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6장 ― 형태론 中 태와 서법의 이해
잭이 여왕의 타르트를 먹었다
여왕의 타르트가 먹혔다
루이스가 잭에게 여왕의 타르트를 먹였다
세 문장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첫 번째 문장을 보면 확실히 잭이 여왕의 타르트를 먹은 것을 알 수 있지만, 두 번째 문장을 보면 누가 여왕의 타르트를 먹었는지 알 수 없고, 세 번째 문장을 보면 잭이 아닌 루이스가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세 문장을 비교해 보면 단순히 등장인물들이 사라지거나 새로 나타난 것만이 아니라, 동사도 "먹었다 - 먹혔다 - 먹였다"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죠. 즉, 등장인물의 숫자에 따라 동사의 형태도 변한답니다!
2막 9장에서 만난 '서술어의 자릿수'라는 개념을 기억하시나요? 걱정 마세요! 다시 한번 정리할 테니까요!
서술어는 자신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 개수의 문장 성분을 필요로 한답니다. 예를 들어, "걷다" 같은 서술어는 주어만 필요하지만, "가다" 같은 서술어는 주어에 목적어 한 개가 추가로 필요하며, "보내다" 같은 서술어는 주어에 목적어 두 개가 추가로 필요하죠.
이렇게 서술어가 필요로 하는 문장 성분의 개수를 (서술어의) 자릿수라고 하며, 모든 언어에서 자릿수가 1~3인 서술어가 존재한답니다. 자릿수가 1인 동사를 자동사, 2인 동사를 타동사, 3인 동사를 타타동사, 아니, 2중 타동사라고 하죠.
물론, 세상은 넓고 언어는 다양하니, 특이한 자릿수를 가진 언어도 있답니다. 몇몇 언어에서는 자릿수가 0인 서술어가 존재한답니다. 보통은 날씨를 나타내는 서술어들이 자릿수가 0이랍니다. 대표적인 예시인 스페인어를 볼까요?
lluvia {비}
llover {비하다} = {비가 내리다}
llueve {비한다} = {비가 내린다}
한국어의 경우는 "비가 오다"처럼 주어 + 서술어의 꼴로, 영어의 경우에는 it rains {그것 비하다}처럼 가짜 주어를 사용해 나타내야 하지만, 스페인어는 주어 없는 서술어로 나타낸답니다.
자릿수가 3보다 큰 경우도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한국어와 일본어겠네요.
마님이 머슴에게 아씨를 가마에 태우게 하다
"마님이", "머슴에게", "아씨를", "가마에" 총 4개
母が先生に児童に給食を食べさせてもらえる
母が {엄마가}
先生に {선생님에게}
児童に {아이에게}
給食を {급식을}
食べさせてもらえる {먹여달라고 하다}
심지어 4보다 큰 자릿수를 가진 언어도 있다고 하니, 상상에도 끝이 없네요! 물론, 이미 4만 해도 세계 언어 중 굉장히 드문 편에 속한답니다.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태에 대해 알아야 한답니다!
잠시 자릿수 얘기를 하긴 했지만, 이번 장의 주역은 바로 태voice랍니다! 한국어 태態는 말의 형태라는 의미고, 영어 voice는 말voice의 방식이라는 뜻이죠. 즉, 태는 문장이 가지는 형태를 줄인 것이랍니다. 그리스어로도 {상태}를 뜻하는 διάθεσις [디아테시스]라고 불렀고요.
가장 위의 예시를 다시 볼까요?
잭이 여왕의 타르트를 먹었다
(잭에게) 여왕의 타르트가 먹혔다
잭은 타르트를 먹은 것, 타르트는 먹힌 것입니다. 즉, 전체적인 의미를 보면 주체(주어가 아닌 주체)는 잭이죠. 이렇듯 의미상의 주체를 동작주/행위자agent라고 부릅니다. 피동주/수동주patient는 동작주가 하는 행위의 대상이죠.
보통의 문장에서 동작주는 주어, 피동주는 목적어라는 배역을 맡습니다. 당연하겠죠? 의미상의 주체와 문법상의 주어가 같은 편이 편하니까요. 하지만 말의 태도에 따라, 또는 언어에 따라 동작주 대신 피동주를 주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피동주를 주어로 삼는 태를 수동태/피동태passive voice라고 하죠. 수동태는 움직임動을 받는受다는 뜻이고, 피동태는 움직임을 입는被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비해 동작주가 주어인 태를 능동태active voice라고 하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동태에서는 기존의 주어, 즉 동작주는 문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물론, 부사의 형태로 나타낼 수는 있지만, 더 이상 필수적 문장 성분이 아니게 된답니다. 즉, 자릿수를 하나 낮추죠. 달리 말하면 수동태화는 자릿수 감소 연산valency-decreasing operation입니다.
자릿수를 낮추는 연산도 있으면 자릿수를 높이는 연산도 있겠죠? 네, 바로 사동태causative voice랍니다! 움직임을 시킨使다는 뜻의 사동태는 말 그대로 새로운 동작주를 등장시키고 기존의 동작주를 피동주로 보내 버리는 태랍니다.
내가 죽었다
그가 나를 죽였다
문법적으로 보자면, 기존의 주어를 목적어로 보내고, 새 주어를 등장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릿수를 하나 높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타동사가 사동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잭이 여왕의 타르트를 먹었다
루이스가 잭에게 여왕의 타르트를 먹였다
새 주어가 생기고, 기존의 목적어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기존의 주어는 간접 목적어라는 또 다른 목적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릿수가 하나 늘게 되었죠. 아! 이제 왜 자릿수를 계속 높이는 것이 힘든지 알 수 있겠어요!
대부분의 언어에서 사동 표현에 사동 표현을 한 번 더 적용시키는 것이 문법적으로 불가능하며, 한국어나 일본어 같은 언어에서도 사동 표현을 여러 번 겹칠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인간의 언어는 '재귀'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래의 예시처럼 무한한 사동 표현을 사용할 수는 있답니다.
my friends left my house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나갔다
I made my friends leave my house
내가 내 친구들을 우리 집에서 나가게 했다
dad made me make my friends leave my house
아빠가 내게 내 친구들을 우리 집에서 나가게 했다
mom made dad makes me make my friends leave my house
엄마가 아빠에게 내가 내 친구들을 우리 집에서 나가게 했다
grandma made mom makes dad makes me make my friends leave my house
할머니가 엄마에게 아빠가 나에게 내 친구들을 우리 집에서 나가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절 안에 절 안에 절 안에 절을 넣어 성립한 것이지, 실제로 하나의 동사에 사동 표현을 겹친 것은 아니죠. 그래도, 재밌는 실험이긴 하답니다!
마찬가지로, 자동사에 수동 표현을 넣어 자릿수가 0인 동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해보면 비문(틀린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수동 표현을 사용해도 자릿수가 줄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죠.
나는 역에 도착했다
*역은 도착해졌다
I arrived at the station
*the station is arrived
버그가 증가했다
버그가 증가하게 되었다
수동 표현을 겹쳐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동 표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수동 표현을 겹쳐 사용하지 못하고, 한국어 같이 가능한 언어에서도 자릿수가 추가로 줄어드는 것이 아닌 수동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됩니다.
수동성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수동 표현과 사동 표현이 단순히 자릿수를 낮추고 높이는 연산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때인 것 같네요! 예를 들어볼까요?
잭이 타르트를 먹었다
타르트가 잭에게 먹여졌다
사람들은 소식을 안다
소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둘 다 사동 표현과 수동 표현을 모두 거친 뒤인데, 처음 문장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죠? 언어학이 수학이나 프로그래밍의 용어를 빌려오긴 하지만, 언어는 수식이나 코드가 아니라서 단순히 더한 뒤 뺀다고 처음의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죠.
업데이트로 버그가 증가했다
업데이트로 버그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 예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릿수는 변하지 않았고, 문장의 주어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있죠. 수동태와 사동태를 자릿수 변경 연산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말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예를 들어, 수동태와 사동태 모두 기존의 동작주를 중심 위치에서 밀어내기 때문에, 두 문법 형태 모두 동작주의 책임을 돌리거나 행위의 결과만에 주목하는 식으로 독자/청자의 눈과 귀를 돌릴 때 자주 쓰인답니다.
물론 실제 의미상으로 중요한 것을 문법적인 주어로 끌어오는 수동태의 원래 기능과, 동작의 전모를 밝혀주는 사동태의 원래 기능도 있죠.
하지만 꼭 수동태라고 의미적으로 수동성을 띠고, 사동태라고 의미적으로 사동성을 띠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 때문에 언어마다 수동태와 사동태를 사용하는 빈도가 다르죠. 이유를 볼까요?
あく {열리다}
あける {열다}
be surprised {놀라다}
surprise {놀라게 하다}
한국어에서는, {열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기본형(으뜸꼴)이고, {열리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피동형입니다. 반대로, 일본어에서는 {열리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기본형이고, {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사동형이죠.
또, 한국어에서는 {놀라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기본형이고, {놀라게 하다}가 사동형인데, 영어에서는 {놀라게 하다}가 기본형이고, {놀라다}가 수동형이죠. 그러나 우리가 {놀라다}를 특별히 수동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영어를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는 것처럼, 문법과 의미는 따로 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the city was abandoned {도시는 버려졌다} 같은 문장에서는 수동태가 쓰였지만, 정작 이 문장은 도시가 버려졌다는 사실을 의미할 수도 있답니다. 이렇듯 하나의 문법적 형태에 여러 뜻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주세요!
지금까지 문장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문법 중 태를 다뤘는데요, 다른 하나는 무엇일 것 같나요? 바로 서법mood이랍니다!
서법은 영어 용어만 보면 문장의 무드, 즉 분위기를 다루는 문법일 것 같고, 실제로도 그럴 것 같지만, 사실은 라틴어 modus, 즉 영어 모드mode와 같은 어원을 가진 용어랍니다. 서법敍法이라는 말도 서敍술의 방법法이라는 뜻이니까요.
즉, 서법이란 문장의 모드, 곧 상태에 관한 문법을 일컫죠. 태와 무척 비슷한 의미죠? 하지만 서법의 실제 사례를 보면 차이점을 쉽게 알 수 있답니다!
한지 안 한지 모르겠네.
할지 안 할지 모르겠네.
옳은가, 그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옳을까, 그를까, 그것이 문제로다!
미식을 먹은 적이 없다면, 먹을 적에 얼마나 행복할까?
"-ㄴ"과 "-ㄹ"을 보면, 두 서법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ㄴ"과 "-ㄹ"이 시상으로 널리 쓰이기 때문에 시상과 의미를 헷갈리실 수 있지만, 시상이 아닌 의미만을 간추려내 볼까요?
공통적으로, "-ㄴ"은 과거 시상과 연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실제 있었던 일, 사실을 서술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ㄹ"은 미래 시상과 연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실제가 아닌 일, 상상을 서술하는 알 수 있죠.
사실實을 서敍술하니 서실법敍實法realis mood, 상想상을 서敍술하니 서상법敍想法irrealis mood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이 둘은 서법의 가장 큰 두 분류랍니다.
몇몇 언어에서는 서상법을 더 세세히 나누기도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유럽 언어를 배울 때 볼 수 있는 접속법과 명령법이 있죠. 이럴 때는 서실법이라는 용어 대신 직설법이라는 말을 사용한답니다. 한국어에서도 "해라!" 같은 명령법이 있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시상이든, 태든, 서법이든, 정해진 문법적 형태, 꼴이 없다고 해서 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랍니다! 그저 1대1로 대응하는, 정해진 꼴이 없다는 것이죠.
이번 장은 태와 서법을 만나보는 장이었으니, 저번처럼 다음 장에서는 이 둘을 더 파고들 거랍니다! 다음 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