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 남편과 산책하는데 고양이 하나가 우리를 쫓아왔다. 산책중에 이미 몇 번은 마주쳤던 치즈 고양이였다. 공터의 숲속에 있던 고양이였는데, 우리가 지나갈 때 마다 따라오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했다. 우박이 오고난 다음에 이 고양이를 마주치면 살아남았구나 하고 반가워하기도 했고, 토요일 오후에 뛰다가 또 만나면, 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로 근처의 고양이라, 우리끼리 알렉스라고 부르는 고양이였다.
어젯밤에는 그 숲 근처의 한 가정집 마당에 있다가 우리를 마주쳤다. 그리고 늘 그렇듯 따라오기 시작했다. 오다가 또 멈추겠지 싶어 그냥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이 고양이, 따라오는 것을 멈출 생각이 없는 거다. 우리를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계속 따라왔다. 우리집까지는 2키로 정도의 거리. 과연 집까지 쫓아올까?
우리 둘과 이 고양이가 함께 열 집정도 지나치자, 알렉스가 우리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운명이다. 너는 우리 집 세번째 고양이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너 스스로 생면부지인 우리를 선택하고 얼굴에 철판깔고, 용기를 내어 우리를 따라오는구나.
나에게도 그런 철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내가 하고 싶고 관심있는 것들은 한국에서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이제와서 생각되)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좌절하던 차였다. 그걸 모른 척했을 만큼, 내가 무지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던 차였다. 외국인 남편과의 결혼과 함께 외국 살이를 시작했다. 세계는 넓고, 바보는 아니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자상한 남편도 만났는데, 자아 실현 정도야 해외라 할지라도 쉬워보였다. 유학이나 직장을 위해서 외국 살이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해외에서 교육 과정을 마친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 해외 거주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근거없는 자신감과 기대감이었다. 언어나 문화차이로 인해 일상 생활에서 자주 갇힌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나를 실제로 가두지 않았는데, 기혼자라서, 이방인이라서 족쇄가 매인 것 같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 삶의 현장을 바꾼 다고 해서, 이 모든 창살을 깡그리 무시할만큼 내 성격이 더 활발하고 용기있고 강단있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분간 혹은 오랫동안 외국인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나를 주장하며 살려면 지금보다 훨씬 억세져야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하던 차에, 용기백배에 철면피인 알렉스를 만난 것이다. 이것은 계시임에 틀림 없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주제와 분수를 괜히 의식하는 나로 살지 말자. 저렇게 배짱좋게 내 원하는 바를 주장하며 살라는 신의 계시, 신의 뜻의 현현이다. 일단 저지르는 거다. 일이던 의견을 내는 것이든 무엇이든. 알렉스처럼 과감히 변화를 선택,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다!
그런데 모퉁이에서, 알렉스가 딴청을 피기 시작했다. 앉아서 움직이지 않기도 하고, 도로 한가운데를 돌아다기 시작했다. 집이 코앞인데, 녀석이 산만하다. 원래의 숲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니 놓아주려고 하는데, 서성이던 알렉스가 다시 쫓아왔다. 나와 남편은 벼룩이 있는 알렉스를 동물 병원에 어떻게 데려갈지, 캣타워 등 무엇을 더 사야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잘 따라오던 알렉스가 길 건너의 또다른 공터로 가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원했던 것은 사실 집냥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숲이었다는 듯, 드러누워버렸다. 집이 코앞인데, 거의 다 왔는데. 한창을 오라고 회유도 해보고, 집가서 사료를 들고와 캐리어로 오도록 유인도 해보았다. 하지만 날쌘 알렉스는 캐리어를 탈출했고, 사료만 먹고는 우리에게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숲을 사랑하며, 건강상 큰 문제가 없어보이는 알렉스를 힘으로 제압하여 굳이 캐리어에 넣지 않았다. 동시에 나를 포기하고 싶을 때, 스스로를 구조한 알렉스를 보며 나에게 동기부여 하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물론 알렉스가 지금 우리집에 있어도, 나는 다시 쉽게 자책감과 실패감, (코로나 사태 이후 특히 더 커진) 고립감에 빠져 허우적거릴테지만.
다시 나의 일상이다. 갈피를 못잡고, 과거를 후회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될 어떤 계기가 요행처럼 홀연히 찾아오기를 바라는, 나와의 일상이다. 내 스스로 나에게 동기부여하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를 이끌 것은 나 뿐이다. 숲 주위를 서성거려봤지만, 알렉스는 역시 어제도,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출근하고, 다시 나와 고양이 두마리만 있는 적막한 집. 커피를 마시다 답답해진 나는 수저로 눈을 파고, 그 눈을 벌컥, 삼켜 버린다. 텅 빈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문 밖으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