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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19장 ― 통사론 中 성과 수

by CCCV 츠스쿠

지금까지 여섯 장 동안 우리는 동사와 관련된 문법 기능들을 알아봤습니다. 동사는 기본적으로 서술어이니, 문장의 의미를 책임지는 역할도 동사가 맡죠.


문장이 과거의 일인지, 미래의 일인지, 이미 끝난 일인지, 아직 계속되고 있는 일인지, 움직임의 방향성이 정방향인지 역방향인지, 화자가 어떤 태도를 가지로 있는지, 이렇게 의미적으로는 중요하지만 문법적으로는 핵심적이지는 않은 정보들은 보통 부사가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의미들을 문법적으로도 핵심으로 만들어 체계화한 것을 시제, 상, 태, 서법이라고 하며, 이들은 동사가 모양을 바꾸어 나타내죠.


그러나 동사만이 문법 기능 때문에 모양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문법 기능으로 모양이 바뀌는 것에는 명사와 관형사도 있죠! 그러니 이번 장과 다음 장에서는 명사/관형사와 관련된 기능을 알아볼 거랍니다!


동사와 관련된 문법 기능은 의미를 문법화해서 문법만으로 의미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었죠. "-었-"은 완료되었다는 의미를, "-이/히/리/기-"는 수동의 의미를, "-ㄹ"은 추측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처럼요.


명사와 관련된 문법 기능도 마찬가지로 의미를 문법화한답니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 다룰 기능들은 문법으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의미가 문법을 강제하는 경우죠. 바로 성과 수입니다!


문법적 성gender, 영어가 아닌 서양 언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용어죠? "다리橋가 여성 명사인 독일어에서는 다리를 묘사할 때 '아름답다', '우아하다' 같은 표현을 많이 쓰고, 다리가 남성 명사인 스페인어에서는 다리를 묘사할 때 '강하다', '단단하다' 같은 표현을 많이 쓴다'는 연구로도 유명합니다.


물론, 이 연구의 결과는 신뢰도가 많이 떨어지고 아마 사실이 아닐 것으로 추정되지만,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문법적 성이라는 용어를 소개시켜줬죠. 그래서, 문법적 성이 뭔가요? 스페인어의 예시를 볼까요?

Pedro es pequeño
[페ㄷ로 에ㅅ 페케뇨]
{페드로는 작다}
María es pequeña
[마리아 에ㅅ 페케냐]
{마리아는 작다}

페드로는 남성입니다. 그래서 {작은}를 뜻하는 pequeño가 쓰였죠. 마리아는 여성입니다. 그래서 {작은}을 뜻하는 pequeño가 쓰인... 게 아니라, 여성형인 pequeña가 쓰였습니다. 관형사인 pequeño가 수식을 받는 명사의 성에 따라 형태를 바꾼 것이죠.


그런데, 문법적 성은 단순히 고유명사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것만이 아닙니다.

alto alumno
[알토 알룸노]
{키 큰 (남)학생}
alta alumna
[알타 알룸나]
{키 큰 (여)학생}

사람을 지칭하는 단순한 일반명사에도 성이 있어, 성에 따라 관형사의 모양이 바뀌죠. 그러나 문법적 성의 마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pueblo viejo
[푸에블로 비에호]
{마을} {오래된}
aldea vieja
[알데아 비에하]
{마을} {오래된}

pueblo와 aldea, 둘 다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둘의 성이 달라 관형사의 모양마저 다르죠. 도대체 왜 마을에 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렇듯, 문법적 성은 사람이나 동물을 일컫는 일반명사뿐만 아니라,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명사에 문법적인 성이 있다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 문법적 성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지 않았나요? 남성은 o로 끝나고, 여성은 a로 끝난다는 거요! 아, 이제 알겠네요! 문법적 성은 단어의 의미와는 근본적인 관련이 없고, 대신 단어의 형태와만 관련이 있는 거군요! 아니, 근데 왜 그럼 이런 형태를 두고 성性이라고 부르는 거죠?


잠시 눈을 돌려 스와힐리어를 봅시다. 스와힐리어에는 18가지의 명사 분류noun class가 있습니다. 사람, 식물/사물, 길쭉한 것들, 추상적인 것들, 동사에서 유래한 것들 등등으로 나누어 총 18가지로 나누죠.


즉, 의미가 각 명사의 분류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이런 분류에 따라 명사 자체의 형태뿐만 아니라 따라붙는 관형사와 동사의 형태도 달라지죠.

mwanaume mkubwa alianguka
[ㅁ와나우메 ㅁ쿠ㅂ와 알리앙구카]
{남자} {큰} {떨어지다}
kitabu kikubwa kilianguka
[키타부 키쿠ㅂ와 킬리앙구카]
{책} {큰} {떨어지다}

문법적 성은 명사 분류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본래 문법적 성은 의미에 바탕을 명사 분류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진답니다.


실제로도, 문법적 성에는 남성/여성의 구분만이 아닌, 남성/여성/중성의 구분이나, 남성과 여성이 합쳐진 통성/중성 구분이나, 중세 한국어까지 있던 유정/무정(산 것/죽은 것) 구분이나, 아예 분류가 복잡하게 꼬인 유정 남성/무정 남성/여성/중성의 구분 등이 있죠. 유정을 신과 사람으로만 한정짓는 언어도 있고요.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기존에는 유정/무정의 구분밖에 없었고, 이후 사람이나 동물에 관한 명사부터 남성/여성의 구분을 가지게 되었고, 점차 다른 명사로까지 확장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추측할 수 있는 가장 과거의 언어인 인도유럽조어가 후예 언어인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과 달리 유정/무정의 성 체계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 가설이 가장 그럴듯하죠.


물론,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사물마다 제각기 다른 남성/여성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고, 이것이 문법적 성으로 이어졌다는 애니미즘 가설도 재밌기는 하지만요, 어디까지나 재미일 뿐이고요.


스와힐리어처럼 열 가지가 넘는 성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가 명사마다 "그루", "포기", "자루", "마리"라는 단위를 쓰는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 명사를 사람이면 사람, 동물이면, 식물이면 식물, 사물이면 사물, 각각의 분류에 맞게 의미에 따라 집어넣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명사를 분류하는 체계에는 성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성과 맞물려 명사를 나누는 기준은 바로 문법적 수number이죠. 즉, 이 명사가 의미하는 것이 한 개인지, 두 개인지, 여러 개인지를 기준으로 명사의 형태를 바꾸고 종류를 나누는 것이랍니다.


영어에는 아직 문법적 수가 남아있기 때문에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죠!

one apple
{한} {사과}
two apples
{두} {사과}
three apples
{세} {사과}
the bear speaks
{곰} {말한다}
the bears speak
{곰} {말한다}

명사는 복수(여럿)인지 아닌지에 따라 뒤에 s가 붙고, 반대로 동사는 주어가 단수면 s를 붙이고 복수면 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의 "들"이나 중국어/일본어의 們/達 등이 복수형 접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들 언어에서는 수의 가장 중요한 성질이 없기 때문에 문법적 수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법적 수는, 문법적 성처럼 각 명사를 정해진 틀 안에 담고 그 틀에 따라 주위 단어들의 형태가 바뀌죠. 그러나 "들" 같은 것들은 단순히 부사 "여러"처럼 무언가가 여럿 있다는 것만을 나타내며, 심지어 생략해도 괜찮고, 오히려 생략을 안 하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죠.


문법적 성에 단순히 한 가지 체계만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문법적 수에도 여러 체계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단수/복수 체계이지만, 아래의 다른 수를 가지는 경우도 있죠.

쌍수(두 개)

삼수(세 개)

사수(네 개), 사수부터는 매우 드묾

기수(몇 개)

다기수(좀 더 많은 몇 개)

다복수(매우 많은 여러 개)

최다복수(가장 많은 여러 개)

부정수(정해지지 않음)

지금까지 창언창안을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이런 수를 모두 가지는 언어는 없습니다. 이 중에선 그나마 가장 흔한 것이 쌍수와 기수죠.


그런데, 문법적 수가 있는 영어는 이미 사과의 갯수를 말해줬는데도 뭣하러 뒤에 s를 붙여 이 명사는 여러 사물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걸까요? 위의 성과 같습니다. 각 명사를 분류하고, 그 명사가 주위 단어에 영향을 끼치게 만들어 정보를 여러 단어에 나누는 것이죠.


정보를 여러 단어에 나누게 된다면 첫째로 모호함을 줄일 수 있고, 둘째로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 오류를 정정할 수 있게 된답니다. 물론, 미학적 장점도 있답니다. 보통 명사에서 성/수를 나타내는 부분이 다른 단어의 성/수 접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소리가 반복해서 등장해 운율감을 주죠.


자, 그러면 성과 수를 어떻게 언어에 집어 넣을 수 있을까요? 사실, 역사적으로 왜 성/수가 이런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 밝혀진 것이 적기 때문에 그냥 원하는 형태를 마음대로 만드셔도 됩니다. 여담이지만,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유럽권 언어에서는 입을 벌린 채로 끝나는 단어들은 여성, 닫은 채로 끝나는 언어들은 남성인 경향성이 있답니다.


또, 문법적 수에는 한 가지 밝혀진 유래가 있답니다. {여러}나 {몇}, {다} 같은 단어가 탈색과 문법화를 겪어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또, 쌍수 같은 것들은 {둘} 같은 단어가 문법화한 것이고요.


또한, 문법적인 복수가 아니라, 복수(여럿)를 의미하는 방법 중 신기한 것을 찾자면, 일본어, 마인어 같은 언어에서 한 단어를 반복해 여럿을 의미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人人(ひとびと) [히토비토] {사람들}이나 burung burung [부룽부룽] {새들} 같은 경우죠. 단어가 너무 길다면, 단어의 앞이나 뒤의 일부분만 반복해도 된답니다. 몇몇 북미 원주민의 언어에서 보이는 언어죠.


이번 장에서는 명사를 분류하는 문법 기능인 과 수에 대해 알아봤으니, 다음 장에서는 동사의 시제/상/태/서법처럼 명사가 문법적 기능을 짊어지는 문법 기능에 알아볼 거랍니다! 다음 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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