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22장 ― 형태·의미론
세계 모든 언어에는 {알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있죠. 하지만 {모르다}라는 뜻을 한국어처럼 하나의 단어로 나타내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답니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알고 계신다면,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 언어로 {모르다}는 보통 {알지 못하다}, {안 알다} 정도로 나타내지 않나요?
이렇듯, 다른 언어로는 두 단어로 나타낼 것을 한국어로는 한 단어로 나타낸답니다. 반대로, 한국어나 영어에서는 {알다}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퉁치는 것을, 다른 언어에서는 여러 개로 쪼개기도 하죠.
가장 친근한 예시는 한문의 알 지知와 알 식識이겠네요. 知는 단순히 알다, 識은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깊이 알고 있다는 뜻이죠. 어떠한 개념을 알고知 있으면 선지형 질문이나 단답형 질문에 답할 수 있지만, 어떠한 개념을 알고識 있으면 서술형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는 차이입니다.
그래서인지, 인지認知는 단순히 인정해서 안다는 뜻이지만, 인식認識은 분별하고 판단하여 안다는 뜻인 것이죠. 식별이라는 말은 쓰지만, *"지별"이라는 말은 안 씁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미지의 땅이지, 미식의 땅이 아닙니다. 무지한 사람은 단순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 알려주면 되지만, 무식한 사람은 단순히 알려주는 것으로는 유식하게 될 수 없습니다.
일본어에서도 {알다}의 구별을 합니다. 시루知る는 단순한 경험, 와카루分かる는 완전한 이해를 뜻합니다. 한국어를 알면知る 한국어의 존재를 안다는 것이지만, 한국어를 알면分かる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뜻이죠.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알면知る 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는 것이지만, 그 사람을 알면分かる 그 사람의 성격, 습관, 취향 등을 안다는 뜻입니다.
유럽권 언어의 {알다}도 유명하죠. 라틴어의 후예 언어들도 일본어와 유사한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표로 빠르게 정리해 볼까요?
일본어: 知る [시루] | 分かる [와카루]
포르투갈어: saber [사베르] | conhecer [쿠니세르]
스페인어: saber [사베르] | conocer [코노세르]
프랑스어: savoir [사부아ㅎ] | connaître [코네ㅌㅎ]
이탈리아어: sapere [사페레] | conoscere [코노슈셰레]
루마니아어: ști [슈티] | cunoaşte [코노아슈테]
보시면, 루마니아어를 제외한 언어들은 라틴어 사피오sapiō에서 전자가, 다섯 언어 모두 라틴어 콩노스코cognōscō에서 후자가 유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어만 라틴어 스키오sciō, {알다}에서 유래한 슈티ști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네요.
아니, 잠깐, 뭐라고요? 그럼 sapiō는 무슨 뜻이었는데요? 라틴어에서는 {알다}를 셋으로 구분했던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랍니다. 대신, sapiō는 원래 {맛보다}, {맛나다}의 뜻이었답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도 {맛보다}를 {경험하다}의 의미로도 쓰는 경우가 있죠? "맛 좀 봐라!"라거나 "맛본 소감이 어때?"처럼요. 라틴어에서는 {맛보다}에서 {맛을 잘 알다}, {감각 있다}, {눈치 있다}, {지혜롭다} 등의 경로를 거쳐 현재의 {알다}의 의미가 되었죠.
사실, 한자(나눌 분分)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어의 와카루分かる도 처음부터 {알다}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고대의 기본형 와쿠分く {나누다}의 수동형에서 유래한 {나눠지다}라는 뜻이었죠. 여기에서 나아가 "딱 떨어지네!" 같은 감각으로 {알다}의 뜻으로 이어진 거랍니다.
마침 단어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간 김에, 한국어 "모르다"의 어원도 봅시다. 분명 다른 언어와는 다르게 옛날부터 "못 알다"와 완전히 다른 형태였겠죠? 사실, 정확히 이 형태랍니다.
아마도 "못 알다"의 옛 형태 *[모다ᆞ갈(ㄷㆍㄹ) 알다] > *[모다ᆞ갈(ㄷㆍㄹ)다] > *[모다ᆞ(ㄷㆍ)다] > [모라ᆞ(ㄹㆍ)다]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추정되죠. 용비어천가에서 처음으로 "모라ᆞ(ㄹㆍ)다"가 발견되었고, 이후 현대의 "모르다"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을 질질 늘여 소개 드리고자 했던 것은, 언어는 단순히 1대1로 대응되는 단어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갑, 을, 병이라는 세 개념이 있다면, 각각을 서로 다른 세 단어로 지칭하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갑과 을/병으로 두 단어로 지칭하는 언어, 갑/을/병을 모두 하나로 지칭하는 언어가 모두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이런 단어가 비유와 풍화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뒷부분을 통해 소개드린 것이랍니다. 예를 들어, 현대 한국어의 "어리다"는 원래 {어리석다}라는 뜻이었고, "사납다"는 원래 {모자라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니하다"가 풍화를 거쳐 "않다"가 된 것은 풍화의 예시죠.
그러면 각 사례의 예시를 찾아볼까요? 먼저 뜻이 1대1로 통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굵다}/{두껍다}와 {가늘다}/{얇다}겠죠? 요즘 들어 더더욱 둘의 차이가 없어졌으니 다시금 둘의 차이를 비교해 봅시다.
{굵다}와 {가늘다}는 직경, 즉 원통형 물체의 굵고 가늠을, {두껍다}와 {얇다}는 깊이, 즉 앞뒤가 있는 물체의 두껍고 얇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가늘고 두꺼운 물체도, 얇고 굵은 물체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전자는 가늘다고만, 후자는 얇다고만 해서 그렇죠.
그러나 영어에서는 이런 차이 없이 굵은 것과 두꺼운 것은 thick [시ㅋ], 가는 것과 얇은 것은 thin [신]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굵다}에는 한 가지 뜻이 더 있으니, 바로 "모래알이 굵다"처럼 구형 물체의 크기를 잴 때에도 사용한답니다. 그러나 영어에선 이런 뜻으로 coarse [코스]를 쓰죠.
정작 한국어에서 "모래알이 굵다"에 대응되는 말은 *"모래알이 가늘다"가 아닌 "모래알이 곱다"입니다. 영어에서도 fine [파인]입니다. 위에서 갑, 을, 병을 가지고 든 예시보다 훨씬 복잡하죠?
한편, {소리가 크다}가 영어에서는 loud [라우ㄷ]라는 하나의 단어지만, 한국어나 스페인어에서는 "크다", fuerte [푸에ㄹ테] {강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답니다. 언어에 따라 사물의 크고 작음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죠.
또, 한국의 {말하다}가 영어에서는 굉장히 복잡하게 나눠진 것도 좋은 예시입니다. talk [토ㅋ]는 {가볍게, 청자의 유무와 상관없이 말하다}라는 뜻의 자동사, speak [ㅅ피ㅋ]는 {소리를 내어 말하다}라는 뜻의 자/타동사, say [세이]는 {조심히, 정보를 전달하며 말하다}라는 뜻의 정보를 목적어로 삼는 타동사, tell [텔]은 {조심히, 직접적으로 정보를 담아 말하다}라는 뜻의 이중타동사이죠.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뜻이 표처럼 깔끔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뜻은 색 영역처럼, 각종 색깔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화면과 같죠. 혹시 LLM의 대략적 구조를 알고 계신가요? 괜히 자연어 처리를 위하여 토큰의 "의미"를 임베딩 공간에 있는 12288차원 정도의 초고차원 벡터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의미를 한 단어 안에 담는다는 것은, 드넓은 우주에서 어느 한 지점을 정해 일정 부분을 도려내는 것과 같답니다. 인간의 뇌는 인간의 뇌니, 모든 언어는 이런 영역들이 서로 대부분 겹치지만, 엄밀한 정의, 미묘한 어감, 사회와 문화를 따지면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고, 이런 요소들을 활용하는 문학의 번역이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것입니다. 물론, 이런 "대부분"에서 벗어난, 눈에 잘 띄는 사례들이 의미론의 성격을 드러내는 예시로 쓰이는 것이죠.
언어에 따른 뜻 분할의 차이는 반대로 비유의 차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자기 전에는 전등의 "불"을 "끄"죠? 그러나 영어에서는 "빛"을 "떨어지게 돌리"고, 중국어에서는 등을 "닫"습니다. 반대로 저녁이 되면 "불"을 "키"고, "빛"을 "붙게 돌리"고, 등을 "엽"니다.
전등을 비롯한 전기기구의 발명은 수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전 세계 언어에 들여왔습니다. 뚝딱뚝딱하고 금세 만들 수 있는 명사와는 달리, 동사는 굉장히 보수적이라 쉽게 안 변하죠. 쉽게 말해,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30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긴도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기기구를 작동시키다}라는 새로운 의미의 동사가 필요하더라도, 보통은 기존의 동사를 비유로 재사용하거나 전문 용어를 위해 명사를 동사로 만들죠.
그래서 한국어는 전기기구를 {불}에 비유해 켜고 끈다고, 영어는 전기기구의 스위치를 보고 전선이 서로 붙게, 떨어지게 돌린다고, 중국어는 옛날 {등}에 비유해 이를 닫고 연다고 했던 것이죠.
사진이나 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어는 사진을 찍는다고 했고, 영어는 사진을 가진다고 했고, 중국어는 사진을 비춘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두고 한국어는 전화를 건다고 했고, 영어는 전화를 만든다고 했고, 중국어는 전화를 친다고 했죠.
꼭 기술적 발전이 아니어도 됩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한중일은 {돈}을 {금}에 비유할 것이고, 저貯금을 돈을 쌓아貯 두는 것이라고 하겠죠. 투자投資는 자資산을 던진投다고 표현할 거고요. 영어로 저축을 뜻하는 save는 {지키다}라는 뜻이었지만, {지키기 위해 한 편에 두다}로 이어졌고요.
오히려 이런 비유가 시간이 지나며 아예 원뜻과 떨어지게 되기도 하는데요, {되감다}, {되돌리다} 같은 것이 좋은 예시죠. 원래는 카세트테이프를 다시 감아 영상을 앞으로 "돌린" 데에서 유래했지만, 더 이상 카세트테이프를 쓰지 않는 현대에도 여전히 되감다라는 표현이 쓰입니다.
단어를 만드는 법을 다루는 장이니, 마지막으로 실제로 단어를 쉽게 만드는 법을 알아봅시다. 뜻 말고, 소리를요. 갑자기 아무 소리나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1막 7장에서 다룬 법 말고, 다른 연상법을 생각해 봅시다.
음절/음소의 순서 바꾸기/뒤집기
(예시: "칼"을 가져올 때, "라ㅋ"로 가져오기)
목적 의미에 닿을 수 있는 다른 단어 가져오기
(예시: {까맣다}를 위해 {하늘}이나 {밤}, {숯}을 가져오기)
음소 배열 규칙에 맞게 욱여넣기
(예시: "라ㅋ"가 불가능하다면, "라키"로 가져오기)
이 세 가지 방법을 익혀 두시면 아무 사전이나 펴서 손쉽게 단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언어에서 단어를 가지고 온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신다면, 길을 가다가 얼핏 본 간판, 번호판, 표지판이나, 글을 쓰다가 생기는 오타에서 순간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답니다. 아니면 말을 하다가 말이 이상하게 나오는 것을 써도 되고요.
장난을 섞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이나, 애완동물이나, 좋아하는 캐릭터나, 연예인 등의 이름을 단어로 써도 되고, 장난기 섞인 단어를 만들 수도 있겠죠. [바나나]가 노란색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아니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언어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별을 좋아하는 문명이 있다면, 별을 중심으로 하는 어휘를 가질 수 있게 처음부터 별을 중요한 어근으로 쓸 계획을 하는 것이 좋죠.
이 경우 온갖 사물을 별에 비유하는 것으로 손쉽게 단어를 불려 나갈 수 있답니다. {태양}은 {큰 별}, {달}은 {그 별}, {불}은 {땅의 별}, {보석}은 {별의 돌},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별을 먹다}, {불가능한 것을 해냈다}는 {별을 잡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별을 보다}로요.
또, 별을 세분화한 수많은 단어를 만들어내도 된답니다. 별은 [람], 밝은 별은 [타우ㅂ], 희미한 별은 [하가ㄹ], 푸른 별은 [신ㄷ], 붉은 별은 [자미], 움직이는 별은 [네이ㅌㄹ] 같이 말이죠. 중요한 점은 각각이 완전히 다른 유래와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하다고요? 말을 기르는 사람들은 말을, 북극에 사는 사람들은 눈을, 새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새를 종류에 따라 적게는 몇 가지에서 많게는 열몇 가지나 되는 단어로 세세히 분류한답니다. 각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만큼 세밀한 정의와 분류를 받을 수 있죠. 중요하니까요!
그러면 의미론을 다루며 단어를 만드는 형태론도 다룬 이번 장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장에서는 화용론으로 만나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