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 ― 음절

문자의 역사, 권외1

by CCCV 츠스쿠

전주곡

음절, 음절이란 무엇일까요? 14세기 중반 프랑스 남부 툴루즈 출신 오크어 시인 길렘 몰리니에Guilhem Molinier가 시학詩學을 정립하고 가르치기 위해 적은 『Leys d'amors』[레다모르]{사랑의 법칙}라는 책에서는, 음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Sillaba votz es literals.
Segon los ditz gramaticals.
En un accen pronunciada.
Et en un trag: d'una alenada.

음절은 여러 글자 함께 만나 낸 소리다
문법의 연구자들 말하는 바 들어보면
안 끊고 한 강세로 한숨에 발음하는 것이다
— 기옘 몰리니에, 『사랑의 법칙Leys d'amors』

즉, 여러 글자를 한 번에 발음한 것이 음절입니다. 음절syllable의 어원이 각각 {소리의 마디}라는 뜻의 音節과 {함께 묶은}이라는 συλλαβή[쉴라베]라는 것을 봤을 때, 적합한 정의라고 할 수 있죠.


현대 음운론적으로 해석하면 여러 음가(구분되는 말소리, 자세한 정의는 여기)를 중단 없이 발음한 것이 음절이라는 뜻이죠. 현대 음운론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음운론의 정의에 따르면, 음절이란 "연속적인 음가 중 구성을 위한 기초 단위"입니다.


어려운 용어를 많이 썼지만, 결국 대충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소리의 뭉치"라는 뜻입니다. 70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왜 이렇게 정의가 똑같이 애매모호하냐고요? 이번 장을 읽으시면 그런 의문이 해결되실 겁니다.


1악장 — 해부하기

대개, 음절(약자 σ)은 다음의 두 구성 요소로 되어있다고 분석합니다. 두음頭音onset(약자 ω)과 운韻rime(약자 ρ)이죠. 모든 언어의 이 구조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언어가 그러니 이 구조를 대개 예로 든답니다. 음절이 뭔지 모르겠다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하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나요?


그럼, 두음과 운이 무엇일까요? 한국어를 예시로 들기에는, 한국어의 음절은 이 형태에 잘 맞지 않으니 영어를 봅시다. 영어 sing/sɪŋ/[싱]이라는 단어를 보면, 크게 음절을 여는 /s/와 음절의 중심이 되는 /ɪŋ/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절을 여는 /s/는 두음, 음절의 중심이 되는 /ɪŋ/을 운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ɪŋ/이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언어 각각의 특징에 기반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는 똑같은 /ɪŋ/운에 다른 두음을 붙이는 것으로 서로 각"운"이 맞는 단어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단어의 예를 들면, bling/blɪŋ/, cling/klɪŋ/, fling/flɪŋ/, king/kɪŋ/, ring/ɹɪŋ/, sling/slɪŋ/, spring/spɹɪŋ/, swing/swɪŋ/, thing/θɪŋ/, wing/wɪŋ/, 등이 있답니다.


이렇듯 각운을 중시하는 언어들은 단어의 중심이 되는 운과 그 앞에 오는 머리를 나눈답니다. 하지만 모든 언어들이 이 구조에 맞춰 들어가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좀 더 범용적인 구조를 취하기 위해, 운을 다음 두 구성 요소로 나눈답니다. 핵nucleus核(약자 ν)과 말음code未音(약자 κ)으로요.


핵은 음절의 필수적인 성분으로, 음절을 붙들고 있는 음가를 말합니다. 언어마다 핵에 올 수 있는 음가가 다르긴 하지만, 핵에는 대개 "모음"이 오죠. 그리고 말음은 핵 뒤에 오는 음가를 말한답니다.


중국어는 역사적으로 반절反切을 사용해 음절을 나눴기 때문에, 현대 음운론이 들어오고 나서도 이 반절에 기반해 음운을 나눈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음절은 성모聲母initial(약자 ι)와 운모韻母final(약자 φ), 성조聲調tone(약자 τ)로 이루어져 있고, 운모는 추가적으로 운두韻頭medial(약자 μ), 운복韻腹nucleus(약자 ν), 운미韻尾coda(약자 κ)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여담이지만, 각 용어의 약자는 영어 명칭의 첫 글자를 그리스 문자로 바꾼 것이랍니다.


복잡하니까, 다시 정리해 봅시다.


음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작, 끝, 성조. 성조가 있는 언어의 경우 성조가 음절의 일부지만, 성조가 없는 경우 시작과 끝으로만 이루어져 있죠.


시작과 끝은 대개 "두음"과 "운"이라는 용어로 부르지만, 중국어를 비롯한 몇몇 언어의 경우 "성모"와 "운모"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합니다. 성모와 운모의 영어 번역을 보면 시작과 끝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죠.


"끝"은 더 세분화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운"을 "핵"과 "말음"으로 나누지만, 역시 중국어를 비롯한 몇몇 언어의 경우 "운모"를 "운두", "운복", "운미"로 나눈답니다. 영어 번역을 보면 알겠지만, 운복과 핵, 운미와 말음은 동일하다고 봐도 됩니다. 단지 운두라는 것을 두음이 아닌 운모에 넣은 것이 차이지요.


그래서, 두 체계를 하나로 엮어보자면, 음절은 두음과 운으로 되어있고, 두음 안에는 성모와 두음, 운 안에는 핵과 말음이 들어있는 것이랍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는 경우도 있답니다. 음절이 체體와 말음으로 되어있다고 하고, 체가 두음과 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해석이죠. 언어에 따라 이 해석이 더 적합한 경우도 많고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음절이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두음, 핵, 말음이죠.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창언창안에서 사용한 구조기도 하고요. 운두는 두음에, 성조는 핵에 넣어서 해석했죠.


이 구조를 제가 사용한 이유가 단순히 이 구조가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한글의 구조인 초성, 중성, 종성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구조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죠. 물론 한글의 중성은 운두와 핵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완전히 일치하는 구조는 아니긴 하지만요.


그럼 두음, 핵, 말음을 볼까요?


2악장 — 머리, 몸, 꼬리

주제선율, 「머리」

두음은 핵 앞에 오는 모든 음가를 말합니다. 한국어 "산"을 보면, /s/[ㅅ]이 두음이죠. "안"을 보면 두음이 없고요. "일"{1}을 보면, 한글로 표기하진 않지만 보통 두음으로 /ʔ/(성문 파열음)을 넣어 발음한답니다.


"걔"에는 /k/[ㄱ] 뿐만 아니라, 이중 모음에 들어간 반모음(접근음) /j/까지, 두 개의 두음이 있답니다. 중세 한국어를 보면, "ᄣ개"{때}에서는 /psd/[ㅵ], 총 세 개의 두음이 있답니다.


위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 두음에는 소리가 하나도, 여러 개도 올 수 있고, 심지어 안 올 수도 있답니다. 그러나 모든 언어가 한국어처럼 널널한 두음 제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몇몇 언어는 무조건 두음이 있어야 하고, 몇몇 언어에서는 두음이 없어야만 하기도 하죠. 두음이 없는 경우를 영두음零頭音null onset이라고 합니다. 영두음이 불가능한 언어의 경우, 보통은 /ʔ/을 음소로 가지고 있답니다. 물론, 독일어처럼 /ʔ/을 음소로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발음을 할 때 자주 등장하거나, 아랍어나 하와이어처럼 /ʔ/을 음소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죠.


/ʔ/가 두음인 경우와 영두음인 경우는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랍어처럼 무조건 두음에 /ʔ/을 넣는 언어도 있지만, 하와이어나 몰타어처럼 두 경우를 구분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독일어도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영두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거의 무조건 /ʔ/을 넣지만(아이러니하죠), 이 경우에는 규칙적으로 등장하니까 의미를 구분하는 능력이 없어 음소로 보지 않는답니다. 물론, 독일어가 딱딱하게 들린다는 인상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요.


무조건 두음이 있어야 하는 경우(아니면 독일어처럼 /ʔ/을 자주 쓰는 경우) 모음과 모음이 서로 부드럽게 닿지 않고 언제나 끊어져 있기에 듣기에 독특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답니다.


두음에 무엇이 올 수 있느냐도 중요하죠. 한국어처럼 두음에 여러 자음(=자음군)이 올 수도 있고, 아예 자음군이 올 수 없는 언어도 있답니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어두자음군이 있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으신 적 있죠?


주제선율, 「몸」

음절은 몸, 즉 핵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핵만 있어도 음절이 된다는 소리죠. 단음절 단어의 대표적인 예시는 "이"{齒}랍니다. 한글의 한계 때문에 <ㅇ>을 자음으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답니다.


몸에 오는 소리는 대체로 모음입니다. 왜 모음이 오는 걸까요? 그것은 "공명도sonority" 때문에 그렇답니다. 거의 모든 언어는 공명도 위계에 따라 음절 안의 음소들이 어떤 순서로 와야 하는지 정의하기 때문이죠.


공명도가 가장 큰 음소가 음절의 가운데에, 공명도가 작을수록 음절의 가장자리에 놓여야 한다는 공명도 배열 원칙sonority sequencing principle(SSP)에 따라, 대개는 공명도가 가장 큰 모음이 음절의 가운데인 핵에, 공명도가 작은 자음이 두음이나 말음에 오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몇몇 언어는 음절의 핵으로 자음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음절의 핵이 된 자음을 성절 자음이라고 합니다. 성절 자음에는 보통 공명도가 큰 자음은 유음이나 비음이 쓰이는데요, /l/, /r/, /m/, /n/, /ŋ/이 가장 흔하고, 이 다섯은 영어에서도 성절 자음으로도 쓰이죠.


하지만, 다른 언어들은 마찰음이나, 심지어 파열음을 성절 자음으로도 사용한답니다. 누할크Nuxalk어의 [t͡sʼkʰtʰskʷʰt͡sʼ]{그가 도착했다}를 보면, 도대체 어디서 어디부터가 음절인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원어민에게 음절을 나눠보면 잘 직감적으로 나누죠. 이런 점이 음절을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랍니다.


주제선율, 「꼬리」

핵 뒤에 오는 모든 음가는 말음입니다. 한국어의 "산"을 보면, /n/[ㄴ]이 말음이죠. "해"처럼 말음이 없을 수도 있고, "앗"처럼 표기와는 다른 말음이 발음되기도 하고, 놀랐을 때 외치는 "아!"의 경우 표기엔 없지만 말음에 /ʔ/이 오기도 한답니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말음에 여러 자음을 적어놔도, 한 자음만 발음한답니다. "닭"처럼요. 그러나 예전에는 다 발음했었답니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어말자음군을 모두 발음했었죠.


말음이 있는 음절을 닫혀있단 의미에서 폐음절, 말음이 없는 음절을 열려있단 의미에서 개음절이라고 한답니다. 개음절을 선호하는 언어와 폐음절을 선호하는 언어가 있죠. 개음절을 너무나 선호하는 나머지 말음 자체가 없는 언어도 있답니다. 하와이어를 비롯한 오세아니아어족의 몇몇 언어의 특징이죠.


폐음절을 용인하더라도, 대부분의 언어에선 두음보다는 말음에 제한이 더 심하답니다. 한국어만 봐도, 두음에 올 수 있는 소리는 자음군을 빼고도 13개나 되지만, 말음에 올 수 있는 소리는 7개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자음군도 못 오고요.


말음에는 공명도가 높은 비음이나 유음만을 용인하는 언어가 많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흔하면서도 말음에 거의 오지 않는 소리가 있죠. 바로 성문 마찰음 /h/이랍니다. 물론 반대로 말음에는 흔하면서도 두음에 잘 오지 않는 소리인 연구개 비음 /ŋ/이 있답니다.


후주곡

음절은 이토록 복잡한 것이라,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기 힘들답니다. 오죽하면 음절을 구분하기 힘들어서 양음절성ambisyllabicity(이쪽에도 저쪽에도 포함될 수 있음)이나, 외음절성extrasyllabicity(음절의 경계선 밖에 있음) 같은 단어를 만들어서 음절을 해석하려고 할까요.


모든 언어가 공명도 배열 원칙에 따른다면, 이렇게 정의가 복잡하진 않았을 텐데요. 하지만 사람일이 그렇게 쉬울 순 없겠죠. 한국어처럼 공명도 배열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언어도, 도리그Dorig어처럼 철저히 지키지 않는 언어도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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