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시야 서새이 Nov 04. 2024

의식이 없으신 우리 엄마.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엄마"라고 부르기만 해도 좋다.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 


어린 나이에 시집오셨다. 외할머니 혼자 계셔서 멀리 시집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가까우면 잠깐이라도 볼 수 있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이겠지 말이다. 


징조할머니와 할머니 두 분 다 홀로 되신 분들이다. 할머니는 자식이 우리 아버지뿐이시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남편 삼아 자식 삼아 의지하고 사셨다. 그런데 엄마가 시집을 오자 할머니는 좋기도 하면서 아들을 뺏긴 마음이 드셨는지 외출을 할 때 꼭 할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함께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층층시야의 시집살이가 몹시 고대지만 참고 사셨고 우리 오남매를 입히시고 길러 내셨다. 가끔 할머니 계시는 날이면 목청껏 찬양하시기도 하고 밥 짓다가도 한문 성경을 읽어 주시기도 했다. 옷을 만들어 주신다고 미싱을 돌리기도 하셨다. 


내가 학창 시절에 할머니 말씀 때문에 아침도 거르고 학교를 가면 꼭 도시락을 챙겨 주시고 추위에 약한 내게 아버지 외투를 가지고 오셔서 마중 나오시는 정이 많으신 분이다. 늘 일 속에 파묻혀 있으시면서도 자식 사랑은 끔찍한 분이시다. 


그런 엄마가 허리가 아프셔서 큰 수술 하시고 몇 년을 견디시다가 작년 2023년 12월 10일경에 입원은 하신 후에 지금까지 집에 오시지 못하고 병원에서 요양시설로 병원으로 오셔서 며칠 전부터 (11월 1일) 의식이 없으시다. 불러도 대답을 전혀 하지 못하시고 눈은 감고 온몸을 떨고 계신다. 


엄마를 뵙고 하염없이 울었다. 어쩌면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줄줄 흘렸다. 우리 엄마 의식 있으시면 가렵다고 하시며 "까꼬리로 끌거라"(갈고리로 긁어라.)는 매일 고통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링거 바늘을 뽑아 피가 쏟아지게 하셔서 팔과 손에 검은 멍이 가득하셨다. 


이제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우리 엄마. 엄마를 불러도 대답이 없으신 우리 엄마.  

너무 사랑이 많으신 엄마를 보내야 하는 자식 된 마음이 너무 안타깝다. 

이 땅에서 엄마를 만나 마음껏 사랑받으며 지낼 수 있어 감사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고맙다" 말씀하신 우리 엄마. 


엄마 나도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사랑합니다. 내 엄마라서 정말 고맙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작가의 이전글 두부 오감활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