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하루를 더 산다. 오늘처럼

자기해방의 글쓰기 ??

by 책읽는 아빠

작가 김영하는 말한다. 자기 해방의 글쓰기라는 것을.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문장. 군더더기 없는 시간의 흐름과 이야기의 전개. 기억은 가물 하지만, 아마도 그와 난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것 같다. 그가 대학생일 때, 내가 중학생일 때. 그래서인지 이유 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작품을 떠나서 그의 말은 - 주로 강연이나 TV 출연 - 내 마음, 나의 아픈 곳을 후벼 판다. 어떤 막연한 위로나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잘 되지 않을 거라고, 힘들 거라고, (비관적 현실주의라고 하는 -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 -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같은)". 그에게 자신이 처한 궁색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를 묻는 이이게 그는 "비관적 현실주의"라는 말을 한다.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할지라도 또는 그게 사실일지라도, 그에게 어떠한 실오라기 같은 위로를 청한 이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나 또한 그러한 위로를 그에게 찾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는 본인은 작가이기에 그러한 대답을 하지 않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할 것 같다.


지금 난 자기 해방이 아닌, 죽지 않기 위해 삶을 이어 가기 위해 글을 쓴다. 지구상의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글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하던가. 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 생각하지 않는다. 난 작가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루어 낸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한 필멸의 존재.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존재 일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어 아무 이유 없이 내 애기를 써본다. 배운 게 없으니, 그저 내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나를 다시 본다. 항상 후회의 연속이 이었으나, 아주 아주 찰나의 행복함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72년 평범한 가정에서 둘째로 태어난 나.

영등포구의 그래도 자기 집을 갖고 있는 30대 가장의 둘째로 비교적 건강하게 태어나다.

30대의 가장은 센스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잘생긴 그러나 능력이나 실력은 그저 그런 서울의 소시민.


대학은 못 나왔으나, 특유의 싹싹함과 붙임성으로 영업직을 전전했으나, 그리 큰돈과 세상에서의 성공은 없었던. 하지만 교통사고 후 30년을 사지마비로 살아남아 가족을 부양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성공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그런 가장. 지금의 나는 그분의 발 뒤꿈치도 못 따라간 파렴치한 가장.


첫째는 경증의 뇌성마비로 태어났으나 그 시절에는 그게 뇌성마비인지 그냥 몸이 약한 건지 파악도 못한 채, 그저 잘 먹이면 잘 크겠지 하면서 아니면 병원에 데려갈 형편이 안되었을지도.


둘째는 나름 건강했고, 눈치도 있고 뭔가 다르다. 뭔가 할거 같기도 하니, 학원도 보내보고, 이런저런 것을 가리켜 본다.


그저 그런 회사를 두어 곳 다니다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회사에 갔다. 사실 그 회사가 뭐 그리 대단한 건지 몰랐다. 그저 뉴스에서 자주 나오니, 뭐 대단한 곳인가 보다 하고 갔다. 왜 나를? 그런 생각 없었다. 그저 번듯한 네임밸류에 광화문 사거리 멋진 빌딩에 고급스러운 사무실에 외국인이 절반 넘게 있는 그런 곳. 이제는 외국인 특히 서구의 백인이 그리 선망의 대상은 아닌 듯한데. 그때는 뭔가 대우나 눈빛이 달라졌더라. 눈 파란 백인들 앞에서는.



출근하기 일주일 전쯤, 백화점에서 가판대에 누워있는 와이셔츠를 5장이나 샀다. 내 형편에 살 수 있는 최대의 사치 같은. 웬걸, 출근하니, 회사 드레스코드가 비즈니스 캐주얼이란다. 더 까다롭다. 티셔츠는 안되고, 그림이나 정치적 구호가 적힌 옷차림은 안되며 구두는 신어야 하고, 구두 또한 발목이 드러나야 하며, 셔츠는 색상이 정해져 있다. 바지는 면바지를 권고하되, 색상은 정해져 있고, 재질 또한 정해져 있다. 이런 드레스코드라는 것을 설명하던 중, 슬리브리스는 안된다고 하면서 설명을 하던 인사부장에게 외국인 COO가 되묻는다. 슬리브리스가 뭐냐고? 같은 미국인, 같은 영어를 써도 못 알아듣는 건지, 나 같은 영어 못하는 이들에게 돌려서 까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그냥 눈치껏 남들 입은 대로 사서 입어 본다 뭔가 상당히 어색하지만, 그게 내 평생 옷차림이 되어 벼렸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들리지 않는 영어 지시, 답도 못한다. 그래도 일이 잘못되어 가고 다들 이해를 못 하는 것은 나도 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다. 왜 영어로 말을 못 하니, 하기 싫어서.


결국 그일 프로젝트라 불리는 것은 그럭저럭 굴러만 가게 금 끝이 난다. 다들 나에게 눈을 흘긴다. 그래 틀리더라도 몰라도 말은 떠들어야 한다. 그게 여기서 배운 거다


배운 게 있으면 써먹어야지. 배운 걸 사용해야 그나마 고생해서 배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영어로 이력서를 다시 쓰고, 이메일, 보고서 작성하는 영문을 외우고, 상황별 어떻게 말하는지 은근슬쩍 어떻게 어물쩡 넘어가는지 주의 깊게 본다. 배운다. 따라 한다.


운빨인가? 그래도 나를 찾는 곳이 있다. 나를 알아 준거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목숨을 바친다던가? 목숨 바쳐 일한다. 치질이 생기고, 허리가 굽고 잠은 모자라 항상 머리 지끈거린다. 그래도 일한다.

세어 본 적은 없지만, 회사 감사에서 지적사항이란다.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는 저 인간은 뭐냐고?


회사 출입문 앞 세콤 경비가 말한다. 무슨 철인이냐고? 자기들은 3교대인데, 어떻게 어떻게 3명 중 2명보다 근무시간이 길 수 있냐고 한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일이다. 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을 바쳐서 한다.



저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난 절박했다. 나는 나를 시험한다. 증명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내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뇐다.


절박함. 그런데, 나 혼자 몸인데, 재워주고 먹여주는 부모가 있는데, 뭐가 그리 절박했을까? 왜? 그냥 돈 버는 거? 부모님께 잘 보이려 한 것? 형과는 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왜 그랬을까?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옷 사는 거 좋아했지만, 옷 살 돈은 있어도 옷 사러가 시간이 없다. 한겨울의 투박한 옷을 5월까지 입고 다녔네,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니, 그냥 그렇게 겨울 옷을 입고 다녀도 몰랐다. 아마도 남산 위의 그 고급 호텔에 회식을 위해서 갔을 때, 나만 이렇게 허름한 옷차림이구나 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른 윗옷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 놀리면서 그나마 조금 가벼운 차림새로 눈치껏 변신을 했던 거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목적 없이 글을 쓴다.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참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일지라도 일단 살고 본다. 죽으려다가 살아 돌아왔을 때, 너 살아온 거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무섭다. 그때. 지금도.


그래도 살고 싶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쉬우니 그래서 사는 건가? 아니면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으로 다시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하루를 더 산다.


하루만 더 살자 "하루만 더"가 너무 오래되었네, 이렇게 오래 살지 몰랐다. 아니면, 나는 나를 속이고 있다. 누구보다도 삶에 애착이 강하지만, 숨이 붙어 있기를 위한 무언가에 변명 거리를 찾는다.



선물 옵션, 거기서도 옵션이라는 금융상품 아니 투기 상품을 아는가 ?

IMF 시기를 바로 전후로 태어난 선물 옵션 (한국에서는).

조금이나마 컴퓨터 언어 - C 언어-를 알고 SQL을 알면 바로 취직이 되었다. 하필이면 자본시장 한복판에 있는 는 금융공기업. 그 학벌좋고 공채 출신들이 코딩을 이렇게 코볼로 하나 ? 웃긴다. 그런데, 그게 웃긴게 아니라, 내가 우스운 놈이었다. 개발이 중요한게 아니라 금융시스템, 금융 상품의 속성, 금융시장의 제도가 핵심이라는것을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 같은 그저 그런 개발자는 개발만 핵심 엔진이 아닌 그 주변만 개발하고 손보다가 나온다.


그나마 그것도 운빨인가? IMF의 혹독한 시련으로 다 사그러져 가던 자본시장이 다시 점핑을 한다. 위로 위로 한없이 올라가고 시장 자체가 커진다. BUY KOREA 열풍으로 기억 된다. 지금이야 BYE KOREA겠지만. 광화문에서 나를 보자고 한다. 이곳 저곳에서 나를 만나자고 하니, 29살의 어리디 어린넘은 세상을 다 가진 마냥 들뜬다. 어줍잔은 영문 이력서를 쓰고, 에세이를 쓴다. 면접을 위해서 아웃렛이지만 나름 유명 브랜드의 정장과 셔츠를 산다. 왼손잡이인 엄마에게서 배워서인지, 나는 남들과 타이를 반대로 맨다. 지금 생각해보니, 왼손잡이 한테 배워서 인가 보다. 광화문 한 복판이 이제 내 삶의 터전이 된다. 초등학교 (국민학교) 시절 E.T라는 영화를 본 극장은 이제 광화문에서 꽤 오래된 빌딩이다. 광화문에서의 내 첫 직장은 어려서 E.T라는 영화를 보았던 그곳이다. 아침 잠 많은 내가 새벽에 출근 하는 일을 하니,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는 피하게 되었지만, 육체적으로 힘들다. 새벽 5시 반쯤에 일어나, 6시쯤 버스를 타고 7시전에 출근을 한다.


그때 알게 된것이 그 시간에 출근 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빌딩이나 관공서의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었다. 언제 어디서나 쓸고 닦고를 하는 이들도 그렇게 출근을 하는구나 하고 새삼 신기했다.

지금은 고인되신 노동운동 출신의 국회의원이 살아 생전에 아주 깊은 교감을 나눈 분들고 서울 시내 버스로 새벽 출근을 하던 그 분둘이 었나 보다. 고인의 살아 생전 TV 다큐멘터리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이럲 생각을 하니, 난 주위 사물이나 사람들에 상당한 의식내지는 관심이 있는거 같다. 요즘은 HSP라고 하는거 같기도 하고, 주위의 모든것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고 분류를 하니, 정작 중요한 정보처리를 할때는 그날의 에너지가 거의 다 소모 되어 당면한 중요한 일에는 소흘해지거나 못하는 그런 류의 성격 이나 뇌 구조가 나 인것 같다. 내가 나름 심리 전문가라는 사람으로 부터 들은 거니, 아마도 정확하거나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나의 분석인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나 예민하고 세심한 배려의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건, 누군가 나에게 신경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20여년이 지나도 아니 30년이 지나도 난 기억하고 끊임 없이 곱씹어 본다. "야 너 주제에 무슨 XX대학이냐 ?" 라면 내가 들고 있던 XX대학 입학원서를 보면서 비꼬았던 그를 난 아직도 기억 한다. 그날의 날씨, 그가 입은 옷과 가방, 그때 그의 표정과 나에게 한 말과 행동을 기억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이지만, 난 왜 이나이에 아직도 기억을 하고 곱씹어 볼까 ? 지금 나의 눈앞의 문제를 해결 하기에도 에너지는 부족한데. DOS 시절의 386컴퓨터에서는 하드디스크의 절편을 정리하는 노턴 디스크라는 유틸리티 프로그램이 있다, 기록하고 지우고를 반복 하다보면 디스크의 세그먼트가 이곳 저곳에 헡어져 있어,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디스크를 정리하는 유틸리티 프로그램. 아마도 그런 프로그램을 내 뇌 (기억)에 써본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 필요없거나 기치 없는 기억 (메모리)는 저 구석으로 옮겨 놓고, 시급하거나 가치 있는 기억을 좀더 빨리 액세스 할 수 있게금 한다는.












그저 그런 학교를 나오고 그저 그런 직장을 다니고 그저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딸만큼은 그러면 안 된다. 내 눈에 피눈물이 난다.


저렇게 이쁘고 야무지고 운동 잘하고 영민한 아이가 나 때문에.

그 좋은 집, 동네에서 이런 개 같은 동네에서 지지리 궁상맞은 아파트에 산다. 나 때문에


천박한 여편네들 틈에서 마누라가 장을 본다. 나 때문에.

순수하고 세상 밝은 마누라가 저 무지렁이 여편네들 틈바구니에 있다.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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