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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an 17. 2024

인간실격 "평범함의 지루함에 대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위해서 누군가의 노력은 어디까지 가야만 했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요조는 평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똑똑한 사람이고 비범했던 사람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고 읽어내며 그런 능력도 있을 뿐더러 그냥 공부 자체도 잘하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를 예민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곡되고 뒤틀리며 오히려 겉과 속이 다른 스스로의 모순에 갇히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애매한 재능" 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자 요조에게도 어울리는 말이겠다. 스스로의 재능과 실력에 대해서 충분하다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경계에 있어 남들에게 높게 보이지만 스스로를 높힐 수 없는 그런 애매함. 사실 애매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어째보면 꽤나 주관적인 말이지만 예민한 이들에게 이 경계는 아주 촘촘하게 그어지며 항상 스스로가 그 경계에 달하지 못함을 마주하고 만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애매해다" 라고 규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들은 결국 비범한 자리를 위해 노력하다 평범해지는 순간이 있다. 모든 비범한 이들도 어떠한 순간에는 범부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 세계에는 끝이 없고 내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에 필연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에 이들은 좌절하고 비참함을 느낀다. 평범함을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비범하다고 동화될 수 없고 그렇다고 비범함을 과시할 정도로 오만할 수는 없다보니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익살"인 것이다. 익살을 통해 스스로를 추락시키며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들과 동화되면서 평범하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더라도 그에겐 그 추락의 높이 차이가 상처로 남아있다. 또한, 스스로의 모습과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의 사이엔 익살과 추락의 깊이가 있기에 모순에 빠져 괴로울 뿐이다.


익살을 선택한 순간 괴롭다. 상승을 바라던 이에게 하강을 지향하라는 말이자, 서 있는 위치를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예민한 이에겐 이런 생각을 품고 인간들을 대한다는 것 자체가 순수함과 깨끗함이란 것과는 멀어졌다 느끼기에 스스로를 더욱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계산 끝에 나온 행위로 인간들에게 대하는 것이기에 진심으로 그들과 동화되지도 못한 채로 군중 속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인간" 이기를 "실격" 시킨다. 스스로에게 하는 최종적인 확신에 찬 목소리이자 결심이다. 부끄러운 생을 살았고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그는 결국 스스로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그들과 동화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비범과 평범 이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어쩌면 강한 다짐일지도 모른다. 대신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을 포기함은 결국 스스로를 사회에서 격리했다는 뜻이며 혼자가 되겠다는 말이다. 실격을 통해 그는 그를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동시에 무한한 고독함과 쓸쓸함을 감내해야 한다.


한 문장 한 문장 그에겐 쉬운 일이 없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무수한 생각과 회로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 끝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벌레같은 꼴로 보는 것이다. 예민한 이는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으며 그 짚는 순간들이 모이면 어느덧 그 많던 별들도 숨는 시간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끝까지 그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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