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7장 ― 음운 변화, 자음편
저번 장에서는 다양한 음소 변화의 예시를 알아보았습니다. 분량의 문제로 모음만을 다뤘으니, 이번 장에서는 자음을 다룰 차례겠죠? 그전에 하나를 정리하고 가볼까요?
f > h / V_V
저번 장에서 본 음운 변화 표기법이죠? 저 표기가 뜻하는 바를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답니다: 두 V 사이에 놓인 f [ㅍ]은 h [ㅎ]이 된다. V는 모음vowel의 첫 글자로, 여기서는 아무 모음을 대체하여 쓰였죠.
즉, 왼쪽은 바뀌는 소리, 가운데는 바뀐 소리, 오른쪽은 바뀌기 위한 조건으로, _에 바뀌는 소리가 놓여야 하죠. 그러니 이 변화를 겪으면 [afe] [아페]는 [ahe] [아헤]로 바뀌나, [afran] [아ㅍ란]은 여전히 [afran] [아ㅍ란]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또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답니다! 바로 이 표죠! 기억이 안 나신다면 3장을 다시 봐주세요! 이번 장에서는 국제 음성 기호의 자음, 그중에서도 자음(폐에 의한 발동)을 살펴볼 것이랍니다! 그러면 저번 장처럼 용어 몇 개를 정리하고 가야겠죠?
자음 표를 보시면, 가로축에는 조음 위치(소리를 내는 위치)가, 세로축에는 조음 방법(소리를 내는 방법)이 있죠? 그리고 한 칸 안에서 오른쪽에는 유성음이, 왼쪽에는 무성음이 있고요.
모음에서 혀의 위치가 중요했던 것처럼, 자음에서도 혀의 위치가 중요하답니다! 특히, 조음 위치의 배열은 무작위가 아니라 입술에서부터 서서히 입 안쪽, 기도까지 내려가는 순서로 놓인 것이니까요.
그러니 모음에서 혀가 전진/후퇴한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음 위치도 전진/후퇴한답니다. 두 입술을 맞대는 양순음, 이에 혀를 대는 치음, 잇몸에 혀를 대는 치경음, 입천장 가운데에 혀를 대는 경구개음, 입천장 뒤에 혀뿌리를 대는 연구개음, 성대에서 소리를 내는 성문음까지, 서서히 뒤로 가는 것이 느껴지시죠?
그러나 아쉽게도 모음과는 다르게 무성음이 표의 왼쪽에 있다고 실제로 더 입 바깥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유성음과 무성음의 구분은 성대가 울리냐 아니냐로 나뉘니까요.
이제 세로축을 봐봅시다. 이 표의 순서로 보면 한 번에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파열음(폐쇄음)과 마찰음, 접근음은 아주 중요한 관계에 놓여있답니다.
치경 파열음 t [ㄷ], 치경 마찰음 s [ㅅ], 치경 접근음 ɹ (영어의 r)을 순서대로 소리 내볼까요? 파열음을 낼 때는 혀가 완전히 잇몸과 붙었다 떨어지고, 마찰음을 낼 때는 혀가 아슬아슬하게 안 닿으며, 접근음을 낼 때는 아예 혀가 잇몸과 붙지 않죠.
양순 파열음 p [ㅍ], 양순 마찰음 ɸ ([후]의 첫 소리), 양순 접근음 w (반모음ㅗ/ㅜ)을 발음해 보면 마찬가지로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고, 아슬아슬하게 안 닿고, 아예 안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이렇듯 혀의 위치/조음 기관의 위치가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이 느껴지니, 상승/하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겠죠? 설측 마찰음과 설측 접근음도 똑같고요. 물론, 혀 자체는 위에 붙어 있으니 혀 옆구리의 높낮이지만요. 그리고 파찰음은 그저 파열음으로 시작해 마찰음으로 끝나는 소리니 둘 사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또, 탄(설)음과 전동음의 두 소리는 서로 굉장히 유사한 소리랍니다. 전동음은 이탈리아어의 r처럼 [으르르르르르]하고 길게 진동시켜야 하는 반면, 탄음은 한국어의 [ㄹ]처럼 한 번만 빠르게 '탁' 치고 내려오니까요. 결국 전동음은 긴 탄음, 탄음은 짧은 전동음이랍니다. 그리고 탄음은 파열음이 변형된 소리죠. 그냥 붙였다 떼는 것이 아닌, 한 번 튕기는 식으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비음도 파열음의 변종입니다. 파열음이 막았다가 터트리는 반면, 비음은 막고 아예 코로 공기를 내보내는 소리죠. 즉,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파열음 --(변이)-> 비음
파열음 --(변이)-> 탄음 --(장음)-> 전동음
파열음 --(하강)-> 마찰음 --(하강)-> 접근음
파열음 + 마찰음 = 파찰음
그럼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자음에서도 그냥 일어나는 변화는 많답니다. 대표적인 예시를 볼까요?
bʰ > b
dʰ > d
gʰ > g
b > p
d > t
g > k
p > ɸ
t > θ
k > x
이 변화는 옛날 옛적, 인도유럽조어라는 언어에서 게르만조어가 갈라져 나올 때 일어났던 변화 중 하나랍니다. 보시면 기식이 있는([ㅋ], [ㅌ], [ㅍ]처럼 숨을 몰아내쉬는) 유성 파열음은 그냥 유성 파열음으로, 유성 파열음은 무성 파열음으로, 무성 파열음은 무성 마찰음으로 바뀐 게 보이시죠?
이렇듯 소리가 변화할 때는 단순히 한 소리가 다른 소리가 되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거나 있는 소리에 흡수되는 것이 아닌, 서로 옆으로 밀면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답니다.
당연하게도, 자음이 변한 결과가 항상 자음인 것은 아니랍니다!
*balgiz [balɣiz] [발기ㅈ] -> bielġ [bi͜yɫj] [비윌리] -> belly [bɛli] [벨리]
이처럼 드물긴 하지만 자음이 모음으로 변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보통은 접근음, 즉 반모음으로 변하는 선에서 멈추죠. 마찰음이 접근음으로 혀가 하강하며 소리가 약해지는, 모음에 가까워지는 현상은 한국어에서도 볼 수 있답니다! 당장 한국어의 순경음인 ㅸ[ɸ]도 현대 한국어로는 모음 사이에서 반모음ㅗ/ㅜ [w]으로 변했거든요. "덥다"와 "더워라"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죠. 어? 모음 사이에서요?
네, 맞습니다! 당연히 주변의 모음도 자음의 소리에 영향을 미치겠죠? 위의 예시도 있겠지만, 가장 유명한 예시는 1막 15장의 첫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구개음화겠네요.
구개음화는 간단하게 말해서 자음의 조음 위치가 경구개 근처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구개음화가 일어나는 조건은 언어에 따라 다르나, 전설 고모음 i과 y이 가장 주된 원인이랍니다. 즉, 표기법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죠.
t > t͡ɕ / _{i/y}
중괄호{} 안의 표기는 둘 중 아무거나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건 하나의 예시로, 언어마다 어떤 조음 위치의 자음들이 무엇으로 변하는지는 제각기 다르답니다!
한국어의 예시를 들자면, "같이"나 "굳이" 같은 단어들을 [가치], [구지]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겠죠. 또, t이나 d 같은 치경음외에도 연구개음도 구개음화를 겪는답니다.
한국어의 예시로는 질경이가 있겠는데요, 동의보감 같은 17세기 서적에는 "길경이"로 등장하다가, 이후 구개음화로 인해 연구개음 [ㄱ] [k]이 [ㅈ] [t͡ɕ]이 된 것이랍니다.
연구개음의 구개음화하면 또 라틴어를 빼먹을 수가 없죠. 라틴어로 뇌는 cerebrum [kɛrɛbrũ] [케레ㅂ룽]이었는데요, 구개음화를 거쳐 이탈리아어의 cerebro [t͡ʃɛrebro] [쳬레브로], 포르투갈어의 cérebro [sɛɾɨβɾu] [세르ㅂ루], 스페인어의 cerebro [θeɾeβɾo] [세레ㅂ로]가 되었답니다.
라틴어의 [k]이 구개음화를 거치며 다양한 정도로 전진한 것이 보이죠? 물론 이 경우에는 _ɛ이 조건이었지만요. 심지어 _a이 조건인 경우도 있답니다! 프랑스어에서는 _a에 놓인 연구개음을 구개음화시켰죠. 대표적인 예시로는 라틴어 cattus [kattʊs]가 프랑스어 chat [ʃa] [샤]가 된 예시가 있답니다.
심지어 입 저 안쪽에 있는 h도 구개음화를 겪는 경우가 있는데요, 당장 한국어의 동남 방언에서 "형님"을 "성님"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예시죠. [hjʌŋ]이 구개음화를 겪어 [çʌŋ]이 되는 것까지는 표준어에서도 일어나는 변화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ç]이 더 전진해 [ɕʌŋ], [sʌŋ]이 되는 변화를 겪은 것이랍니다.
어, 근데 이 구개음화는 h과 자음인 j이 서로 합쳐진 변화가 아닌가요?
당연히 주변의 자음이 일으키는 자음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든 예시죠! 사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자음이나 모음이 연달아 오는 것을 피한답니다. 그래서 보통은 자음과 모음이 서로 번갈아 가며 등장하죠. 따라서 모음끼리 영향을 미치거나 자음끼리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모음과 자음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보다 적답니다. 그래도, 예시는 넘쳐난답니다. 몇 개만 볼까요?
라틴어 octō [옥토] > 이탈리아어 otto [옷토]
라틴어 plenus [ㅍ레누ㅅ] > 스페인어 lleno [ɟ͡ʝeno] [혜노]
두 예시 모두 자음이 뒤따르는 자음에 이끌린 예시입니다. 첫 번째 예시에서는 [k]의 조음 위치가 후퇴해 뒤따르는 파열음과 동일한 위치로 이동하였죠. 두 번째 예시에서는 [p]과 [l]이 만나 앞서는 파열음은 조음 위치가 후퇴하고 뒤따르는 설측 접근음은 조음 방법이 상승하고 설측성이 사라져 하나의 경구개 파찰음이 되었네요.
한국어에서도 자음 때문에 자음이 변하는 사례는 많은데요, 비음이 옆의 파열음을 비음으로 바꾸는 변화는 다룬 적 있으니, 이번에는 설측음화를 보겠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치경 비음과 치경 설측 접근음이 서로 자리를 자주 바꾸는데요, 예를 들면 "원래原來"와 "내일來日"이 있죠. [ㄹ]이 단어의 맨 앞으로 오면 [ㄴ]으로 변한답니다.
또, "권력" [궐력], "물난리" [물랄리] 같은 예시도 있죠. 이 경우에는 앞뒤의 설측 접근음에 이끌려 비음이 설측 접근음이 된 것이랍니다. 반대로, "공권력" [공권녁], "횡단로" [횡단노] 같은 예시도 있답니다. 이 경우 중심이 되는 단어에 달라붙은 설측 접근음이 반대로 비음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이렇게 여섯 장에 걸친 2막의 음운론을 끝냈답니다! 다음 장에서는 언어학의 어떤 면모를 만나게 될까요? 궁금하다면 다음 장에서 만나요!
이번 장에서 예시로 다뤘던
bʰ > b
dʰ > d
gʰ > g
b > p
d > t
g > k
p > ɸ
t > θ
k > x
이 변화는 사실 "그림의 법칙"이라는, 현대 언어학의 시초가 되는 발견 중 하나였답니다. 그만큼 중요한 발견이었다 보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저번 장과 이번 장에서 사용한 표기법은 음운 규칙Phonological rule이라는 표기법이랍니다. 표기법의 자세한 사항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