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도 수동도 아닌 중간태요?

2막 17장 ― 형태론 中 태와 서법의 탐구

by CCCV 츠스쿠

저번 장에서 태와 서법에 대한 개념을 익혔으니, 이번 장에서는 태와 서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14장에서 본 수많은 시제와 상처럼, 태와 서법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죠. 그러니 바로 하나씩 알아볼까요?


저번 장에서 능동태, 수동태, 사동태를 다뤘었으니, 셋에 대한 복습을 먼저 해봅시다! 문장을 문법적으로 나눴을 때 서술어, 주어, 목적어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문장을 의미적으로 나누면 행동, 동작주, 피동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통은 동작주가 주어, 피동주가 목적어의 배역을 맡아 문장이라는 연극을 펼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때로는 조연이나 악역, 개그 캐릭터가 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처럼, 피동주가 주어의 자리를 맡을 수도 있답니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피동주를 강조하는 문장이 만들어지죠. 반대로 동작주는 비필수적인 자리로 밀려나고요. 아래의 문장을 볼까요?


나는 그를 사랑스럽게 보았다
그는 사랑스럽게 보였다


동작주인 "나"가 수동태가 쓰인 두 번째 문장에서는 아예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죠. 반대로 피동주인 "그"는 첫 번째 문장에서는 목적어였으나 두 번째 문장에서는 주어가 되었습니다. 또한, 결과를 보면 서술어의 자릿수(서술어가 필요로 하는 문장 성분)의 숫자가 하나 준 것을 알 수 있죠.


반대로 사동태는 의미를 확장해 새로운 주어를 데리고 오는 것으로 자릿수를 하나 늘린답니다. 아래의 예시를 볼까요?


아기가 잔다
곰이 아기를 재운다

나는 그를 사랑스럽게 보았다
너는 나에게 사랑스럽게 그를 보여줬다


첫 번째 예시를 보면 주어가 혼자서 행동을 하는 자동사가 있었으나, 능동태 동사에서 사동태 동사가 되며 새로운 주어가 생기고, 기존의 주어가 목적어가 되며 타동사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예시에서는 일부러 부사어를 두 목적어 사이에 놔서 두 문장 성분이 서로 다른 목적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능동태가 사동태가 되며 새 주어가 생기고, 기존의 주어는 목적어가 되고, 타동사는 이중 타동사가 된 것이 보이죠. 즉, 자릿수가 하나 늘었습니다.


그러면 능동, 수동, 사동이 아닌 다른 태도 볼까요?


가장 먼저 중동태입니다. 중간태라고도 하는데, 능동과 수동 사이 어중간한 태가 여기 속하죠. 말씀드렸듯, 태와 서법은 문장의 분위기와 관련된 문법입니다. 즉, 한 언어에서 수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다른 언어에는 중동으로 나타낼 수 있고, 한 언어에서 중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능동으로 나타낼 수 있죠.


문법은 어디까지나 뜻을 담는 형태이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중동태가 좋은 예시죠! 예시를 볼까요?


the storm shattered the tree
{폭풍} {찢었다} {나무}
{폭풍이 나무를 부쉈다}
>
the tree shattered
{나무} {찢었다}
{나무가 찢어졌다}

the tree was shattered
{나무} {찢어졌다}
{나무가 찢겼다}


첫 번째 문장은 능동태이고, 세 번째 문장은 영어의 일반적인 수동태 문장입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두 번째 문장처럼 표현할 수도 있죠. 비슷한 의미지만, 무언가가 다릅니다. 나무가 찢어진 원인, 즉 피동주에 대응하는 동작주가 명백하지 않죠. 이 차이는 동작주를 부사어로 추가한 아래의 문장에서 더 잘 보인답니다.


the tree shattered under the storm
{나무} {찢었다} {아래} {폭풍}
{폭풍이 불 때 나무가 찢어졌다}
the tree was shattered by the storm
{나무} {찢어졌다} {옆} {폭풍}
{폭풍에 나무가 찢겼다}


마찬가지로, 한국어에서도 "-이/히/리/기-"와 "-어지다"의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듯 언어에 따라 명확한 동작주가 없는 (또는 동작주를 드러내지 않는) 태를 두고 중동태라고 따로 분류하는 것이죠.


이런 중동성이 있는 상황으로는 동작주와 피동주가 같은 반사reflexive 상황, 동작주와 피동주가 서로 행동을 주고받는 상호reciprocal 상황, 행동이 스스로 일어난 반사동anticausative 상황이 있답니다.


하지만 한국어나 영어에서는 몇몇 상황에서 어중간하게 중동태가 등장하죠. 아예 확실한 중동태 꼴을 가진 언어로는 고대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벵골어, 타밀어, 스웨덴어 등이 있답니다.


물론, 중동태의 저 태들을 별도의 태로 가지는 언어도 있답니다. 반동태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스페인어가 있죠.


ella se acuerda de mi
{그가} {그를} {기억한다} {-에서} {나}
{그는 나를 기억한다}
el gato se ducha
{고양이} {그를} {샤워한다}
{고양이가 샤워한다}


아주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죠? 기억하다 같은 타동사도, 샤워하다 같은 자동사도, 스페인어에서는 반동태로만 쓰일 수 있어 형식적인 목적어가 있어야 한답니다.

상호 상황을 나타내는 상동태의 예시로는 튀르키예어가 있습니다.


öpmekteyiz
{(우리는) (누군가를) 키스한다}
öpüşmekteyiz
{(우리는) (서로를) 키스한다}


튀르키예어는 한국어처럼 접사를 더해 동사의 의미를 줄이죠. 저기 보이는 üş가 바로 여기서 서로 행동을 한다는 상동태를 나타내는 접사랍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인간의 언어는 만족하지 않죠. 세상에는 이것보다 더 다양한 태가 존재한답니다!

자릿수를 낮추는 태로는 기존의 주어가 아닌 목적어를 지우는 역수동태antipassive voice, 자동사를 0자릿수 동사로 만들어주는 비인칭 수동태impersonal passive voice가 있죠.


자릿수를 높이는 태로는 새로운 목적어를 추가시키는 적용태(적동태?)applicative voice가 있답니다.

자릿수 변경 없이 분위기만을 나타내는 태로는 황況동태circumstantial voice나 조助동태adjutative voice 같은 것이 있지만, 이미 너무 희귀해서 잘 보이지 않는 태들이네요.


다음은 서법입니다! 서법을 빠르게 복습해 볼까요? 서법이란 문장의 상태에 관한 문법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문장의 내용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의미하죠.


화자가 문장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서실법, 문장의 내용이 확실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면 서상법을 사용해 나타냅니다. 한국어에도 "-ㄴ"과 "-ㄹ"이 있죠. 아래 예시를 볼까요?

그 일을 한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 일을 할 적에는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있었던 "적"은 서실법 "-ㄴ"으로, 실제가 아닌 가정인 "적"은 서상법 "-ㄹ"로 나타낸 것을 볼 수 있죠? 그런데, 이렇게 문장의 태도를 나타내는 게 서법이라면, 서법은 엄청 많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는 문장으로 명령도 하고, 부탁도 하고, 질문도 하는걸요!


실제로 서법은 무척 다양하답니다! 상이 무척 다양한 것처럼요. 그러나 그 어떤 언어도 모든 서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답니다. 한국어로 순간상을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한국어가 순간상을 나타내는 정해진 문법 꼴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전자는 모든 언어가 가능한 것이지만, 후자는 "순간상"이라는 문법적 특징을 가진 언어만 할 수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한국어의 명령법은 청자가 있는 진짜 명령법도 되고, 청자가 없는 요구법도 되고, 허락을 하는 허락법도 되고, 경계를 하는 경계법도 됩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이 모두를 하나의 명령법이라는 범주로 간주하죠.


반대로, 청유법으로 완곡한 명령을 표현할 수도 있고, 의문문으로 반어법, 명령법, 청유법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문법과 그 안에 담기는 의미는 별개니까요.


그러면 이렇게 다양한 서법들을, 빠르게 알아볼까요?

서실realis법

~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

직설indicative법/평서declarative법
~이다: 사실의 전달

선언declarative법
~이다: (굳이 구분하여) 참인 사실의 전달

분노aggresive법
~아냐: 강력한 거부

활기energetic법
~라고: 강조

증거evidental법
~대: 직접/간접 증거가 존재함

지식gnomic법
~이다: 진실임

의외mirative법
~네: 기존의 정보가 아닌 새 정보임을 나타냄

서상irrealis법

~인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

의무deontic법

~야 한다: 의무

약속commissive법

~ㄹ 것 이다: 약속/위협

부채debitive법
~야 한다: 의무

의도deliberative법
~할까: 할지 말지 결정

역동dynamic법
~ 수 있다: 능력

지시directive법

~라: 명령/요청/필요

경계admonitive/apprehensive/vetitive법
~라: 경계
권장hortative법
~하자: 응원

서약cohortative법
~해야지: 화자 = 청자

촉구exhortative법
~하거라: 화자 ≠ 청자

명령imperative법
~라: 명령

억제injunctive법
~까: 의도/금지

요구jussive법
~라: 1/3인칭 청자

필수necessitative법
~야만 한다: 필수

허락permissive법
-려무나: 허락

요청precative법
~자: 요청

금지prohibitive법
~라: 금지

청유propositive법
~자: 제안

소원volitive법

~기를: 희망/소원/두려움

소망benedictive법
~소서: 정중/존경을 품어 소망/소원함

욕구desiderative법
~으면: 욕구

저주imprecative법
~라지: 저주

기원optative법
~으면: 소원/희망/기대

인식epistemicis법

~ㄹ 수도 있다: 가능성의 전달

진실alethic법
~이다: 진실/논리적 결론/불가능성

추정assume법
~ㄹ지도: 추정

추론deductive법
~ㄹ 것이다: 추론

의심dubitative법
~ㄹ지도: 의심

가정hypothetical법
~면: 가정

유추inferential법
~ㄹ 것이다: 유추(확인하지 않음)

의문interrogative법
~냐: 질문

잠재potential법
~ㄹ 것 같다: 높은 가능성

짐작speculative법
~수도: 짐작

접속subjunctive법
~면: 소원/감정/가능성/판단/의견/의무

수긍concessive법

~더라도: 반박을 위해 가정된 일

조건conditional법

~라면: 앞선 조건에 따르는 일

사건eventive법

~주면: 가능성이 높은 앞선 조건에 따르는 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로 겹치는 부분도 많고, '이게 서법이긴 한 거야?'라는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볼까요?

분명 먹었을 것이다
아마 먹었을 것이다
*분명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먹었을 수 있다
먹었을 수도 있다
먹었을 리 없다
*먹었을 리 있다
먹었을 리가 없다
먹었으면 좋겠다
먹었다면 나한테 맞을 것이다

말이 되는 것도 있고, *별표처럼 말이 안 되는 것도 있고, 의미가 겹치는 부분도 있고, 안 겹치는 부분도 있고, 다양하죠? 이렇듯 서법은 인간 언어의 의미를 어떻게든 나눠서 정리해 보고자 한 것이고, 아직 언어학은 젊기 때문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랍니다.


그러니, 실제로 언어를 만드실 때는 대충 중요해 보이는 것만, 아니면 아예 서실/서상의 양분만이 존재하는, 아니면 아예 모든 서법을 부사로 나타내는 언어를 만들어도 된답니다. 마침 언어 창작 얘기가 나왔으니, 다음 장에서 마저 다뤄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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