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육등분 하는 언어가 있어요?

2막 14장 ― 통사론 中 시제와 상의 탐구

by CCCV 츠스쿠

시간을 나눠보라 한다면, 어떻게 나누실 건가요 대부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겠지만, 정작 우리의 언어는 그렇지 못하답니다. 영어는 문법적으로 시간을 과거/비과거로 나누고, 잉카제국의 공용어 케추아어는 비미래/미래로 나누죠.


저번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의 생각과 언어의 문법적 특징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언어가 시제를 가진다는 것은, 서술어의 형태가 일관적인 규칙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랍니다.


한 시점인 시제뿐만 아니라 여러 시점인 상도 마찬가지죠. 저번 장에서 시제와 상을 만나봤으니, 이번 장에서는 둘의 여러 면모를 살펴볼 차례랍니다. 그러면 제목에서 본 것처럼, 시간을 여섯으로 나누는 언어를 만나볼까요?


칼라우라가우야어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뉴기니 섬 사이에 있는 섬들 중 중서부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의 특징은 여섯 개에 달하는 시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ima-
{보다, (해) 보다}
imane
원미래시제
imaipa
근미래시제
iman
현재시제
imanu
금일과거시제
imangu
근과거시제
imadhin
원과거시제

즉, 이 언어는 먼 미래, 가까운 미래, 현재, 오늘의 과거, 가까운 과거, 먼 과거에 해당하는 시제 형태가 모두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 정도로까지 나눠야 하나 싶죠.


금일hodiernal시제는 칼라우라가우야어 말고도 여러 언어에 등장하는데요, 복합과거라는 프랑스어의 시상은 한때 금일과거시제였다는 주장도 있답니다. 금일과거시제가 있으니 금일미래시제도 있죠. 오늘 중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뜻이고요.


오늘을 제외한 과거/미래시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건 전금일시제, 후금일시제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또, 오늘 말고 어제에/내일 일어난 일을 말하는 작일hesternal시제/명일crastinal시제도 있답니다. 독특하네요!


어제 오늘 내일 같은 가까운 시간 말고 먼 시간을 따로 두는 언어는 없을까요? 당장 칼라우라가우야어도 있지만, 한국어의 "-었었-"같은 것도 과거의 과거를 나타내는 대과거시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답니다.


또, 콜롬비아 남부 원주민 일부가 사용하는 쿠베오어에는 역사적과거시제라는 것도 있답니다.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서술어 형태가 따로 있다는 것이죠.


가까운 과거, 먼 미래 말고도 특이한 시제는 또 있답니다. 미국 북서부의 원주민 일부가 사용하는 네즈퍼스어에는 주기periodic시제가 있는데요, 상대적인 과거/현재/미래 같은 구분이 아니라, 절대적인 아침/점심/저녁/여름/겨울 같은 구분으로 시간을 나눈답니다.


네즈퍼스어에는 아침/점심/저녁/밤/겨울을 의미하는 서술어 형태가 있고, 인근의 언어들을 조사하면 하루 동안이나 해지기 전까지 같은 시간을 나타내는 시제도 있답니다. 물론, 봄/여름/가을/겨울을 나타내는 시제를 가진 언어도 있고요. 시간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구분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죠.


시제를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요, 이런 경우를 순환cyclic시제라고 부른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곶에 사는 일부 원주민들의 부라라어는 원과거시제와 금일과거시제, 작일시제와 현재시제가 같은 꼴입니다. 이를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죠.

먼 과거₁ - 어제₂ - 오늘의 과거₁ - 현재₂

즉, 시제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번갈아 가며 등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건 다 좋은데 말이죠, 문장을 만들다 보면 한 문장 안에 여러 시제가 등장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볼까요?

밥 먹는 개를 건드렸던 넌 혼쭐을 당할 것이다

위 문장은 아래의 세 절로 되어있습니다. 구/절/월의 개념은 10장에서 다뤘었죠?

개가 밥을 먹는다
(네가) 개를 건드렸다
네가 혼쭐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전체 문장은 미래시제인데, 정작 그 안에는 과거시제가 들어있고, 그 안에는 현재시제가 들어있답니다.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You who bothered the eating dog will be taught a lesson

{밥 먹는 개를 건드렸던 넌 혼쭐을 당할 것이다}


영어에는 비록 미래시제가 없지만, 일단은 한 문장 안에서 여러 시제가 등장한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죠. 이렇게 한 문장 안에서 여러 시제가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시제가 전체 문장의 서술이 이뤄지는 시점을 바탕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해당 서술어의 서술이 이뤄지는 시점을 바탕으로 정해지죠.


즉, 이 예문을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네가 개를 건드린 시점 = 개가 밥을 먹는 시점

내가 이 문장을 말하는 시점

네가 혼쭐을 당할 시점

즉, 비록 이 문장은 네가 혼쭐을 당할 것이라고 미래시제로 말하고 있지만, 네가 개를 건드린 것은 내가 말하기 이전이니 과거시제이고, 그 개가 밥을 먹던 것은 네가 개를 건드린 시점과 같으니 현재시제인 것이죠.


이렇게 문장 안에서 단순히 지금 말을 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진 시제가 아닌, 문장 안 다른 서술어의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진 시제를 상대relative시제라고 합니다. 전자는 절대absolute시제라고 하죠.


그러나 꼭 이런 식으로 시제가 움직이진 않는답니다. 라틴어를 예로 들어볼까요?

quaerit ubi sit
{묻다} {어디} {있는지}
{어디 있는지 묻다}
quaesivit ubi esset
{물었다} {어디} {있었는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한국어에서는 "어디 있었는지 물었다"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사이에는 의미적 차이가 있습니다. 두 서술어의 시제가 따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틴어에서는 주절 서술어의 시제에 종속절 서술어의 시제를 맞춰야 하죠. 이를 시제배열Sequence of tenses이라고 합니다.


물론, 한국어에도 시제배열이 있죠. 간접인용을 할 때 시제가 바뀌는 것도 시제배열의 일종이거든요.

어릴 적 철수는 "난 꿈이 많아!"라고 말했다
어릴 적 철수는 꿈이 많았다고 했다

철수가 지금도 꿈이 많더라도, 간접인용이 과거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시제가 과거시제가 되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시제는 이걸로 그만하고, 상을 보러 가볼까요?


시제를 수없이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상도 수없이 나눌 수 있답니다. 하지만 시제를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상도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죠. 완망상과 비완망상이랍니다.


완망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죠? 영어 perfective를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완망은 말 그대로 완전히完 바라본다望는 뜻이죠. 서술어의 서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즉, 멀리서 다 보면 완망상, 가까이서 부분만 보면 비완망상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
한 번 끓였던 물은 맛이 이상하다
끓는 물은 아직 뜨겁다
끓인 물이 이제는 미지근하다
끓던 물이 이제는 미지근하다

문장1은 진리, 지식을 나타내는 상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처음과 끝을 완전히 바라볼 수 없죠. 서술이 걸친 시점이 모든 시간이니까요. 따라서, 비완망상입니다.


반대로 문장2에서 물은 한때 끓기 시작했다가 더 이상 끓지 않습니다. 한 문장 안에 시작과 끝이 모두 들어있죠? 따라서 완망상입니다.


문장3을 보면, 물이 지금까지 끓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 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모르는 어떤 시점까지 끓을 것이죠. 끓기 시작했던 한때는 보이나 끓기를 멈출 시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완망상입니다.


문장4에선 이미 끓는다는 행위가 멈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 문장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시작이 보인다고 꼭 끝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끝이 보이면 무조건 시작이 보이죠. 따라서 완망상입니다.


문장5도 똑같을까요? 끓는다는 행위가 멈췄다는 건 똑같은데요? 아, 그런데 끓던 물은 마저 끓을 수 있지 않나요? 먹은 밥은 이미 먹는다는 행위가 끝났지만, 먹던 밥은 마저 먹을 수 있죠. 끓는다는 행위가 잠시 멈췄다는 의미에서는 끝이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 다시 시작해서 진짜로 끝날 것이고, 그 끝은 미래에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완망상입니다.


즉, 완망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진행이나 완료라는 개념보다 더 큰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물론, 진행상은 비완망상, 완료상은 완망상에 포함되기는 하지만요.


시제의 방대함에 기겁하셨다면, 상에는 더 기겁할 수밖에 없답니다. 시제는 이해라도 쉽지, 상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복잡한 것들이 많거든요. 일단 대충 목록이라도 볼까요?


완망perfective상

끓인 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이는 상

완성completive상
끓여 버린 물: 행동의 종료에 집중하는 상

순간momentane상
한 번 끓은 물: 한 순간의 행동인 상

완료perfect상
끓인 물: 행동의 결과에 집중하는 상

근완료recent perfect상
방금 끓인 물: 끝이 막 끝났다는 상

삽화episodic상
물이 끓었다: 사건이라는 상

경험experiential상
끓은 적 있는 물: 과거 경험이 있다는 상

기간상durantive상
한동안 끓은 물: 일정 기간 동안 진행된 상


비완망imperfective상

끓는 물: 끝이 보이지 않는 상

습관habitual상
끓던 물: 평소 반복되는 습관인 상

빈번frequentive상
킥킥대던 사람: 정해지지 않은 횟수만큼 반복되는 상

반복iterative상
몇 번 킥 하던 사람: 일정한 횟수만큼 반복되는 상

연속continuous상
읽고 있는 책: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

진행progressive상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읽고 있는 책: 지금 당장 진행하는 상

상태stative상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 평소 상태를 나타내는 상

지식gnomic상
물은 끓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지식이나 진리인 상

지속continuative상
아직도 끓는 물: 여전히 일어나는 상

정지pausative상
끓던 물: 잠시 멈춘 상

재개resumptive상
마저 끓는 물: 잠시 멈췄다 재개하는 상

전망prospective상
끓을 물: 앞으로 그러할 상


국면phasal상

행동의 여러 시점 중 한 시점만을 나타내는 상

기동inchoative상
시작 시점

진행progressive상
중간 시점

종결cessative상
끝 시점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게 말이 되냐'라는 생각? 어느 정도 맞답니다. 왜냐면 1. 그 어떤 언어도 이들 상을 모두 가지고 있지는 않고, 2. 상이라는 것은 문법적 의미만 쪼갤 수 있다면 무한히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마치 시제처럼,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상 한두세 개만 뽑아 문법화 하고, 나머지는 부사 등으로 나타내도 충분할 뿐더러, 원래 현실의 언어가 원래 그렇답니다. 그냥 우리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썼던 문장들의 의미를 세세히 쪼개면 저런 식으로 쪼갤 수 있다는 정도로만 알아두고, 이번 장은 이만 마칩시다!


다음 장에서는 시제와 상을 언어에 도입하는 법을 고민해 볼 거랍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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