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체계를 짜봅시다!

2막 11장 ― 통사론 中 어순

by CCCV 츠스쿠

저번 장에서는 통사론, 그중에서도 문장 성분과 품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저번 장을 시작할 때 어순, 즉 단어의 순서이란 것을 빠르게 다루고 넘어갔었죠? 이번 장에서는 어순을 좀 더 깊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저번 장의 내용을 떠올려 봅시다. 문장 성분 중 문장에 필수적인 것으로는 서술어, 주어, 목적어가 있었고, 한국어는 SOV, 영어는 SVO의 기본 어순을 가지고 있었죠. 또, 목적어는 서술어에 딸려있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딸려있다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가 보려고 합니다.


먼저 알아볼 개념은 머리head입니다. 머리는 가장 중요한 것의 비유로 흔히 쓰이죠? 통사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을 봅시다.

빨간 풍선 | 사과를 먹다 | 엄마의 가방 | 서울에서 온 사람 | 철수는 수영하지 않았다

"빨간 풍선"은 풍선에 대한 말이죠. "사과를 먹다"는 무언가를 먹었다는 말입니다. "엄마의 가방"은 가방에 대한 말이고, "서울에서 온 사람"은 사람에 대한 말입니다. "철수는 수영 하지 않았다"는 무언가를 안 했다는 말이죠. 각 경우에서 머리는 "풍선", "먹다", "가방", "사람", "않았다"입니다.


각 예시를 보면 머리가 아닌 부분이 있지요? 머리가 아닌 부분은 자신의 뜻이 머리에 딸려 있으므로 "딸림dependent"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빨간" 무엇이 빨간데요? "사과를" 사과를 어떻게 했는데요? "엄마의" 엄마의 뭐요? "서울에서 온" 뭐가요? "철수는 수영하지" 않았다고요? 이렇듯 딸림은 머리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보이죠?


위의 다섯 예시처럼, 머리와 딸림은 다양한 구조로 나타납니다. 하나씩 알아가 볼까요?

토끼가 뛰다 | 그가 사과를 먹다

서술어와 주어를 봅시다. 서술어는 나타내는 말이고, 주어는 나타내지는 말이죠. 그러니 머리는 서술어, 딸림은 주어입니다.


여러번 말씀드렸듯, 목적어는 서술어에 딸려서 서술어의 뜻을 정확히 해줍니다. 그러니 서술어가 머리, 목적어가 딸림입니다.

새 옷 | ropa nueva

수식어의 수식을 받는 문장 성분을 피수식어라고 합니다. 수식어와 피수식어 중 무엇이 머리일까요? "새 옷"은 결국 옷이니, 피수식어가 머리, 수식어가 딸림입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한국어 예시를 보면 계속해 머리가 뒤에 등장해서, 언제나 그렇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한국어가 굉장히 강한 "후핵성後核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고, 언어마다 머리와 딸림 중 무엇을 앞에 두는지는 다르답니다.


덤으로, 부치사도 봅시다. 부치사는 부사의 한 종류로, 다른 품사의 문장성분을 바꿔주는 기능을 하죠. 한국어의 접사 은/는/이/가 같은 것도 부치사로 볼 수 있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물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 la pluie du ciel nous apporte de l'eau

부치사가 피수식어의 앞에 오면 전치사, 명사의 뒤에 오면 후치사라고 부르는데, 그럼 한국어는 후치사겠죠? 반대로, "하늘에서"가 "du ciel"로 바뀐 것을 보면 프랑스어에는 전치사가 있군요.


부치사와 피수식어의 관계에서는 어디가 머리일까요? 이 경우, 부치사의 문장 성분에 따라 피수식어의 문법적 성질이 바뀌었으니 부치사가 머리, 피수식어가 딸림으로 볼 수 있답니다.


언어마다 어순이 다른 이유도 이제는 알 수 있겠네요! 언어마다 각 머리/딸림의 순서를 다르게 두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나 일본어는 후핵성이 강해서 머리가 항상 끝에 오지만, 모든 언어가 그런 건 아니죠. 심지어 문장 구조마다 머리의 위치가 달라지는 언어도 있답니다!

검은 고양이
검은색의 고양이
black cat
{검은색} {고양이}
cat of black
{고양이} {~의} {검은색}

한국어에서는 항상 머리가 끝에 오지만, 영어에서는 문장의 짜임새에 따라 머리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 보이시죠? 이렇듯 머리를 어디에 둘지는 언어에 따라, 또 문법에 따라 다르답니다.


그런데, 언어마다 다른 점은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세 개의 아주 다른 언어를 서로 비교하면 이 사실을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죠!

중국어
你喜好我嗎?我喜好你!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중한사전
你 {너}
喜好 {좋아하다}, {흥미}
我 {나}
嗎 (의문 표현)

직역
너 좋아해 나 응? 나 좋아해 너!
스와힐리어
unanipenda? ninakupenda!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사한사전
u- {네가}
-na- (긍정 현재시제 = -한다)
-ni- {나를}
-penda {좋아하다}
ni- {내가}
-ku- {너를}

직역
너나좋아한다? 나너좋아한다!
스페인어
¿te gusto? ¡me gustas!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서한사전
te {너를}
gusto {(내가) 만족시키다}
me {나를}
gustas {(네가) 만족시키다}

직역
널 만족시켜? 날 만족시켜!

중국어, 스와힐리어, 스페인어는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언어랍니다. 그런 만큼 문법도 굉장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죠. 아예 한국어와도 완전히 다른 걸 볼 수 있어요! 똑같은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를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나 다른 구조를 사용하는 걸 보면 통사의 세계란 참으로 넓다는 게 보인답니다.


하지만, 각각의 구문을 자세히 파고들면 사실 서로, 한국어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죠. 중국어부터 차근차근 볼까요?


중국어는 고립어입니다. 고립어라는 용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고립어의 다른 이름, 위치어를 보는 게 낫답니다. 정말, 아까도 그렇고 왜 이렇게 다들 작명 감각이 없는 건지. 어쨌든, 위치어는 이름답게 위치가 전부인 언어입니다. 아래의 예시를 보면 알 수 있죠.

我愛你
직역: 나 사랑해 너
{나 너 사랑해}
{내가 너를 사랑해}
{너를 내가 사랑해}
{사랑해 너를 내가}
你愛我
직역: 너 사랑해 나
{너 나 사랑해}
{네가 나를 사랑해}
{나를 네가 사랑해}
{사랑해 네가 나를}

중국어에서는 언제나 SVO 어순을 유지해야 합니다. 물론, 한국어도 일단 기본은 SOV긴 하지만, 한국어에는 조사/토씨라는 접사가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기에 각 단어의 위치를 바꿔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죠.


즉, "내가 너를 사랑해"를 "너를 내가 사랑해"로 바꿔말한다고 이걸 "네가 나를 사랑해"로 이해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단어의 순서가 바뀌면 문장의 뜻이 무조건 바뀌죠. 마치 토씨를 떼고 말하는 한국어처럼요. {나 너 사랑해}와 {너 나 사랑해}는 사랑의 방향이 반대잖아요?


이렇듯, 고립어는 각 단어를 정해진 위치에 넣는 것으로 문법적 의미를 정한답니다. 영어도 어느정도 고립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아래 같은 짓거리를 할 수 있죠!

plants drink water
{식물이 물을 마신다}
drinks water plants
{음료가 식물에게 물을 준다}
water plants drinks
{물이 음료를 심는다}

똑같은 단어가 어떤 위치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주어, 서술어, 목적어의 기능을 다 하는 모습이랍니다. 당장 위의 예시에서도, 중국어 喜好는 {좋아하다}라는 서술어로도, {흥미}라는 주어/목적어로도 쓸 수 있죠.


다음은 교착어를 볼 차례입니다! 여기서는 스와힐리어를 예시로 들었지만, 한국어도 훌륭한 교착어의 예시죠. 일단은 위의 예문을 먼저 분석해 봅시다.

u-na-ni-penda
네가 ~한다 나를 좋아하다
ni-na-ku-penda
내가 ~한다 너를 좋아하다

보시다시피, penda{좋아한다}라는 중심 앞에 다양한 토씨가 붙은 것을 볼 수 있죠. 그래서 결국 저 한 단어가 {네가 나를 좋아한다}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이랍니다. 토씨가 어근을 문법적으로 변형한 것이죠.

교착어膠着語란 용어의 뜻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풀膠칠한 것처럼 붙着었다는 뜻이죠. 제가 좋아하는 한국어의 예시를 보면 이해가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먹이시겠습니까요?
먹-이-시-겠-습니-까-요
어근 + ~하게 하다 + 존댓말 + ~했다 + 격식 + 질문 + 정중
{먹다}를 무언가에게 무언가를 먹게 할 것이냐고 윗사람에게 정중하게 물어보는 의미로 바꾸기 위해 많은 접사를 사용해 순차적으로 변화시켰다.

서술어 말고도, 위에서 봤던 것처럼 주어와 목적어 뒤에 접사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접사를 더하느냐에 따라 문법적 기능이 달라지죠.


마지막으로 굴절어를 봅시다! 여기서는 스페인어를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산스크리트어와 라틴어가 굴절어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긴 한답니다. 하지만 위의 예시도 충분하니, 한번 분해해 봅시다.

yo / me
내가 / 나를
tú / te
네가 / 너를

보이는 것처럼, 굴절어에서는 단어의 형태가 이 단어의 문법적 기능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답니다. 단어의 형태가 문법적 기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이죠. 한국어의 경우, 주어 뒤에는 조사 "-이/가"를, 목적어 뒤에는 조사 "-을/를"을 붙이지만, 스페인어에서는 아예 달라지는 것이 보이죠?


아, 단어의 형태 자체가 "굴절"하기에 (꺾이기에) 교착어와는 다른 것이군요! 교착어는 깔끔하게 어근과 접사를 떼어낼 수 있지만 굴절어에서는 단어가 아예 꺾여버려서 다른 모양의 단어가 되어 버린 것이네요.


그런데 서술어를 보면 오히려 교착어와 굴절어의 차이가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gustar {만족시키다}
gusto {(내가) 만족시키다}
gustas {(네가) 만족시키다}
gustaré {(내가) 만족시킬 것이다}
gusta {(네가) 만족시켜라}

어... 분명 어근인 gust-에 다양한 접사가 붙은 게 아닐까요? 뭐가 다른 거죠?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옆에 두고 비교해 보면 세 가지 큰 차이점을 알 수 있답니다!

vas | (네가) 간다
fuiste | (네가) 갔다
irás | (네가) 갈 것이다

hable | (그가) 말할지
hable | 말해라
habla | (그가) 말하다
hablaba | (그가) 말했다
hablará | (그가) 말할 것이다
hablas | (네가) 말하다
hablara | (그가) 말했을지

형태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건 위에서도 봤던 단어의 모양 자체가 아예 꺾여 버려 원형을 알아 볼 수 없던 사례의 일부죠. 보통은 gustar처럼 원형이 남기 마련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으니까요.

동일한 형태가 여기저기에 등장합니다. 단어를 꺾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어쩌다가 형태가 겹치는 일은 피할 수 없죠.

접사를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어근에서야 어느 정도 분리할 수는 있겠지만, 접사끼리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의 접사는 여러 의미가 중첩된 하나의 기능만을 담당합니다.

위의 예시를 보면, "그가 했다"라는 뜻을 가진 -a에 뒤에 이것저것 붙은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당장 hablas부터가 그런 가설을 부정하죠. 다른 비유를 들자면, 한국어의 경우 "말했―"까지만 말하면 "말했다"인지, "말했을지"인지, "말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했-" 덕분에 일단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어에서는 접사를 말하다 말면 무슨 접사를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예 추측할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hablaba에 {-을지}의 뜻을 더한 것이 hablara지만, 단어의 형태는 "-aba"와 "-ara"로 뭐가 더해졌다고 보기 어렵죠.


결국, 접사를 풀로 붙인 것이 아닌 단어를 아예 꺾어버렸기에 생기는 차이인 것이죠. 이제는 두 분류의 차이가 확실하죠?


자, 슬슬 분량이 흘러 넘칠 지경이니, 이것으로 통사론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주어, 목적어, 서술어가 뭔지 알아봤으며, 고립어/교착어/굴절어의 정의와 대략적인 느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다시 형태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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