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밤, 다윗은 어떻게 잠들었을까?: 시편 3편
<저자의 노트> 거대한 우주적 선포(시편 2편)를 지나, 이제 카메라는 한 인간의 가장 깊고 처절한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갑니다.
[시편 3:1-8]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¹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²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³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⁴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⁵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⁶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⁷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⁸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편 3편은 시편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시입니다.
표제어는 이 시가 언제 쓰였는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바로 다윗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의 칼날을 피해 맨발로 울며 도망치던
인생 최악의 순간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믿었던 신하들에게 배신당했으며, 백성들의 조롱을 받는 절체절명의 위기.
시편 1편과 2편에서 노래했던 장엄한 신학적 진리들이 과연 이런 처절한 현실 속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 시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다윗의 대답입니다.
시는 처절한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을 에워싼 수많은 적들뿐입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위협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말, 즉 영적인 공격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이것은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잔인한 조롱입니다.
'네가 그렇게 믿던 하나님, 너를 버렸다. 이제 끝이야'라는 속삭임은
수만 개의 창칼보다 더 깊은 상처를 냅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첫 번째 ‘셀라’(סֶלָה).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미상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거나, 혹은 낭독 중에 깊이 묵상하라는 표시로 이해됩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처한 이 기가 막힌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며 잠시 멈춥니다.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시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접속사 "그러나"(원문에는 없지만 의미상 포함)가 등장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둘러싼 문제에서 눈을 들어, 문제를 둘러싸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요: 적들이 사방에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막아내는 나의 ‘방패’이십니다. 방패는 내가 드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나의 보호막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영광이시요: 왕의 영광을 모두 빼앗기고 쫓기는 신세지만, 나의 진짜 영광은 왕관이나 보좌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라는 선포입니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패배와 수치심으로 땅에 떨군 고개를 하나님께서 친히 들어 올려 주시며, 존엄과 희망을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믿음의 결과는 놀랍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아들의 칼날이 목전에 있고, 사방이 적인 이 상황에서 ‘눕고, 자고, 깬다’는 것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과 같은 평안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다윗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평안은 상황의 변화가 아닌, 변치 않는 하나님을 붙들 때 찾아왔습니다.
이 평안은 이제 담대한 선포로 이어집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문제의 크기가 아무리 커 보여도, 그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그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 이 기도는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과거의 구원을 기억하는 데서 나오는 확신의 기도입니다.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과거에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동일하게 행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는 개인의 구원 요청을 넘어 모든 공동체를 향한 축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자신의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고, 구원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며, 그 복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흐르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장 이기적일 수 있는 순간에 가장 이타적인 기도로 마무리하는 다윗의 성숙함이 빛나는 부분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압살롬’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는 배신, 갑작스러운 재정의 위기, 무너지는 건강,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의 공격 등, 수만 명의 대적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숨통을 조여 오는 문제들 앞에서 절망하곤 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를 향해 속삭입니다. ‘이제 끝이야.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아.’
시편 3편은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한 노래입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문제의 한복판에서 잠시 멈추라고 권합니다. 첫 번째 ‘셀라’입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토로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두 번째 ‘셀라’가 있습니다. 절망에 대한 묵상을 멈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그분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내 고개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평안은 문제가 사라져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바로 그 문제 한가운데서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그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 당신의 삶에 ‘셀라’의 쉼표를 찍어보십시오. 그리고 문제의 목록을 나열하던 기도를 멈추고,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수만 명의 적군 한가운데서도 단잠을 자는 기적을, 그리고 결국 모든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온몸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3편 저자의 노트>
거대한 우주적 선포(시편 2편)를 지나, 이제 카메라는 한 인간의 가장 깊고 처절한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왔습니다. 시편 3편을 통해 우리는 장엄한 신학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에 뿌리내려 '수만 명의 적군 속에서도 단잠을 자는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시편 3편이 위기 속 ‘저녁 기도’의 성격을 띤다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시편 4편 역시 저녁 기도이지만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집니다. 시편 4편은 세상의 헛된 것을 신뢰하는 사람들과,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의인을 대조하며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 편을 연달아 읽으면, 위기 속에서의 신뢰(3편)와 일상 속에서의 신뢰(4편)라는 중요한 주제를 함께 묶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