이 이 낯선 죄인들, 아니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을 위하여 그 못 박힌 두 손으로 하나님의 공의 법정에서 보증의 손을 마주 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보증이 되시기로 자원하셨기에, 잠언의 경고 그대로 철저하게 손해를 당하시고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을 홀로 치르셔야만 했습니다. 성경 강해자 H.A. 아이언사이드는 히브리서 7장 22절의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이 바로 잠언의 이 은유를 구속사적으로 완성한 것이라 찬탄했습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그 어리석고 무모해 보이는 십자가의 핏빛 보증을 주님께서 기꺼이 서주셨기에, 오늘 파산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완벽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가슴 벅찬 은혜 앞에 우리는 오직 감사의 눈물로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잠언 11장 16절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잠언 11장 17절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잠언 11장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십자가의 보증이라는 무거운 은혜를 다룬 후, 본문은 인간의 내면적 성품과 덕성의 중요성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특별히 22절은 잠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시각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충격적인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분별력이 없는 것)"을 "돼지 코에 금 고리"에 빗대어 묘사합니다.
고대 중동 지역의 문화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코걸이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매우 귀하고 보편적인 풍습이었습니다. 정교하게 세공된 금 코걸이는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중한 장신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찬란한 금 고리를, 진흙탕을 뒹굴며 오물을 뒤적이는 불결한 돼지의 코에 끼워 넣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금 고리가 돼지를 조금이라도 우아하게 만들어주겠습니까? 도리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곳에 배치됨으로써 우스꽝스러움을 자아낼 뿐입니다.
외모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재정을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분별력, 즉 도덕적 통찰력과 지혜, 타인을 향한 따뜻한 배려와 품격이 결여되어 있다면, 겉보기에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영적인 관점에서는 진흙탕을 뒹구는 '돼지 코에 금 고리'를 단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참된 아름다움과 존영은 창조주를 경외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골방의 무릎 위에서 시작됩니다. 고난 속에서도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인자함과 흔들림 없는 정직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진정한 영혼의 다이아몬드입니다.
잠언 11장 23절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잠언 11장 24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언 11장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장 26절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잠언 11장 27절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잠언 11장 28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이제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신비롭고 위대한 경제학 법칙 앞에 서게 됩니다. 세상의 경제 원리는 치열하게 경쟁하여 빼앗고, 움켜쥐고, 창고에 더 높이 쌓아두는 것만이 살아남는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잠언은 정반대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이 위대한 역설은 파종하는 농부의 비유와 같습니다. 농부가 추수한 곡식이 아까워서 다음 해에 뿌릴 씨앗마저 과도히 아껴둔다면 결국 다음 가을에는 극심한 기근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그 소중한 씨앗을 들판에 아낌없이 흩어 뿌립니다. 땅에 떨어져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생명의 법칙은 그 씨앗을 찬란한 황금빛 결실로 되돌려줍니다.
팍팍한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어느 한적한 동네의 작은 커피숍 사장님이 들려준 따뜻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녀의 가게에 책을 출판하고 싶어 고군분투하지만 길을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사장님은 바쁜 일과 중에도 선뜻 자신의 노트북을 열고 15분 동안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유용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금전적 기부는 아니었지만, 꿈을 향해 걷다 지친 그 손님에게는 인생의 닫힌 문을 열어준 엄청난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25절은 명확히 약속하십니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다른 사람의 메마른 영혼과 삶에 시원한 물을 대어 주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영적 물동이가 마르지 않습니다.
창조주께서 그 사람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파이프로 사용하시기 위해, 멈추지 않고 하늘의 맑은 생수를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웃들의 탄식을 외면한 채 자기의 재물만을 신처럼 의지하는 자는 가을 낙엽처럼 패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본받아 기꺼이 나누는 의인은, 시냇가에 심겨 철을 따라 과실을 맺는 푸른 잎사귀처럼 영원히 번성할 것입니다.
잠언 11장 29절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잠언 11장 30절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장 31절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잠언 11장의 이 깊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본문은 모든 교훈을 하나로 관통하여 가장 영광스러운 궁극의 결론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11장 전반에 걸쳐 치열하게 대조되었던 의인과 악인의 삶은 결국 다음과 같은 운명적 차이로 귀결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의 좁고 험한 발걸음이 도달하는 최종적인 목적지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거나 안락한 노후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생명나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낯선 자들의 보증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으신 참된 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나무를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단단히 접붙여진 여러분은 이 척박한 세상 한복판에서 또 다른 작은 생명나무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직한 저울을 고집하고, 잘나갈 때 겸손하게 엎드리며, 이웃의 치명적인 허물을 침묵으로 덮어주고, 땀 흘려 번 재물을 기꺼이 흘려보내는 매일의 치열한 순종들이 모여, 지치고 상처 입은 이웃들이 그 그늘 아래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울창한 나무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영혼)을 얻느니라." 진정한 지혜의 완성은 바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 속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따뜻한 삶을 통해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가장 위대한 지혜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일상을 달아보는 저울은 공평하십니까? 여러분의 입술은 깃털처럼 파괴적입니까, 아니면 상처를 싸매는 따뜻한 붕대와 같습니까? 여러분의 두 손은 나만을 위해 굳게 움켜쥐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웃을 향해 아낌없이 펴져 있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힘입어, 비바람 치는 일상 속에서도 꿋꿋하게 푸른 잎사귀를 피워내는 생명나무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잠언 11장의 깊은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창조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묵상과 간구의 기도문입니다.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은혜와 자비가 무한히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잠언 11장의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장 내밀하고 치열한 일상의 풍경들을 세밀하게 비추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속이는 저울을 가증히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일터와 비즈니스가 흠 없는 완전함(툼마)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당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하신 준엄한 말씀처럼,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던 어리석은 교만의 렌즈를 깨뜨려 주시고, 영원불변한 진리의 나침반 앞에 흔쾌히 인생의 항로를 수정하는 겸손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웃의 아픔과 수치를 누설하여 칼날 같은 깃털을 흩날리는 가벼운 입술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어주고 잠잠히 중보하는 치유의 입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철저히 파산하고 소망 없던 우리를 위해, 친히 영원한 보증이 되사 십자가의 찢기는 고통과 손해를 기꺼이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벅찬 대속의 은혜에 눈물로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 크신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자답게, 더 많이 움켜쥐려는 세상의 탐욕을 거슬러 나에게 주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기쁨으로 흩어 구제하는 윤택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들의 발걸음이,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하신 30절의 말씀처럼 누군가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광스러운 생명나무의 열매로 풍성히 맺어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삶의 모든 저울과 추를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에 정밀하게 달아 맞추기를 결단하며, 우리의 영원한 지혜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