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는 하나님, 나의 노래가 되다

시편 9편

by Joseph H Kim

[시편 9:1-20, 현대인의 성경]

¹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께 감사하며 주의 놀라운 모든 일을 전하겠습니다.

²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장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니

³ 내 원수들이 주 앞에서 물러가다가 넘어져 망했기 때문입니다.

⁴ 주께서는 나의 정당한 송사를 변호하시고 보좌에 앉아 의롭게 심판하셨습니다.

⁵ 주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꾸짖으시고 악한 자들을 멸망시키셨으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 버리셨습니다.

⁶ 원수는 영원히 사라져 폐허가 되었고 주께서 그들의 성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셨으므로 이제는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⁷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며 심판하시려고 자기 보좌를 마련하셨다.

⁸ 그가 공정하게 세계를 판단하시며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실 것이다.

⁹ 여호와는 압박당하는 자의 피난처이시며 환난 때에 숨을 곳이 되신다.

¹⁰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신뢰할 것입니다. 이것은 주를 찾는 자들을 주께서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¹¹ 너희는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가 행하신 일을 여러 민족에게 선포하라.

¹² 피 흘린 자의 원한을 갚아 주시는 이가 고통당하는 자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신다.

¹³ 여호와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내가 받는 고통을 보시고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일으키소서.

¹⁴ 그러면 내가 시온의 문에서 주를 찬양하며 주의 구원을 기뻐할 것입니다.

¹⁵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자기들이 숨겨 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렸다.

¹⁶ 여호와께서 자기를 나타내어 의롭게 심판하셨으므로 악한 자들은 자기들의 소행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¹⁷ 악인들은 지옥으로 돌아갈 것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와 같을 것이다.

¹⁸ 가난한 자가 항상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며 고통당하는 자의 희망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¹⁹ 여호와여, 일어나 사람이 우쭐대지 못하게 하시고 주 앞에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소서.

²⁰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여 자기들은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사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감사가 마음의 절반만 담긴, 의례적인 인사치레일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시편 9편은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놀라운 모든 일을 전하겠습니다"라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전심(全心)의 감사로 문을 엽니다.


이러한 감사는 탐심이 없는 청렴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혹시 우리는 바라던 승진을 이루었을 때 감사하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동료와의 미묘한 경쟁이나 마음 쓰였던 과정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요?


진정한 감사는 보이는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타인의 도움까지 헤아리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필연적으로 "주의 놀라운 모든 일을 전하겠습니다"라는 선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신 놀라운 이야기들을 나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감사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힘든 시기를 지나 마침내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그 과정에서 우리를 붙드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을 잊고,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의 작은 간증이 다른 이들에게 큰 용기와 소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의 기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라고 반복해서 노래하며,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합니다(2절). 바울과 실라가 감옥 안에서도 기쁨으로 찬송하고, 어떤 신학자가 옥중을 '그리스도의 왕궁'이라 불렀던 것처럼, 다윗의 기쁨은 환경이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의 대상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나 인간관계의 만족에 일희일비하며, 우리의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변치 않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는 힘이 됩니다.


그가 이토록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행하신 구체적인 승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내 원수들이 주 앞에서 물러가다가 넘어져 망함이니이다"(3절)라고 회상합니다.


여기서 '주의 앞에서'라는 표현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능력과 위엄 앞에 그의 대적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4절).


여기서 '송사'는 [[רִיב | Rib | 리브] '소송, 다툼, 정당한 명분'을 의미하며, 자신의 전쟁이 개인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정당방어를 위한 싸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혹시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나요?


다윗은 자신의 정당한 '송사'를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변호해 주시고 의롭게 심판해 주셨음을 간증합니다. 우리의 억울함 또한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공의를 신뢰하는 것이, 우리를 진정한 평안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승리에 대한 기억은, 현재의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되고 미래를 향한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원수들이 한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세등등했지만, 결국 그들의 성읍은 폐허가 되고 기억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6절).


반면,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라고 선포하며(7절), 유한한 악의 권세와 영원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며, "환난 때의 산성"이십니다(9절). 여기서 '환난'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בְּצָרוֹת | Betsarot | 베차로트] '모든 소망이 끊어진 절망적 역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여,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지는 않나요?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이 다 끊기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게 됩니다(10절).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정보가 아니라, 인격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신뢰할 때, 그분은 우리의 가장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이러한 신뢰를 가진 자는, 다시 자신을 위해 기도할 용기를 얻습니다. 그는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의 곤고를 보소서"라고 기도하며(13절), 죽은 자라도 일으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자신을 의탁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구원이 개인의 행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בְּשַׁעֲרֵי בַת־צִיּוֹן | Be-sha'arei Bat-Tziyyon | 베-샤아레 바트-치욘] '딸 시온의 문들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14절) '딸 시온', 즉 주님의 신부인 교회 공동체 앞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간증하여 모든 이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겠다는 아름다운 서원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개인적인 만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나누고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악인의 운명이 '자기가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지는 것'(15절) 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이는 죄가 가진 자기 파괴적인 속성, 즉 '자작지얼(自作之蘖)'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남을 비방하고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악한 계획들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이 무서운 진리 앞에서 시인은 [[הִגָּיוֹן | Higgayon | 힉가욘] '묵상하라', [[סֶלָה | Selah | 셀라] '잠시 멈추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만한 열방들이 스스로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 [[אֱנוֹשׁ | Enosh | 에노쉬]일 뿐임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이 장엄한 찬양을 마칩니다(20절).


우리가 겸손히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힘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노트>

시편 8편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 우리의 존귀한 가치를 확인한 우리는, 시편 9편에서 다시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시편 9편은 그 존귀한 자녀들이 압제당할 때,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결코 침묵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개입하여 심판하신다는 통쾌한 신뢰의 노래입니다. 즉, 하늘의 관점으로 땅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많은 학자들이 시편 9편과 10편을 원래 하나의 시편으로 봅니다. 흥미롭게도, 9편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확신에 찬 감사 시라면, 바로 이어지는 10편은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는, 하나님의 부재를 향한 고통스러운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이 두 편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신앙의 양면성, 즉 확신과 의심, 하나님의 임재와 침묵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우리 신앙의 여정 전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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