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0장 ― 음운 변화
저번 장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어에서 변화하는 것은 단어의 의미만이 아닙니다. 단어의 소리도 함께 변하죠. 한국어의 예시를 볼까요?
이런 젼(ㅊㆍ)로 어린 (ㅂㆍㅣㄱ)셔ᇰ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
[이런 젼처로 어린 버익셩이 니르고져 홀 바이 이셔도]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중세 한국어와 현대 한국어를 비교해 보면, "이런"이나 "호ᇙ", "이셔도"처럼 소리가 조금만 변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니르고져"나 "(ㅂㆍㅣㄱ)셔ᇰ"처럼 크게 변한 부분도 있고, "배"처럼 문법이 달라진 곳도 있고, "젼(ㅊㆍ)로"처럼 단어가 아예 달라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어린"처럼 현대 한국어와 똑같아 보이는 단어가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부분이 있는 게 보이시나요?
창언창안에서는 문법을 다루지 않으니, 다른 부분을 자세히 봐 봅시다! 먼저 전 장에서도 다룬 의미의 변화입니다. "어리다"는 원래 {어리석다}라는 뜻이었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비유가 되어 지금의 {나이가 적다}라는 뜻이 되었답니다.
"젼(ㅊㆍ)"는 한자로 詮次인데, 옛날에는 {까닭}이라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말의 짜임새}라는 의미가 되었죠. 詮은 설명할 전이고, 次는 차례 할 때의 차니, {설명의 차례}라는 의미에서는 지금의 의미가 더 맞는 거 같네요.
"이런"은 거의 소리가 변하지 않았죠. "호ᇙ"과 "이셔도"도 "할"과 "있어도"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니르고져"[니르고져]와 "(ㅂㆍㅣㄱ)셔ᇰ"[버익셩]이 어떻게 [이르고자], [백성]이 된 걸까요?
가장 먼저 "니르고져"의 "니"를 봅시다. 아시다시피, 현대 한국어에는 두음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자음 ‘녀, 뇨, 뉴, 니’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여, 요, 유, 이’로 적는다.
― 한글 맞춤법
은닉의 "닉"과 익명의 "익"은 숨을 닉匿이라는 한자지만, 어디에 오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되었죠. 중세 한국어에서 현대 한국어로 변화할 때, 두음 법칙은 한자어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모든 단어에 적용되었답니다. 그래서 "니르다"가 "이르다"가 된 것이죠.
이번엔 "바ᆡ각셔ᇰ"의 "바ᆡ각"을 봐봅시다. 가장 먼저, 아래아 "ㆍ"입니다. 아래아의 원래 소리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지만, 보통 [ㅓ]와 비슷한 소리였을 것이라고 추측하죠. 그런데, 중세 한국어에서 현대 한국어가 되면서 이 소리가 단어 맨 앞에서는 대부분 [ㅏ]로 바뀌었답니다.
그리고, 원래 한글의 "ㅐ ㅔ ㅚ ㅟ"는 글자 생긴 그대로, [ㅏㅣ] [ㅓㅣ] [ㅗㅣ] [ㅜㅣ]로 발음했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소리가 서로 합쳐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바ᆡ각"은 [버익]에서 [바익]을 거쳐 [백]이 된 것이랍니다.
이렇듯 소리는 항상 변화합니다. 소리의 변화를 잘 사용하면 보기에 이쁘지 않은 단어를 이쁘게 바꿀 수도 있고, 비슷한 단어들을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 있죠. 그런데, 그냥 단어의 소리를 바꾸라고 해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죠. 그러니 창창어의 예시를 볼까요?
항상 골칫덩이였던 "[-라ㅎ]" {땅}이란 접사를 붙여 만든 단어들을 봅시다. 이 단어들은 서로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창창어의 독특함을 떨어트렸죠.
가나ㅎ
키에러나ㅎ
틸롤라ㅎ
라이차ㅎ
파나ㅎ
압차ㅎ
멜라ㅎ
게마ㅎ
야나ㅎ
하이나ㅎ
노슬라ㅎ
하즐라ㅎ
비나ㅎ
타니힐라ㅎ
잔차ㅎ
슈타나ㅎ
도몰라ㅎ
피클라ㅎ
마차ㅎ
겔라ㅎ
무차ㅎ
헤슬라ㅎ
그럼 이제 이 단어들의 소리를 변화시켜 독특함을 다시 불어넣어 봅시다!
원래 단어에서 가장 쉽게 변하는 것은 모음입니다. 당장 영어만 봐도 record [레코드/리코드]라는 예시가 있죠. 이 단어가 {기록}이란 뜻으로 쓰이면 첫 번째 음절을 강조해 소리 내서 e[에]를 제대로 발음해 [레코드]가 되지만, {기록하다}란 뜻으로 쓰이면 두 번째 음절을 강조해 소리 내서 e를 제대로 발음하지 않아 [리코드]가 된답니다.
모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는 상황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절을 강조하느냐가 중요한 언어에서는 강조하지 않은 모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죠. 보통 맨 앞이나 맨 뒤의 음절을 강조하지만, 앞에서 두 번째 모음이나 뒤에서 세 번째 모음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영어처럼 단어마다 다 다른 경우도 있답니다.
아니면 같은 모음이 연달아 등장했을 때 뒤따르는 모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는 상황도 있죠. 반대로 앞서는 모음을 제대로 발음 안 할 때도 있답니다. 또 특정한 자음 앞/뒤에 있는 모음이라든가, 받침이 있는 모음이라든가, 특정한 모음이 일괄적으로 변화한다든가...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죠.
또 제대로 발음하지 않았을 때 어떤 모음으로 변하는지도 중요하답니다. 한국어처럼 [ㅡ]로 변할 수도 있고, 영어처럼 [ㅣ]나 [ㅓ]로 변할 수도 있죠. 아니면 변하기 전 모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요!
창창어에서는 단순하게 "똑같은 모음이 연달아 등장하면 뒤따르는 모음이 [ㅣ]가 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다음의 단어들이 오른쪽으로 변하겠죠.
가나ㅎ -> 가니ㅎ
파나ㅎ -> 파니ㅎ
압차ㅎ -> 압치ㅎ
잔차ㅎ -> 잔치ㅎ
슈타나ㅎ -> 슈타니ㅎ
도몰라ㅎ -> 도밀라ㅎ
마차ㅎ -> 마치ㅎ
모음은 없는 곳에서 새로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보통 발음의 편의를 위해서죠. [ㅣㅎ]는 뭔가 발음하기 어려우니 [ㅣ히]로 바뀌었다고 해볼까요?
가나ㅎ -> 가니ㅎ -> 가니히
파나ㅎ -> 파니ㅎ -> 파니히
압차ㅎ -> 압치ㅎ -> 압치히
잔차ㅎ -> 잔치ㅎ -> 잔치히
슈타나ㅎ -> 슈타니ㅎ -> 슈타니히
마차ㅎ -> 마치ㅎ -> 마치히
자음은 어떨까요? 자음도 변화하는 경우가 많죠.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키] [케] 같은 소리들이 [치], [체]로 변하는 걸 겁니다. 예를 들어 라틴어 인명 Cicero "키케로"를 봅시다. 이 이름은 라틴어 cicer {병아리콩}에 접사 -o를 붙인 이름이죠. 얼굴에 사마귀가 나서 붙은 이름이었나 봅니다.
어쨌든, 이 이름은 시간이 지나며 발음이 [치체로]로 바뀌었고, 이후 [시세로]로 바뀌었다가, 영어에서는 아예 [시서로우]가 되었죠. 이렇듯 [ㅣ]나 [ㅔ] 같은 모음들은 자기 앞의 자음을 잘 변화시킨답니다.
그러면 [ㄱ]/[ㅋ]/[ㅊ] 뒤에 [ㅣ]/[ㅔ]가 오면 각각 [ㅈ]/[ㅊ]/[ㅅ]로 변한다고 해볼까요? 그럼 아래의 변화를 겪겠죠?
키에러나ㅎ -> 치에러나ㅎ
게마ㅎ -> 제마ㅎ
겔라ㅎ -> 젤라ㅎ
다른 변화도 생각해봅시다. [치에러나ㅎ]나 [타니힐라ㅎ] 같은 단어, 너무 길지 않나요? 이런 단어에서는 마지막의 [ㅎ]가 [ㅋ]로 바뀌어서 확실한 끝맺음을 맺는다고 해보죠.
키에러나ㅎ -> 치에러나ㅎ -> 치에러나ㅋ
타니힐라ㅎ -> 타니힐라ㅋ
그러고 보니 [타니힐라ㅋ] 중간의 [ㅎ], 너무 약해 보이지 않나요? [ㅎ]은 모든 언어에서 가장 약한 자음로 취급하는 소리랍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아예 사라졌다고 해봅시다. 이렇게 되면 [ㅣ]가 연달아 등장하게 되니, 같은 소리가 연달아 등장하면 하나를 지우는 규칙으로 [타닐라ㅋ]가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소리 변화의 예시, 그리고 소리 변화의 원칙과 예외를 보고 마쳐봅시다.
아무런 예시 단어, 예를 들면 [말카루커멘]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해봅시다. 모음 조화를 엄격히 지키는 언어라면 한 단어의 모든 모음을 동일한 종류로 일치시키죠. 여기서는 한국어의 모음을 예로 들면, [말카로카맨]으로 바뀌는 거겠네요.
하와이어 같은 경우엔 [ㅌ], [ㄷ], [ㅅ], [ㅊ], [ㅈ], [ㅎ]를 모두 [ㅋ] 소리로 인식하기도 한답니다. 다른 언어에서는 [ㄷㄹ]가 [ㅋ]로 바뀐 경우도 있고요. 또 [ㅍㄹ]/[ㅂㄹ]/[ㅌㄹ]/[ㄷㄹ]/[ㅋㄹ]/[ㄱㄹ]가 모두 [ㅅ]로 변해버린 경우도 있죠. 심지어 [둬]가 [에ㄹㅋ]로 바뀐 경우도 있답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이상해 보이는 소리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음으로는 소리 변화의 원칙이랍니다. 소리 변화에는 가장 중요한 두 원칙이 있죠.
1. 소리 변화는 무조건 모든 단어에 동일하게 일어난다. (일관성 원칙)
2. 소리 변화는 무조건 순서대로 일어난다. (단계성 원칙)
둘 다 아주 단순한 원칙이죠. 위에서 본 예시처럼, 소리 변화에는 상황과 조건, 변화가 있답니다. 상황이 조건에 맞을 경우, 해당하는 모든 상황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랍니다.
두 번째 원칙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두 소리 변화가 있을 때, 무조건 앞선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뒤따르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원칙이랍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똑같은 모음이 연달아 등장하면 뒤따르는 모음이 [ㅣ]가 된다"를 1번 변화, "[ㄱ]/[ㅋ]/[ㅊ] 뒤에 [ㅣ]/[ㅔ]가 오면 각각 [ㅈ]/[ㅊ]/[ㅅ]가 된다"를 2번 변화로 두고 아래의 결과를 볼까요?
라가킨 -> 라기킨 -> 라지친 (○)
라가킨 -> 라가친 -> 라기친 (×)
물론, 순서는 오직 창작자가 설정하는 것이니, 보기에 결과물이 더 좋아 보이는 쪽으로 결정하시면 된답니다!
하지만 원칙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죠. 각 원칙의 예외를 볼까요?
가장 먼저 일관성 원칙입니다. 일관성 원칙에 따르면 모든 소리 변화는 모든 단어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죠. 그러나 일관성 원칙에는 두 예외가 있답니다. 1. 몇몇 단어는 자신만의 소리 변화를 겪는다. 2. 몇몇 단어는 모든 단어가 겪는 소리 변화를 겪지 않는다.
1번 예외의 예시는 위에서도 봤죠. [키에러나ㅎ]와 [타니힐라ㅎ]는 자신들만의 변화를 겪었고, 심지어 [타니힐라ㅎ]는 혼자서만 독특한 변화를 두 번이나 겪었네요!
2번 예외의 예시도 위에 있었는데, 찾으셨나요? [야나ㅎ]는 "똑같은 모음이 연달아 등장하면 뒤따르는 모음이 [ㅣ]가 된다"는 변화를 겪어서 [야니ㅎ]를 거쳐 [야니히]가 되는 것이 맞았겠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서 이 변화를 적용하지 않았답니다.
물론 예외에는 이유가 있겠죠. 일관성 원칙의 예외는 "사용도"랍니다. 평소에 많이 사용되는 단어일수록 발음의 편의를 위해 자신만의 변화를 겪거나, 반대로 변화에 저항하고 기존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죠. 단어의 의미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일 것 같다면, 그리고 소리가 맘에 안 든다면, 일관성 원칙의 예외로 둬보는 것이 어떤가요?
단계성 원칙의 예외는 하나밖에 없답니다. 바로 몇몇 변화는 반복해서 적용된다는 것이죠. 제가 아까 [타니힐라ㅋ]를 [타닐라ㅋ]로 바꾸면서 "같은 소리가 연달아 등장하면 하나를 지우는 규칙"을 언급했었죠? 이건 저저번 장에서 다룬 규칙 4랍니다. 규칙 4의 적용은 애저녁에 끝났을 텐데, 왜 다시 적용했을까요?
바로 제가 규칙 4를 "반복해서 적용되는 규칙"으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변화의 단계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 매 단계마다 적용되는 변화는 "규칙"으로 두고 단계성 원칙의 예외로 두면 된답니다.
이번 장에서는 단어의 소리를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다뤄봤죠. 이제 무엇을 다뤄야 좋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다음 장에서 알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