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즐거운 언어 창작이 있기를!

2막 24장 ― 종곡

by CCCV 츠스쿠

이상으로 2막을 관람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막은 1막에 비해서 양도 많고, 담고 있는 지식도 더 깊었습니다. 반대로 직접 언어를 만들어 가며 예시를 보여드리지는 못했죠.


부족한 제 설명 실력으로 전하고 싶은 정보의 1할은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이런 정보들을 한 번에 묶어 전하는 한국어 정보원을 여태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만든 창언창안의 2막, 유용하게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2막의 내용은 1막보다는 더 본격적인 언어학, 특히 이론 언어학 내용이었기 때문에, 한 번 읽고는 이해가 안 가실 수 있습니다. 전부 다 제 부족한 설명 탓입니다. 그래도 이번 막의 내용은 언어학을, 또 언어 창작을 할 때 피할 수 없는 기초입니다.


작동 원리를 모르고 남이 이미 만들어 놓은 도구로 언어를 만드는 것이 1막의 주제였다면, 2막의 주제는 바닥에서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직접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기초적인 언어학의 여러 용어를 알게 될 기회가, 또 그 용어들을 바탕으로 더 깊게 탐구할 기회가 되셨으면 합니다.


아쉽게도, 음성음운론에서 시작해 형태통사론을 거쳐 의미화용론으로 이어진 창언창안의 2막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창언창안의 끝은 아직 멀었답니다. 언젠가 누구나 자유롭게, 부담 없이 언어 창작을 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창언창안은 계속해서 언어 창작의 도움말, 언어 창작의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그럼 3막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만나보게 될까요? 음, 무작정 언어를 만드는 도구를 쥐여드린 1막, 언어학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2막이니, 다음은... 응용이려나요? 여기서 더 말씀드리면 3막의 시작에서 드릴 말씀이 사라질 테니, 나머지는 기대감으로 남겨둡시다!


아! 또 지금까지 창언창안을 읽으시면서 생긴 질문이나, 여러가지 언어학 관련된 질문이나, 언어 창작을 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셨다면, 댓글이나 커뮤니티 질문을 통해서 알려주세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답해 드리겠습니다!


그와 함께, CCCV만의 서비스, 창작 언어 커미션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언어 창작을 직접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거나, 시간 상 여유가 없을 때, 이미 짜 놓으신 설정을 바탕으로 언어 창작을 대신 해드리는 서비스입니다. 가격 미정이지만, 저도 재밌어서 하는 일이니 걱정 말고 문의해주세요!


그러면 창언창안 3막이 시작될 때까지 커튼을 잠시 내리기 전에, 언어 창작을 하실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첫째. 완벽을 추구하지 말 것

무언가를 할 때, 이왕이면 잘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죠. 더군다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완벽한 대작을 만들 수 없습니다. 언어도 그렇고요.


저 스스로도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언어 창작 자체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작품의 핍진성, 즉 설정의 체계가 단단함을 부각하는 장치로만 쓰이지, 주연으로 독무대에 오르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창작 활동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뽑으라면 언어 창작은 슬프게도 후자에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현실의 언어를 쓰면서, 현실의 문자를 치환하기만 한 기호를 문자로 쓰는 것도 이런 이유죠.


하지만, 저는 언어 창작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언어를 만들어 창작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사회/문화는 설정을 짠다면 가장 첫 번째로 짜야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사회/문화를 짜기에 가장 유용한 것은 언어죠. 창작 언어의 빈칸은 곧 그 언어를 쓰는 사회의 설정 구멍이니까요. 쉽게 구멍을 찾아낼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언어창작이랍니다.


그러니 언어 창작은 가볍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언어학적으로 "올바를" 이유도, 현실적일 이유도 없습니다. 때로는 현실이 더 공상 같을 때도 있고, 그건 언어도 마찬가지니까요.


1000개의 단어를 준비할 필요도,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문법과 관용구를 짤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고유명사와 짧은 인사말을 위한 30개의 단어와 기초적 문법이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언어를 만들 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창작물 안의 사회와 문화의 일부라는 점만 떠올리면서 만드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언제나 실수를 하고, 완벽하지 못합니다. 현실의 언어도 완벽하지 못하고,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창작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언어학에 집착하지 말 것

명사가 뭐니, 동사가 뭐니, 격에 뭐가 있니, 시상에 뭐가 있니, 의미와 단어의 관계가 어떻니 등등, 언어학은 파도 파도 끝이 없습니다. 언어학은 아직 역사가 짧고, 아직까지 단 한 언어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학문입니다. 언어는 그만큼 깊고 어려우니까요.


그러니 언어학과 용어와 이론에 집착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창언창안에 나오는 모든 용어를 다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법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버리세요! 상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품사도요? 다 버리세요!


사람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언어에 대한 지식, 아니 본능을 담고 있습니다. 언어학을 몰라도, 용어를 몰라도, 구조를 몰라도 본능적으로 사람은 '얘네는 얘네랑 비슷하지'나, '얘네는 대충 이런 뜻이지' 같은 언어에 대한 원초적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언어학의 모든 걸 알려고,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흥미 위주로, 단편적인 개념들만 모아 영감을 얻어가고자 하는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언어 창작자가 언어학을 향해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재미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굳이 힘들게 정보를 눌러 담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셋째. 목표를 확실히 할 것

단지 '언어를 만들고 싶다'가 아니라! 확실하고, 자잘한 여러 목표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언어는 굴절어였으면 좋겠어!', '이 언어는 신비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언어는 유목 민족의 느낌이 나면 좋겠어!'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요.


또, '이 언어에는 이런 소리가 많았으면 좋겠어!', '이 언어에는 이런 종류의 단어가 많았으면 좋겠어!', '이 언어에는 이런 문법이 있으면 좋겠어!' 같은 구체적인 목표도요. 여러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 그 목표들을 이루려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너무 많이 설정하거나, 창작 과정 중에 새로 추가하지는 말아 주세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지나친 것은 못한 것과 같으니까요.


언어 창작은 쉽게 다른 길로 새기 쉽고, 쉽게 자신의 손을 벗어나기 쉽습니다. 마치 점토를 빚는 것과 같죠. 손을 잘못 놀린다면 생각치도 못한 방법으로 모양이 달라진답니다. 모두가 물레의 달인이 되어 본인의 모든 행동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필요없는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완벽한 그릇을 빚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러니, 창작의 모든 단계를 저장하고, 언제나 돌아갈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을 잘못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걸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뒤로 돌아가는 편이 더 빠르고 편하니까요. 이게 컴퓨터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물론, 모든 목표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목표란 이정표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언어의 설정은 그 사회의 설정과 긴밀히 연결이 되어있답니다. 언어 자체에 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한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도 좋답니다. 이미 잘 짜놓은 설정을 사용하면 들어갈 노력이 주는 법이죠.


넷째. 양보다는 관계

단어를 만들 때, 어근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어근과 접사를 이용해 새로운 단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었죠? 특히 비유와 유추를 사용해 하나의 뜻으로 새로운 뜻을 담아내는 것을 강조했었죠.


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법도 모든 문법 기능에 해당하는 요소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로 새로운 문법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격이 다른 격의 기능을 할 수도 있고, 한 접사가 다양한 기능을 가질 수 있으며, 어순을 바꾸는 것으로 문장의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한문의 말이을 이而를 봅시다. 이 한문은 말 그대로 말을 잇는 기능을 합니다. 사이비라는 문장을 봅시다. 사이비似而非, 즉 {같으나 다르다} (같으: 似, 나: 而, 다르다: 非). 그런데, 而는 {곧/그리고/그러나/그리하여/그런데/그러고서/-이/히}의 기능을 하는, 중의성이 넘쳐나고 이해는 하나도 안 가는 한자입니다.


한국어의 "말씀"은 남의 말을 높일 때도, 내 말을 낮춰 남을 높일 때도 둘 다 쓰는 단어입니다. 두 뜻은 겉보기엔 완전히 반대죠. 현실도 이런데, 구태여 모든 문법 기능에 문법 요소를 겹치지 않게 하나씩 담을 필요가 하나도 없답니다.


오히려, 수많은 언어에서 하나의 문법 기능이 여러 의미를 담고 있죠. 한국어의 "-었-"과 "-겠-"은 과거시제와 미래시제뿐만이 아닌, 확신과 추측을, 또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어의 과거시제는 겸양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언어란 소통의 체계입니다. 체계라는 것은 양보다는 관계와 구조에 중점을 맞춘 표현이죠. 언어는 결국 한정된 자원인 말하는 시간, 사고력, 기억력 안에 어떻게 의미를 집어넣는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무작정 의미를 집어넣지 않고, 중의성과 모호함을 잘 이용해 독창적인 언어를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 더군다나, 현실의 언어는 모두 "비상식적"인, "비이성적"인, "비논리적"인 모습이 있답니다.


다섯째. 재료보다는 형태

같은 속과 같은 피로 만두를 빚어도, 다양한 모습의 만두를 빚을 수 있죠? 언어도 똑같습니다. 일본어와 스페인어의 음소는 공통점이 많지만, 듣기에는 크게 다릅니다. 아무리 음소가 같더라도, 즉 같은 재료더라도, 어떻게 요리하고 어떻게 모양을 내느냐에 따라 결과물, 즉 언어의 형태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언어의 독창성은 어떤 재료를 넣느냐/빼느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조리할 거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한글의 제약이 있는 한국어 창작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무슨 언어를 만들더라도 결국에는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독특한 음소만 골라 담아봤자 결국 다른 재료들과 분간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쉬운 발음 위주로 사용하되, 독창적인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양보다는 관계, 재료보다는 형태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도, 재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뭐가 뭔지 모를 뿐이니까요.


1막의 주제와 똑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려나오는 요리가 맛만 좋으면 됩니다. 굳이 가장 신선한 재료를, 가장 정확한 조리법으로, 가장 공을 들여 요리할 필요 없습니다. 적당히, 무난한, 평범한, 그러나 핵심적인 부분이 독특한, 그런 식으로 요리를 내놓으면 됩니다.


자, 이 도움말들을 통해 힘든 언어 창작의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내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꿈꾸는 광경은 모두가 마음껏 창작 언어를 뽐내는 광경이니까요. 그러니 창언창안을 통해 언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어를 실험해 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번역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든 언어로 예문을 번역하며 다양한 상황에서 이 언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원하던 결과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창언창안은 제가 처음으로 써본 무언가를 설명하는 글이라 많은 면에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제가 봐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여러분 앞에 내놓았습니다.


여러분의 창작 활동에 무궁한 창의력과, 탄탄한 필력이 가득하시기를 빌며, 「창작물을 위해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들을 위한 안내서」의 2막을, 1막의 맺음말과 동일한 말로 맺습니다. 혹시라도 창언창안을 계기로 언어학에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막간 휴식 이후 꼭 3막까지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3막은 2막보단 분명 더 가벼울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재차 감사의 말씀 드리며, 이만 2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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