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8장 ― 형태론 中 어근과 접사
1장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볼까요? 언어학의 여섯 갈래를 알아 봤었죠? 지금까지 우리는 첫 두 갈래인 음성학과 음운론, 특히 음운론을 다뤄봤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다음 갈래인 형태론과 통사론을 다룰 차례겠죠?
형태론과 통사론은 둘 다 우리 눈에는 "문법"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둘 사이 아주 큰 차이가 있답니다. 형태론은 단어의 문법을 다룬다면, 통사론은 문장의 문법을 다루죠. 형태론이라는 이름도 단어의 형태를 다루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니, 형태론은 단어가 핵심입니다.
특히, 1장의 8막에서 다룬 접사가 형태론의 핵심이고, 언어를 창작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개념이랍니다. 그러면 이번 장에서는 접사를 통해 단어의 구조를 샅샅이 분석해 볼까요?
2장에서 음운론을 시작하며 음소에 대해 알아본 것이 기억나시나요? 음소音素는 원소元素를 따라 지은 이름으로, 원소가 물질의 기본 단위인 것처럼, 음소가 음성을 분석할 때 기본 단위라서 붙인 이름이죠. 그러면 형태론에서 정의하는 단어의 기본 단위는 무엇일까요? 네, 바로 형태소입니다.
형태소의 정의는 아주 단순하게, 뜻을 가진 가장 작은 음성 뭉치입니다. 음소의 정의와 비슷하죠? 음소의 정의는 뜻을 구분하는 음성이었잖아요.
고래 | 노래 | 모래
-> ㄱ, ㄴ, ㅁ로 뜻이 구분된다.
∴ 셋은 음소 /ㄱ/, /ㄴ/, /ㅁ/이다.
[고래]는 음성 [ㄱ], [ㅗ], [ㄹ], [ㅐ]가 뭉쳐 만들어진 음성 뭉치이다.
[고래]는 {물에 사는 다리 없는 포유동물}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 뜻을 만드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없으므로, 형태소 {고래}다.
[노래]는 음성 [ㄴ], [ㅗ], [ㄹ], [ㅐ]가 뭉쳐 만들어진 음성 뭉치이다.
[노래]는 {사람이 부른 음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 뜻을 만드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없으므로, 형태소 {노래}다.
[모래]는 음성 [ㅁ], [ㅗ], [ㄹ], [ㅐ]가 뭉쳐 만들어진 음성 뭉치이다.
[모래]는 {돌로 된 고운 가루}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 뜻을 만드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없으므로, 형태소 {모래}다.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한눈에 들어오죠? 음소 자체는 뜻을 구분할 수만 있지, 고유한 뜻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형태소는 고유한 뜻을 가진 한 뭉치의 소리죠.
그러면 형태소는 단어의 다른 이름인 걸까요? 형태론은 단어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접사라는 것을 아는 우리는 단어와 형태소가 같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접사라는 것을 빼도, 단어의 정의는 곧 말씀드릴 것처럼 매우 애매모호해서, 용어로 사용하기엔 힘들답니다.
우리는 단어를 보통 띄어쓰기로 나눠지는 각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절이라고도 하죠. 글이 아닌 말이라면, 말하다가 잠시 멈추는 때로 나눠지는 각 부분이라고요. 즉, "밥 먹었어?"라는 말에는 단어가 두 개 있네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밥은 먹었어?"라는 말에도 단어는 그대로 두 개지만, 무언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뜻도 약간 달라졌네요.
또, "먹을 거야"라는 말에는 단어가 몇 개인가요? 두 개인가요? 하지만, "밥 먹었어?"라는 문장과 "먹을 거야"라는 문장을 비교해 봅시다. 둘 다 네 음절인데, "밥 먹었어"의 '밥'과 '먹었어' 사이 조용한 시간과 "먹을 거야"의 '먹을'과 '거야' 사이 조용한 시간의 길이가 다르지 않나요?
아예 '먹을 거야'는 한 단어처럼 빠르게 발음하지 않으시나요? 또, "밥, 먹었어"처럼 둘 사이를 확실히 띄어 놓을 수 있는 "밥 먹었어"와는 다르게 "먹을, 거야"는 확실히 이상하지 않나요? 이게 과연 두 단어이긴 한 걸까요?
"만성골수백혈병"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건 한 단어죠. 하지만,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만성 골수 백혈병"으로, 세 단어짜리 말입니다. 둘 다 똑같은 말인데다가, 띄어 쓰든 안 쓰든, 말로 하면 둘 다 말하다가 중간중간 멈춰 말할 수 있으니 세 단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어란 참 애매모호한 기준이죠.
하지만 접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단어를 분해해 그 기본 단위인 형태소를 찾을 수 있죠.
먹- + -을 + -것 + 이- + -야
= 먹을 것이야
-> 먹을 거야
즉, {입을 통해 배로 넣다}라는 뜻을 가진 "먹-"에, (미래나 가정을 나타내는) 뜻을 가진 "-을", (○○하는 사실)이라는 뜻을 가진 "-것", (서술하는) 뜻을 가진 "이-", (어떤 사실을 상대에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뜻을 가진 "-야"라는 다섯 형태소가 만나 "먹을 것이야"라는 한? 두? 단어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결국 "먹을 것이야"는 {미래에 먹다}라는 뜻입니다. 즉, 중심이 되는 형태소는 "먹-"인 것이죠. 이렇게 중심이 되는 형태소를 어근語根, 말의 뿌리라는 용어로 부릅니다. 접사는 어근에 붙는, 부차적 의미를 가진 형태소를 부르는 용어고요.
형태소를 이것 말고도 다른 기준으로 구분할 수도 있답니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실질 형태소와 문법적인 의미를 가진 형식 형태소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죠. "풋사과"를 보면, "풋-"과 "사과" 모두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둘 다 실질 형태소랍니다. 물론, {풋사과}는 결국 {사과}니까 중심 의미는 "사과", 어근도 "사과"죠.
또, 혼자서 쓰일 수 있으면 자립 형태소, 언제나 다른 형태소와 나타나야 한다면 의존 형태소랍니다. 모든 접사는 의존 형태소죠. 무조건 어근에 붙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어근이 자립 형태소인 것은 아니랍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먹을 거야"의 어근인 "먹-"은 혼자서 쓰일 수 없으니까요.
즉, 이 세 구분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구분이랍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구분은 어근과 접사지만요.
따라서 형태론적으로 보자면, 단어는 형태소거나, 형태소가 만나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한 형태소로 이루어진 단어를 단일어, 여러 형태소로 이루어진 단어를 복합어라고 하죠. 물론 형태소가 만날 때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어요. 먼저, 복합어 중 실질 형태소끼리 만나 만들어지는 합성어를 봅시다.
합성어에는 두 실질 형태소가 비슷하게 중요한 대등 합성어, 한 형태소가 더 중요한 수식 합성어(종속 합성어), 두 형태소의 뜻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뜻이 만들어지는 융합 합성어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의 예시로는 "손발"(손과 발을 일컫는 말), "손가락"(손끝의 가락, 즉 손끝의 다섯 개로 갈라진 부분), 돌아가시다(돌아가다의 높임말이 아닌, 죽다의 높임말로 쓰일 때)가 있겠네요.
파생어는 어근에 접사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불확실성이 있겠네요. "확실"이라는 실질 형태소에 "불-"이라는 접두사와 "-성"이라는 접미사가 만나 만들어졌습니다. 1막 8장에서 주로 다룬 구조기도 하죠.
그럼 "먹었었다"도 파생어인가요? "먹-"이라는 어근에 접사가 붙은 거잖아요? "나는"도 마찬가지로 파생어 아닌가요? 근데 그렇다기엔 "불확실"과 "확실"은 확실히 다른 단어지만, "나"와 "나는"은 다른 단어라는 느낌이 별로 안 드는 걸요?
바로 붙는 접사가 형식 형태소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형식 형태소의 다른 이름은 문법 형태소인 만큼, 문법적인 뜻이 붙으니 다른 뜻을 가진 다른 단어로 여겨지지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문법 형태소가 붙는 경우는 아예 복합어로 보지도 않는답니다.
그러면 접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한국어 조사 "밖에"를 예로 들어봅시다. "너밖에 없다"를 보시면, 이 경우 "밖에"의 뜻은 「'그것 말고', '그것 이외에'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입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 단어는 "밖"과 "에"가 만나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죠.
실제로, "침대 밖에 있다"라는 문장에서 "밖에"는 명사 "밖"과 "에"가 만나 만들어졌죠. 그러나 "밖"이라는 명사의 뜻이 살아 있으니, 국립국어원은 조사가 아니라고 보고 "침대"과 띄어 쓰라고 합니다. 하지만, "너밖에 없다"에서는 "밖"의 뜻인 {바깥}이 아니라, 다른 뜻으로 쓰였으므로 기존의 의미를 잃고, 문법적 기능을 하는 접사가 되었다고 보고 "너"와 붙여 쓰게 한 것입니다.
"보다"도 봅시다. "나보다 낫다"에서 드러나듯, "보다"는 비교를 하기 위한 접사이죠. "보다"의 유래는 "보다가"로, '다가'는 '다'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갑자를 보다가 을축을 보니 ○○하다"라는 문장이 "을축이 갑자보다 ○○하다"의 형태로 바뀐 것에서 "보다"라는 조사가 생겼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기존의 뜻인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알다」가 아닌 다른 뜻이 되었으니, 또는 원래 뜻을 잃었으니, 의미의 탈색semantic bleaching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겠죠. 1막 8장에서 봤던 것처럼, 의미의 탈색은 접사가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랍니다. 물론, 꼭 접사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죠.
영어의 very라는 부사는 {매우, 바로 그}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유래는 {진실}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vērus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실질 형태소의 본래 의미가 탈색되고 문법적으로만 쓰이는 현상을 문법화라고 합니다. 물론, 의미의 탈색을 겪는다고 무조건 문법화를 겪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쟁이", "겁쟁이", "멋쟁이"처럼 실질적인 의미를 유지하면서 접사가 될 수도 있죠.
한국어의 문법화 예시를 더 들자면, "해 버리다" 등에서 「앞말이 나타내는 행동이 이미 끝났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버리다"가 있고, "따르다", "붙다", "좇다"에서 유래한 "따라", "부터"(붙어), "조차"(좇아)도 있으며, {~의 끝}이란 뜻의 ᄭᆞ자ᇰ(ㅅ은 현재의 "-의", 가ᆞ자ᇰ은 현재의 "가장")이 "까지"로 바뀐 예시도 있습니다.
또, 의미의 탈색은 음소의 탈락과 함께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미가 탈색되고 쓰이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말하기 편하게 발음이 바뀌고 음소가 탈락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그러니 직접 언어를 만드시면서 이런 점을 감안하시면 되겠습니다! 거기다, 계속해서 의미와 소리가 바뀔 수 있죠.
좋은 예시로는 "습니다"가 있습니다. "습니다"의 원형태는 "사ᆞ갑나ᆞ이다"로, "-사ᆞ갑-" + "-나ᆞ-" + "-ᅌ기-" + "-다"가 붙어 만들어진 하나의 커다란 접사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다"를 제외하면 각자가 쓰이지 않게 되고,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져 "습니다"가 되어 버렸죠. 이렇듯 시간이 지나며 문법적 요소는 가장 크게, 가장 빠르게 변한답니다.
사실, "노래"와 "모래"도 단일어가 아니랍니다. 둘 다 "놀-" + "-개", "몰-" + "-개"의 구조였죠. 마치 "날개"처럼요. 그러나 음소의 변화와 탈락을 겪으며 지금의 형태가 된 거랍니다.
이렇듯 형태론은 언어를 재밌게 바꿔줄 여러 정보를 알려준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어서 통사론을 다룰 거랍니다. 사실 언어 창작에서 형태론과 통사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거든요. 그러니 이번 장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 장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