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21장 ― 의미화용론 中 직시
철수: 좀만 왼쪽으로 가봐
영수: 이만큼?
철수: 아니, 내 왼쪽 말고 네 왼쪽!
자주 있는 상황이죠?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사과}, {개}, {고양이}와는 다르게 {왼쪽}과 {오른쪽}은 맥락을 기준으로 삼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직시deixis 표현이라고 하죠. 직시라는 용어는 곧게直 보여준다示는 뜻으로, deixis도 고대 그리스어 δεῖξις {가리킴}에서 유래했답니다.
이런 직시 표현은 위치, 시간, 사람 등을 나타낼 때 아주 유용하죠. 만약 "이"라는 말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얘", "여기", "이렇게"라는 표현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죠. 엄청 불편하겠죠?
그런만큼 직시 표현이 없는 언어는 없답니다. 이렇게 중요한 개념이니, 형태통사론에서 의미화용론으로 넘어가는 아주 좋은 주제죠!
그러면 일단 개념을 확실히 정리하고 가볼까요? 직시는 맥락을 기준으로 대상을 지시하기 위해 단어나 구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좀만 왼쪽으로 가봐"는 직시가 쓰인 예시고, "왼쪽"은 직시 표현인 것이죠.
직시의 기준이 되는 지점을 직시심deictic center라고 합니다. 직시심은 보통은 화자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당장 위의 예시도 직시심을 화자로 두지 않고 청자로 두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죠. 또한, "지나가던 선비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갔다"는 예에서는 화자도, 청자도 아닌 사람을 직시심으로 둔 예겠네요.
그러면 직시의 종류를 하나씩 살펴보며 차근차근 직시를 알아가 볼까요?
먼저 공간과 관련된 직시입니다. 공간과 관련된 직시는 가장 기본적인 직시기도 하죠. 공간적 직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방향성이 없는 직시와 방향성이 있는 직시입니다.
{이} {그} {저}는 방향성 없이, 어느 한 지점을 콕 집어 말하죠. 이해가 잘 안 가신다면, {여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세요. 직시심(나)를 기준으로 원형 영역이 {여기}죠? 또, {저기}는 이 영역을 벗어난 영역이고요. 물론, "그쪽"처럼 방향성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이} {그} {저} 자체에 방향성이 있진 않죠.
물론, 모든 언어가 {이} {그} {저}의 3분할을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중국어, 그리고 유럽권 언어들은 {이}와 {저}의 구분을 하죠. 3분할보다 많은 분할을 하는 언어도 있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청자, 화자, 그리고 가시성이랍니다.
한국어의 {이} {그} {저}의 정확한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 화자와 가까움
그: 화자와 멂, 청자와 가까움
저: 화자와 멂, 청자와 멂
그래서 "그거 가져다줘"와 "저거 가져다줘"의 어감이 다르답니다. 후자가 훨씬 짜증 나죠. 그러나 청자와의 거리는 신경 쓰지 않고 화자와의 거리만을 신경쓴다면, 앞에서 본 2분할 언어가 된답니다. 물론, 이론상 화자와 가까울 때 청자와의 거리에 따라 더 나눠 4분할 언어가 될 수도 있죠.
그러나 몇몇 언어에서는 가시성의 개념이 등장한답니다. 즉, 여기서 보이냐 안 보이냐의 차이죠. 이렇게 되면 이론상 총 8분할까지 가능해지겠죠? 당연히 화자 및 청자와 먼 상태에서의 가시성만 따질 수도 있고요.
이렇듯 방향성이 없는 공간 직시는 모든 언어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직시입니다. 방향성이 있는 공간 직시는 없는 언어가 있다는 점에서 다르죠.
방향성이 있는 공간 직시는 말 그대로 방향성이 있는 직시랍니다. 전후/좌우/상하 같은 것들이죠. 여담이지만 동서남북의 개념만이 있고 전후좌우의 개념이 없는 언어가 있어 한때 유명하기도 했답니다.
안오다/가다 같은 것들도 직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화자 기준이 아니라 청자 기준의 오다/가다가 있는 언어도 있지만요.
공간과 관련된 직시가 있으면 시간과 관련된 직시도 있겠죠? {곧}이나 {어제} 같은 단어들도 있고, 시상 같은 문법 기능들도 있답니다. 시간과 관련된 직시도 공간과 관련된 직시처럼 직시심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이 발전하며 문자와 녹음기가 발명되자 두 종류의 시점이 생겼죠.
오늘은 내 생일이지만, 네가 이 선물을 받을 때는 네 생일이겠지
즉, 대화와는 다르게 화자가 발화를 하는 시점과, 청자가 인식을 하는 시점의 차이가 생기면서 두 종류의 시점이 생긴 것입니다. 둘 다 직시심으로 기능할 수 있죠.
시간과 관련된 직시의 또 다른 특징은 공간 직시에서 유래한 표현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때, 그때, 저때
이번 주, 저번 주
앞선 일을 바탕으로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뒷일을 생각해서
전년도 보고서
후일 생각해 보자
한국어나 영어처럼 앞/뒤를 사용하는 언어도 있지만, 중국어처럼 위/아래를 사용하는 언어도 있고, 오른쪽/왼쪽을 사용하는 언어도 있죠.
물론, 한국어의 예시에서 보이는 것처럼 꼭 한 공간적 방향이 한 시간적 방향에만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앞}이 어느 때는 미래고 어느 때는 과거라니, 한국어는 이런 쪽에서 일관성이 있지는 않은가 봅니다.
이런 비유는 드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의 방향성을 공간 표현에 비유하지 않은 언어가 없을 정도죠. 물론, {어제}나 {모레}처럼 특정한 시간상의 지점을 별개의 단어로 표현하긴 하지만, 과거(지날 과過 갈 거去, 지나간)나 미래(아직 미未, 올 래來, 아직 안 온) 같은 단어에서 보이듯이 방향성은 공간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공간과 시간 다음은 뭘까요? 바로 인칭입니다. 1인칭, 2인칭, 3인칭 같은 것들이죠. 대명사에 따라붙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1인칭은 화자를, 2인칭은 청자를, 3인칭은 화자도 청자도 아닌 것을 부르는 말이죠.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이외로 관련된 개념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답니다. 먼저, 제괄성clusivity이죠. 제괄성을 보기 위해서는 복수 인칭을 봐야 한답니다.
1인칭 복수는 화자를 포함한 집단을, 2인칭 복수는 청자를 포함한 집단을 말하죠? 그런데 1인칭 복수에 청자가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둘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일은 저희의 잘못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해낸 거예요
위는 청자가 제외된 제외exclusive형, 아래는 청자가 포함, 즉 포괄된 포괄inclusive형이랍니다. 한국어에서는 존댓말에서만 둘의 차이를 두지만, 정해진 제외형 대명사와 포괄형 대명사가 있는 언어도 있죠.
이론적으로는 2인칭 복수에서도 제괄성을 나눌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아직 확답이 나오지는 않았답니다. 실험해볼 거리네요!
1인칭에 제괄성이 있다면 3인칭에는 배제성obviative이 있답니다! 4인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기능인데, 설명보다는 직접 예시를 보시는 게 가장 편하죠!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다
여기서 첫 번째 "그"와 두 번째 "그"는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많은 언어가 이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두지만, 몇몇 언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한답니다.
그는 가의 엄마를 만났다 (다른 대명사)
그는 그위 엄마를 만났다 (명사에 다른 접사)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았다 (동사에 다른 접사)
이런 표현으로 두 3인칭을 "가까운" 3인칭과 "먼" 3인칭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한 대상을 "배제"해서 둘을 구분하는 것이죠. 이렇게 배제된 3인칭은 배제형이 되고, 반대로 남아있는 3인칭은 근접형proximate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성/수/격이랍니다. 대명사도 명사니, 문법에 성/수/격이 있다면 대명사도 성/수/격이 있겠죠? 스페인어 3인칭 예시를 볼까요?
남성 | 여성 | 남성 복수 | 여성 복수
él | ella | ellos | ellas
성과 수 사이의 관계도 재밌는데요, 독일어처럼 복수일 때는 성을 구분하지 않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스페인어처럼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복수만 여성 복수고, 남성이나 혼성으로 된 복수는 남성 복수로 집어 넣는 언어도 있습니다. 영어처럼 다른 부분에서는 성이 사라져도 대명사에서만큼은 남아있는 경우도 있죠.
또, 성과 수처럼 인칭도 동사의 형태를 바꾸는 경우가 있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어지만, 성과 수가 있는 다른 언어에도 흔하죠.
마지막으로 언어에 따라 대명사를 기피하는 언어가 있다는 점도 대명사의 재밌는 점 중 하나랍니다. 한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같이 존비어가 극도로 발달한 언어에서 잘 보이는 현상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친구/부부 사이 같은 몇 안 되는 상황을 빼고 2인칭 대명사가 쓰이는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정말 보기 드물죠? 보통은 이름이나 "선생님" 같이 3인칭 대명사로 문법화를 겪고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 청자를 호칭하죠.
2인칭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언어의 화자가 이런 언어를 배울 때 굉장히 혼란스러워 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특이한 사례거든요.
마침 존비어 얘기가 나왔으니, 다음으로 사회적 직시를 봅시다. 사회적 직시는 말 그대로 사회관계에 관한 정보를 의미한답니다. 한국어로 치면 존비어를 말하죠. "-요"를 비롯한 각종 접사, "드시다" 같은 전용 단어의 사용, 돌려 말하기 등 전체적인 문장의 분위기를 말한답니다.
존대에는 크게 두 체계가 있습니다. 유럽권의 친소어 체계와 동아시아권의 존비어 체계죠. 용어를 분해해 보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답니다!
친소親疏어는 친할 때와 소원할 때 쓰는 단어를 다르게 하는 경우랍니다. 한 쪽이 친어를 쓰면 다른 쪽도 친어를 쓰고, 한 쪽이 소어를 쓰면 다른 쪽도 소어를 쓰는 식으로 대칭적인 구조가 특징이랍니다.
존비尊卑어는 존대할 때와 비하할 때 쓰는 단어를 다르게 하는 경우죠. 한 쪽은 존대하지만 다른 쪽은 하대하는 식으로 비대칭적인 구조가 흔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친소어인 언어라고 존비가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어투, 돌려 말하기, 몇 가지 문법 기능의 활용으로 존대와 하대를 표현하죠. 그러나 존비어처럼 잘 짜인, 전문화된 문법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stop smoking
담배 피지 마
could you please stop smoking sir?
선생님, 담배를 피우지 말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could {할 수 있었다}, please {제발}, sir (존대 2인칭) 같은 다양한 표현을 사용해 존대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will이나 can 같은 동사들을 과거형인 would나 could으로 바꾸면 존대 표현이 되는 것이 특이한 점이죠. 사실, 과거형으로 바꾸면서 애매모호함을 더하는 기능이, 겸손함의 기능으로 이어지며 이런 쪽으로도 쓰이는 것이지만요.
마지막으로 직시 표현의 쓰임에 대해 알아봅시다. 직시 표현은 동작적 직시로도, 상징적 직시로도, 조응적 직시로도, 아예 직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예시로 알아보죠.
this person is the problem
{이 사람이 문제야}
this neighbourhood is the problem
{이 동네가 문제야}
my tragic backstory, this is the problem
{내 비극적인 과거, 이게 문제야}
one day I met this guy during my shift
{언제 한 번 일하다가 만난 녀석이 있는데}
여기서 this는 직시 표현의 대표적 예시로 쓰였습니다. 첫 번째 예문에서는 "이 사람"이 누군지 알기 위해서 화자의 말투든, 눈짓이든, 손짓이든, 다른 동작을 봐야 하죠? 그래서 이런 직시를 동작적gestural 직시라고 한답니다.
두 번째 예문에서는 단순히 화자의 위치만 알아도 "이 도시"가 어딘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기본적인 시공간적 상황 정보만 있으면 지시 대상을 알 수 있는 직시를 상징적symbolic 직시라고 하죠.
세 번째 예문에서 "이게"는 앞의 "비극적 과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문장 안에서 앞이나 뒤에서 나온 대상을 가리키는 직시를 조응적anaphoric 직시라고 하죠. 조응anaphoria을 직시로 안 보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러면 마찬가지로 조응적 직시도 조응이지, 직시로는 안 본답니다.
네 번째 예문은 확실하게 직시가 아닌non-deictic 경우입니다. 이 this는 단순히 문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영어 문법을 아신다면, 부정관사 a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맥락을 바탕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직시가 아니죠.
벌써 너무 길어졌네요. 다음 장에서부터는 의미화용론을 계속 이어 알아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