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23장 ― 화용론
지금까지 배워온 언어학의 각 분야를 모두 모아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을 완성해 볼까요? 먼저, 머릿속에서 현재 상황에 맞는 전체적인, 두루뭉술한 의미를 떠올립니다. 이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작은 의미들이 모입니다. 이 작은 의미들을 다루는 것이 의미론이죠.
이제, 그 작은 의미들을 규칙에 따라 나열합니다. 통사론입니다. 나열된 의미들은 모양을 부여받아 실제 단어가 됩니다. 형태론입니다. 모양은 추상적인 소리가 되어 성대와 입으로 전달됩니다. 음운론입니다. 그렇게 전달된 추상적 소리는 물리적 한계에 따라 음성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옵니다. 음성학입니다.
그렇게 나온 음성을 들을 때에도 똑같은 과정을 거꾸로 거칩니다. 귀가 음성을 듣습니다. 음성학입니다. 들은 음성을 추상적인 말소리에 끼워맞춥니다. 음운론입니다. 말소리가 모여 말의 모양을 드러냅니다. 형태론입니다. 드러난 모양을 의미 나열 규칙에 따라 분리합니다. 통사론입니다.
그렇게 분리된 의미는 하나하나 우리 머릿속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의미론입니다. 이제, 이 모든 개념과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뇌가 인식할 수 있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됩니다.
언어의 시작과 끝, 말로써 전달된 것과 다른 모든 것을 합쳐 인간의 뇌가 인식하는 것을 다루는 학문, 바로 화용론입니다. 화용론話用論이라는 단어를 풀어쓰자면 말話을 쓰는用 법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물리적 음성을 다루는 음성학, 정신적 음운을 다루는 음운론, 말의 형태를 다루는 형태론, 말을 늘어놓는 규칙을 다루는 통사론, 말의 의미를 다루는 의미론과는 다르게 "말을 쓰는 법"이라는, 언어의 최종 목표를 다루는 배포가 남다른 학문이죠.
물론, 실제로는 화용론이 다루는 범위는 이보다 작습니다. 말을 쓰는 법 중, 말을 쓰지 않고 말을 쓰는 법을 다루기 때문이죠. 무슨 말이냐고요? 왜냐면 화용론이 다루는 개념들은 맥락, 암시, 전제, 비언어적 표현 등 단순히 말을 넘어선 개념들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행간을 읽어라", "말 안에 숨은 뜻을 알아채라" 같은 표현들을 하죠? 딱 이런 것들을 다루는 학문이랍니다. 우리가 21장에서 만났던 직시 또한 화용론의 개념이죠. 직시는 화자의 현재 상황 같은 맥락이 있어야만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화용론은 원래 언어철학에서 유래한 만큼, 의미가 어디에 있느니, 기의와 기표의 의미관계니, 의미참조니 지표참조니 하는 개념들을 다룹니다. 하지만 이런 면모들은 언어를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은 되지 않죠. 또,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를 넘어 지나치게 근본적인 부분들을 파고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관용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아무 의미 없는 말,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이 어떻게 사람들이 쌓은 맥락을 통해 전제된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해 다루는 것이죠.
안녕하세요! {안녕}은 원래 편안할 안安에 편안할 녕寧으로, 무탈히 편안함이라는 말입니다. "사회의 안녕" 같은 말로 쓰이죠. 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식사 드세요"라는 말처럼, 존대로 명령하는 말입니다. {무탈히 편안해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안녕"이라는 인사말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답니다. "일신의 안녕"이라는 말처럼, 원래 굉장히 격식 있는 표현이었기 때문이죠. 대신, 예로부터 한국어의 인사말은 "밥 먹었어?"였답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죠.
우스갯소리로 인사를 할 때는 그 지역에서 항상 부족한 것을 묻는다고들 합니다. 중동에서는 평화가 있냐 묻고, 우리나라에서는 "밥 먹었어?"라고 인사하는 걸 예시로 들며 하는 소리지만, 약간의 진실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는 어떨까요? 먼저, 인사말을 크게 둘로 나눠 봅시다. 만날 때하는 인사와 떠날 때 하는 인사로요! 만날 때의 인사말을 보면, 대개 {좋은} + {시간}의 구조로 이뤄져 있는 것이 언어를 가리지 않고 자주 보입니다.
특히 유럽권의 언어가 그런 편인데, 대부분의 인사말이 아침에는 {좋은 아침/하루}, 점심에는 {좋은 오후}, 저녁에는 {좋은 밤}이라는 구조로 이뤄져 있죠. 그러나 모든 인사말이 이렇게 딱 나눠져 있진 않답니다. "안녕"처럼요.
이런 인사말의 예시에는 영어의 Hello, 독일어의 Hallo, 스페인어의 Hola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아마 {부르다}의 뜻을 가지는 단어를 어원으로 하지 않을까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이한 인사말로, 이탈리아어의 "챠오"가 있습니다. {당신의 종}이라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만날 때나 떠날 때에 하는 인사말이 되었죠.
반대로 "안녕"과 비슷한 인사말도 있답니다! 라틴어의 "살웨!"는 {건강하라/잘 지내라}의 뜻을 가지고 있죠. 아랍어의 سلام [살람]도 마찬가지로 {평화}라는 뜻입니다.
동양의 인사말은 어떨까요? 중국어의 "니하오!"는 너 니你 + 좋을 호好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일본어의 こんにちは [꼰니찌와]는 직역하면 {오늘은}이라는 뜻으로, "오늘은 ○○하네요."라는 문장에서 똑떨어져 나와 상용구가 된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 쓰이는 부분이 떨어져 나와 그 자체로 많이 쓰이는 사례는 자주 보입니다. 직역하기 힘든 대부분의 인사말이 이렇게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특히 일본어에 이런 인사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시 보기 힘들 때 하는 인사인 さようなら [사요나라] 또한 {그렇다면}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じゃ [쟈] 또한 {그럼}이라는 뜻으로, 헤어질 때 쓰는 말이죠. 한국어의 "이만"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마침 말이 나왔으니, 많은 언어가 작별 인사를 또 둘로 나눈답니다. 하나는 매일 보는 사람에게 또 보자는 느낌의 작별 인사, 다른 하나는 다시 보기 힘든 사람에게 하는 작별 인사죠.
좋은 예시는 프랑스어의 au revoir [오 허부와] {다시 볼 때까지}와 adieu [아되] ({신에게} 그대를 맡긴다의 축약)의 구분, 영어의 goodbye [구ㄷ 바이] (god be with ye {신께서 그대와 함께 하시길}이 탈색)와 farewell [페어웰] {여정 잘해라}의 구분이 있습니다. 모두 전자가 가벼운 작별, 후자가 무거운 작별이죠.
축약이나 풍화가 없더라도 문법이 특이하면 직역했을 때에도 특이한 인사가 되곤 한답니다. 스페인어의 nos vemos [노ㅅ 베모ㅅ]는 {우리는 우리를 본다}라는 뜻이지만, 스페인어에서는 확실한 미래라면 현재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역하면 {우리는 우리를 볼 것이다}, 즉 {있다가 보자}라는 작별 인사가 되는 것이죠.
감사합니다! 많은 언어에서 {감사합니다}는 단순히 {(너에게) 감사하다}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든 언어가 그런 것은 아니랍니다.
이런 쪽으로는 포르투갈어의 obrigado [오브리가두] {갚아야 하는}, 프랑스어의 merci {자비}, 일본어의 ありがとう [아리가또] {있기 어려운} -> {귀한} -> {반가운} -> {감사한} 같은 예시가 유명하죠.
그러나 감사에 대답하는 언어마다 크게 다르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 공통점이 있죠. 바로 {아뇨}, {뭘요}, {별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천만에요}, {당연한 걸요}, {제 영광입니다}, {제 기쁨입니다} 같이 자신의 행동이나 자신을 낮추는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엄마야! 이런 감탄사는 단순히 한국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주 유명한 이탈리아어의 감탄사, mamma mia [맘마미아] {내 엄마}도 있죠. 물론, 감탄사로 불리는 대상이 엄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도 있고, 신도 있고, 신의 엄마도 있죠.
"깜짝이야"처럼 {(나는) 놀랐다}가 감탄사일 수도 있고, "어이쿠야"처럼 의성의태어(소리/동작을 나타내는 단어)가 감탄사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나"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나, 영어의 how on Earth,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처럼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투의 감탄사도 있습니다. "세상에 마상에"나 yoo-hoo [유 후]처럼 각운을 맞추는 경우도 많죠.
욕설도 감탄사의 일종입니다만, 여기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깊고 심오한 주제다 보니 여기를, 그외에 감탄사 전반에 대한 내용은 여기서 더 다루고 있습니다!
숙어는 속담과 더불어 관용구의 대표적 예시죠! 숙어와 속담은 "새 발의 피" 같이 명사구인 경우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르다" 같이 절인 경우도 있습니다. 활용하기 쉬우라고 그런 것이죠.
"모르는 게 약"처럼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속담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속담이 있는가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처럼 독창적인 표현이 존재하기도 하죠.
칠칠맞게, 아니, 칠칠치 못하게 이런 숙어와 속담은 변형을 거치며 더 원래 형태에서 멀어진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칠칠맞다"죠. 원래 "칠칠맞다"는 {칠칠하다}, 즉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에서 파생된 {단정하고 야무지다}의 뜻이었지만, 크게 두 가지 과정을 통해 현재의 {칠칠치 못하다}의 뜻이 되었습니다.
먼저, "칠칠치 못하게"가 자주 쓰이며 이 구의 중심인 "칠칠"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궁상맞다"나 "방정맞다"처럼 "-맞다"에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어근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칠칠맞다"가 {칠칠치 못하다}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랍니다.
"본다고 닳기라도 하냐"라는 말이 있지만, 말은 쓰면 쓸수록 닳는답니다. 자주 쓰이는 말일수록 원래 형태에서 멀어지기 마련이고, 한 묶음으로 함께 쓰이는 말일수록 점차 하나가 되어가기 마련이죠. 그리고 풍화가 이뤄지면 당연하게도, 드물지만 문법화되기도 한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일본어에서 찾아볼 수 있죠. 바로 ある [아루] {있다}의 존대형인 ござる [고자루] {계시다}입니다. ござる의 한자 표기, 御座る에서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어좌御座가 떡하니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죠.
사실, 御는 존칭 접사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ござる가 ござある [고자아루]에서 유래했다는 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어로 따지자면 "있다"의 높임말이 "어좌있다"에서 유래한 "어잤다"라는 것이죠. 즉, 언제나 구가 통째로 문법화될 수 있답니다.
이렇듯 관용구가 만들어지고 사람 사이에서 쓰이며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알아보며, 이번 장에서는 자신의 언어에 관용구를 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작별 인사를 배웠는데, 다음 장에서는 창언창안 2막에 작별 인사를 하게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