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그저 단어 뭉치가 아닙니다!

2막 10장― 통사론 中 구, 절, 월

by CCCV 츠스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대한민국헌법 中 전문

갑자기 긴 문장이 등장해서 깜짝 놀라셨죠? 저번 장에서는 문장이라는 연극 안의 배우와 배역을 만나봤으니, 이번 장에서는 연극의 짜임을 알아볼 차례랍니다! 그러니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면서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문장을 가지고 와봤답니다! 그럼 바로 분해 해볼까요?


그전에 토막 상식 하나! 대한민국 헌법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제1장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랍니다! 아주 짧고 간결하죠? 위의 전문에 비하면 더더욱이요.


그런데 사실, 전문도 한 문장이랍니다. 진짜예요! 한 문장이 저렇게 길어질 수 있다니, 믿겨지시나요? 너무 복잡해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한 문장인 만큼, 아주 빠르게 분해할 수 있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다시 복습해볼까요? 빨간색은 서술어, 노란색은 주어, 파란색은 목적어, 청록색은 관형어, 보라색은 부사어랍니다. 문장의 필수 구조는 서술어, 주어, 목적어죠. 그러면 이 셋만 남기고 모두 지워볼까요?


대한국민은 헌법을 개정한다


핵심만 간결하게 잡아낸 문장이네요! 이게 바로 이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죠.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전문을 읽다 보면 "-을/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목적어들을 필요로 하는 서술어는 어디에 숨어있는 거죠?


바로 문장 안에 숨어 있는 문장 안에 들어있답니다! 우리, 문장의 정의를 떠올려볼까요?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를 포함한 말의 뭉치입니다. 달리 말하면 주술구조를 포함한 말의 뭉치죠. 그런데, 한 문장 안에 여러 개의 주술구조가 들어있으면 어떡하죠?


이럴 때 필요한 개념이 구와 절이랍니다! 구phrase는 가장 넓은 범위의 정의로, 모든 말의 뭉치를 말합니다. 절clause은 한 개의 주술구조만을 포함한 말의 뭉치랍니다. 서술어가 들어가 있으니 자연스레 서술어가 필요로 하는 목적어도 딸려와야 하고요. 구보다는 정의가 더 빡빡하죠. 마지막으로 문장, 순우리말로 월sentence은 문법적으로 완전하고 주어와 서술어를 포함한 말의 뭉치를 말하죠. 달리 말하면 완성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월은 절이고, 모든 절은 구니까, 실질적으로는 월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절, 절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구라고 한답니다. 즉, 구라고 하면 보통은 미완성된 절, 절이라고 하면 문장 안의 문장을 일컫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전문의 모든 서술어를 찾아볼까요? 모든 절을 찾기 위해서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다니요! 26개나 있네요! 그럼 이 서술어들의 절을 하나씩 분리해 살펴볼까요?


1. 역사가 유구하다
2. 우리 대한국민이 역사와 전통에 빛나다
3. 대한민국임시정부가 3·1운동으로 건립되다
4. 4·19민주이념이 불의에 항거하다
5. 대한국민이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하다
6. 대한국민이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다
7. 대한국민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다
8. 대한국민이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다
9. 대한국민이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하다
10. 대한국민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다
11. 각인의 기회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다
12. 대한국민이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다
13. 대한국민이 대한국민에게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다
14. 책임과 의무가 자유와 권리에 따르다
15. 대한국민이 대한국민에게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다
16. 국민생활의 향상이 균등하다
17. 대한국민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향상을 기하다
18.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 항구적이다
19. 대한국민이 밖으로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다
20. 대한국민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다
21. 대한국민이 확보할 것을 다짐하다
22. 헌법이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다
23. 헌법이 8차에 걸치다
24. 헌법이 개정되었다
25. 헌법이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치다
26. 헌법이 국민투표에 의하다
27. 대한국민이 헌법을 개정한다


결국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은 스물여섯 개의 절을 안은 절로 된, 총 스물일곱 개 절이 포함된 문장이었던 거네요! 보통 바깥의 절을 안은절/주절主節이라고 하고, 안의 절을 안긴절/종속절從屬節이라고 한답니다. 즉, 26개의 종속절을 안은 주절이었던 것이죠. 여담으로, 앞서는 절을 선행절, 뒤따르는 절을 후행절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긴 문장은 드물지 않답니다! 근대에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뽐내는 방법 중 하나가 문장을 만연체로 써서 길게 늘리는 거였거든요. 덕분에 당대의 글을 읽을 때는 머리가 지끈거리죠. 심지어 우리나라에는 한 문장으로만 된 소설도 있답니다! 『방란장 주인』이라는 5000자짜리 단편 소설이죠. 5000자면 창언창안 한 장이랑 맞먹는데, 대단하네요!

그럼 이제 슬슬 구, 절, 월이 익숙해지셨나요? 그러면 이제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랍니다! 전문 중 일부를 따와 볼까요?


각인의 기회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다
대한국민이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다
[대한국민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다]


"각인의 기회"라는 구는 한 개의 관형어와 한 개의 명사로 이루어져 있죠? 그리고 구 전체가 하나의 명사로 기능하고요. "각인의 기회"를 목적어로 삼은 절이 "각인의 기회"를 주어로 삼은 절을 품고 있어서,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진 것이죠. 이렇게 명사로 기능하는 구를 명사구라고 한답니다. 마찬가지로 동사, 관형사, 부사로 기능하는 구를 동사구, 관형사구, 부사구라고 하죠. 각각의 예시를 볼까요?


우리 사람을 괴롭히다니!
너를 망가트려 버리겠어!
이토록 완전히 망가진 마음을 품고!
누구보다 철저하게 부수겠어!


물론, 구 안에 구가 들어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아래처럼 분석할 수 있죠.


{나는 {{{{이토록 완전히} 망가진} 마음을} 품었다}}


중괄호의 색을 보시면 해당 구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답니다! 물론, 서술어를 가진 순간부터는 절이라고 불러도 되죠. 단어 하나하나는 그대로여도, 구 전체의 기능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오직 한 단어죠. 이걸 머리라고 하는데, 다음 장에서 다뤄봅시다! 다음 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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