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새로 이사 온 집은 아파트 2층이다. 베란다 앞을 막고 선 큰 나무는 처음에 우리 부부에게는 고민 아닌 고민거리였다.
"창을 가려서 채광이 나쁘면 어쩌지?"
반대로,
"창을 가려주고 막아주는 고마운 나문데~"
우리는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 그럴 만큼 멋지고 이쁜 나무였다.
우리가 이사 온 한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했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의 가족 같은 이 나무에게 '복덩이'라고 별명을 지어줬고(아내는 별명 부자다), 베란다 창문을 두드릴 정도로 친했던 이 녀석의 재롱에 다시 잎을 틔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서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우왕, 어떡해.. 복덩이가 잘렸어.."
"엥?"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인지 바로, 그 나무의 팔을 다 쳐버렸던 것이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동에는 이 녀석만 이렇게 되었다.
상실감.
기대만큼, 마음을 쏟은 만큼, 그것을 잃은 상실감은 더 크게 돌아온다. 나보다 아내의 그 감정이 더 컸다. 창을 통해 계속 쳐다보게 되니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력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잘리고 부러진 가지 몇 개를 집안으로 가져온 아내가 화병에 꽂았다. 우리는 복덩이가 머리 깎고 군대를 갔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봄으로 가는 여정의 며칠이 지났다. 잘리고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서 숨소리가 화답을 해왔다.
숨을 쉬고, 힘을 내고, 결국 봉오리를 터뜨렸다. 그리고 곧 잎을 틔울 태세다. 베란다 앞 창문을 지키던 녀석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와 식구가 되었다.
오늘은 식목일(4월 5일)이다. 심을 식植, 나무 목木 나무를 심는 날이다. 생명生命을 심는 날이다.
비가 온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이제야 온다.
아차 하는 실수로 허무하게 사그라진, 2025년 봄과 같은 화마로 인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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