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남자들은 군대 또는 운동 동아리에 가입했다면 달릴 기회가 있겠지만 경주와는 다른 것이다. 여성의 경우는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 후, 첫째 아이 유치원 체육대회까지 한 번도 달리는 일이 없지 않을까?(이 조차도 안 할 수 있다)
대학교 3학년이었다. 복학하고 어깨에 뽕이 빵빵하던 복학생 시절. 현역 남학생들이 군대 간 자리를 꿰찬 우리가 남 앞에 나서야 할 이러저러한 행사를 도맡았다.
학생회 모임 동원, MT와 축제에서 마당쇠, 수업과 시험 관련 교수님께 바른말(?) 하기 등 온갖 힘들고 귀찮은 역할은 죄다 우리 몫이었다. 그러던 중 학교 총 체육대회를 앞두고 단과대학 달리기 릴레이 시합을 하게 되었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의 달리기는 가속도가 성적을 좌우한다(지금은 다르지만). 그리고 또 하나 그 가속도의 유효거리가 80m 정도까지다. 즉, 100m를 달리면 나머지 20m에서 급격히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달리는 나도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과의 마지막 주자로 150m를 달려야 하는 나는 모든 과학우(!)들의 기대와 응원 속에 바통을 이어받았다. 1등으로 말이다. 정말 악착같이 달렸다. 창피하지 않기 위해. 하지만 거짓말같이 80m를 넘어갈 무렵부터 페이스가 뚝 뚝 떨어졌다. 만약 100m 달리기였으면 1등을 지켰을 수도 있었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뒤를 더 악착같이 쫓아온 그(?)에게 선두를 내어주고 말았다.
아... 정말.. 창피했다.
2등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따라 잡히는 당사자가 되면 정말 짜증이 나고 허탈해진다.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골 식당(?)으로 가서 숨었다. 그 창피함을 잊기 위한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합리화했다.그 저녁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귀가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사실 그 이후 사회에 나와서도 2등, 3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일이 수도 없었다(아이 유치원 체육대회에서도..).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지. 뭐..' 했다. 언제가부터는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도 체육대회에서 옆 동료가 릴레이를 달리다가 넘어졌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옛 추억은 설레고 가슴 아린 소중함이 있다. 창피함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가서 달릴 수 있다면. 또다시 역전당해도 그때처럼 창피하다고 생각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