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없는 밤을 견디는 처절한 믿음의 몸부림
오늘은 시편 전체에서 가장 어둡고 깊은 탄식을 담은 노래, 시편 88편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시편 88편은 바로 그런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성도의 처절한 고백입니다. 시편 150편 중 유일하게 찬양이나 소망의 확신 없이, "어둠이 내 친구입니다"라는 비탄으로 끝을 맺는 시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시가 성경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괜찮은 척'하지 않고, 가장 깊은 절망조차 있는 그대로 쏟아내기를 기다리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88편 (현대인의 성경)
1 여호와여,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밤낮 주 앞에서 부르짖습니다.
2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내 영혼이 너무 많은 고통에 시달려 내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4 나는 곧 무덤에 들어갈 사람과 같이 되어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5 내가 죽은 자처럼 버려져 주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주의 보호의 손길에서 끊어진 채 무덤에 누워 있는 살해당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6 주는 나를 가장 깊은 웅덩이와 흑암 가운데 던져 넣으시고
7 주의 분노로 나를 무겁게 내리누르시며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습니다.
8 주는 내 친구들까지 나를 버리게 하셨으며 내가 그들에게 보기 싫은 놈이 되게 하셨으므로 내가 갇혀서 헤어날 수 없게 되었으며
9 내 눈마저 슬픔으로 쇠약해졌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짖으며 주를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적을 보이시겠습니까? 죽은 자가 일어나서 주를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11 주의 사랑이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이 파멸 가운데서 선포되겠습니까?
12 흑암 가운데서 주의 기적이, 잊혀진 땅에서 주의 의가 알려지겠습니까?
13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아침마다 주께 기도합니다.
14 어째서 나를 버리시며 어째서 주의 얼굴을 나에게 숨기십니까?
15 내가 어릴 때부터 어려움을 당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며 주께서 두렵게 하시므로 내가 당황하고 있습니다.
16 주의 무서운 분노가 나를 덮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파멸시켰습니다.
17 하루 종일 이런 일이 홍수처럼 사방에서 밀어닥쳐 나를 완전히 삼켜 버렸습니다.
18 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과 친구들이 나를 버리게 하셨으므로 흑암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편 88편은 고라 자손의 찬송시이자 에스라 사람 헤만의 마스길(교훈)로, ‘개인 탄원시’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시로 꼽힙니다. 보통의 탄원시들은 고통을 호소하다가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찬양으로 바뀌는데, 이 시는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의 공포와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버림받은 고독감만을 호소합니다. 이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때로는 해소되지 않는 깊은 우울과 침묵의 시간을 겪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본문입니다.
1. 밤낮으로 부르짖으나 응답은 없고 (1-9절)
시인은 첫 절부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현실은 구원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목숨이 지옥 문턱에 와 있다고 고백합니다. 친구들마저 그를 피하고 멀리하니, 그는 갇혀서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손을 들고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주를 찬양할 수 있습니까? (10-12절) 시인은 하나님께 따지듯 묻고 있습니다. "제가 죽어서 무덤에 가면 어떻게 주님을 찬양하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살려달라는 애원인 동시에, "하나님, 저를 살리셔서 제가 주님을 찬양할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호소하는, 생명을 건 역설적인 기도입니다.
3. 어둠만이 나의 친구 (13-18절)
보통 이쯤 되면 "주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반전이 나올 법한데, 이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 진노가 그를 덮치고 공포가 그를 둘러싸서 물처럼 에워싸고 있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마저 다 떠나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어둠(Darkness)'뿐이라는 쓸쓸한 고백으로 시는 끝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안 괜찮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늘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편 88편은 깊은 우울감과 절망, 하나님이 부재한 것 같은 느낌조차도 기도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억지로 밝은 척하지 말고, 슬픔과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쏟아내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 비명 같은 기도도 다 듣고 계십니다.
둘째, 침묵 속에서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위대한 믿음입니다.
응답이 즉각 올 때 기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더 나빠지고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여호와여"라고 부르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의 저력입니다. 시인은 응답이 없어서 기도를 멈춘 게 아니라, 응답이 없기에 더 간절히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셋째, 예수님도 이 어둠을 통과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던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절망과 고독을 다 아시고 친히 겪으셨습니다. 지금 느끼는 그 짙은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둠을 이기신 주님이 눈물 흘리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
밤낮으로 주께 부르짖지만 제 영혼은 고통으로 가득 차고 주님은 침묵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어둠이 제 유일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이 깊은 고독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손을 거두지 않게 하옵소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침묵 앞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았던 시인처럼,
저 또한 눈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소서.
제 아픔을 아시는 주님, 이 밤이 지나고 주님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