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42.195km를 완주했다.
힘들었다.
어쩌면 힘든 게 당연한 것이었다. 준비한 만큼 얻었고, 부족한 만큼 힘들었다.
지난 1월 이후, 풀코스를 달리겠다는 생각으로 수 백 km를 달리며 종종 떠오른 생각이 있다.
'이렇게 정직한 활동이 있을까?'
달린다는 것은 '운'이 작용하기 어렵다. 내 몸이 준비된 만큼, 내 기술이 갖춰진 만큼 달릴 수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야구, 축구, 농구, 골프 등의 기구를 이용한 운동은 의외성이 많다. 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그렇지 않다. 오롯이 내 힘으로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한 발을 떼지 않으면 그다음은 없다. 그게 달리기다.
정말 솔직한 운동이다.
지난 이야기에 종종 적었지만, 내가 달린 최고의 거리는 21km이다. 30km 이상을 달리며 연습이 필요했지만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달리다 보면 어떻게 해결되겠지..'라는 마음을 품고 이번 풀코스에 나섰다.
정말, 엄청난 오판이었다. 허세고 욕심이었다.
풀코스 배번을 자랑스럽게 붙이고 섰다. 60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300번째 정도에 섰던 것 같다. 첫 출전에 기분이 어땠느냐? 설렘과 긴장과 걱정 등이 혼탕 되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출발 총성이 울리고 앞에서부터 뛰어나갔다. 그들은 그들의 레이스를 하겠지. 나는 나만의 경주를 할 거야. 절대 오버페이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20km 지점까지는 5분 40초대를 계속 유지했다. 호흡도 리듬도 안정적이었다. 햇볕이 따가웠지만, 공기도 선선하고 바람도 불었다. 달리기에 나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하프(21km..)를 넘어 큰 반환점인 25km를 지났다. 멘털과 체력이 함께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걱정했던 호흡은 멀쩡한데, 몸이 점점 경직되는 듯했다. 힘이 남은 듯했지만, 섣불리 달려 나갈 수도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거리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큰일이 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를 혼자 반복해서 물었다.
32~33km를 넘어가면서 총체적 난국이 시작되었다. 허벅지, 종아리, 골반, 복부 등을 돌아가면서 통증이 지나갔다. 발바닥도 아프고, 발가락도 이상한 것 같은 감각이 이어졌다. 1km당 페이스는 6분 30초를 넘어갔다. 7분을 넘어도 이상하지 않을 컨디션이었다. 기록이 무의미하다. 모든 급수대에서 물 또는 이온음료를 들이켰지만, 나에게 필요한 게 물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냥 몸이 명령했다. 뭐든 마시라고.
11시가 넘어가면서 해가 높이 뜨면서 햇살은 더욱 강해졌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서 더위가 없어진 줄 알았더니 어디서 왔는지 나에게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37km를 힘들게 힘들게 넘어갔다. <4:00>이 적힌 고무풍선을 팔랑거리던 페이스메이커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어휴...'
앞서서 달리던 런너들 중에 걷는 사람들을 지나갔다. '나도 이제 멈출까? 걸을까? 그래도 되지 않을까??' 연초에 수 없이 겪었던 '똥멍청이 같은 생각'이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걷지 않았다. 끝까지.
40km를 넘겼다. 이제 목표가 보인다. 남은 거리는 약 2km. 매주 달리던 호수공원 반 바퀴도 안 남았다. 앞서 왔던 갈림길까지만 돌아가면 된다. 겨우겨우 버티는 정도의 페이스였지만 끝이 보일수록 폼이 다시 올라왔다. 속도도 낼 수 있었다. 달렸다.
마지막 고비는 양재천에서 도로로 올라가는 20~30m 오르막길이다. '누가 이런 식으로 코스를 만든 거야?'
도로에 올라섰다. 100m 정도 남았다. 결승점이 보인다. 이제 끝이다. 정말 풀코스를 달렸다.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아내가 기다릴 텐데..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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