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맞네
오늘은 아기의 생일. 어제 교회에서 돌잔치를 했다. 난 교회에 첫돌 기념 점심 대접하고 끝, 하려고 했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생각한 거보다 일이 커져서 돌잔치가 되었다. 장식도 하고, 음식도 맛있고, 많았다. 가족까지 오셔서 더 정겹고 좋은 자리였다.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갔다. 아기가 돌잡이를 거부하며, 오열할 때까지.
물안경, 엽전, 마패, 판사봉, 청진기, 등... 여러 개가 딸 앞에 놓여있었고, 딸은 사람들이 많아 긴장돼서였는지, 그냥 물건들이 무서웠는지, 한복이 불편했는지, 앞에 놓여있는 것들을 잡지 않았다. 나는 사실 돌잡이도 안 하려고 했어서, 아기가 무언가 잡는 것이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다. 웬걸, 갑자기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왜 다른 집 아기들은 다 잡는 돌잡이를 하지 않을까.
억만장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하버드 박사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앞에 있는 뭔가를 잡기만 하면 되는데, 왜 잡지를 못하니! 그저 아빠에게 안기고, 엄마한테 안기고, 할아버지한테 안기고, 교회 언니한테 안길 뿐이었다. 교회 집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가. 물론 이맘때의 아기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아기가 잘 발달하고 있다는 신호다. 교회 언니가 달래고 얼르니, 가까스로 나중에 붓을 잡았다. 잡은 영상은 없다. 내 기억에 남아있다. 집에 오니, 집 바닥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들은 잘 잡는다.
나랑 남편처럼,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혼자서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인 것인가? 역시 내 자식이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마음 한편에, 내향적인 나나 남편 같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나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려나?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아기를 잘 서포트하거나 가이드할 수 있을까? 사실, 더 좋은 질문은 이거다.
왜 나는 돌잡이에 연연 안 한다더니, 왜 연연하는가?!
아마 미정으로 남은 나의 10여 년에 걸친 지망생 상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랜 지망. 어쩌면 이것도 오랜 선택 거부, 혹은 보류. 어떻게든 결론을 보고 싶어 원서 접수 까지는 마치고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 또 대기자 명단에 오를까 두렵다. 이따금 다른 옵션들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불안이 밀려올 때도 있다. 이런 괴로움을 알다 보니, 아기는 그냥 "아무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무나"에 나같이 되는 것은 빠져있었나 보다. 돌잡이를 하지 않는 나의 아기가, 나처럼 오랜 시간 지망의 상태를 선택할까 봐 걱정된다. 지망의 상태를 이유로, 타인에 의해 "떠밀려가기"를 선택하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느낄까 봐 염려스럽다.
사실 지망생이든, 무직이든, 어떤 상태이든 간에 그것은 어느 순간 딸 본인의 선택이다. 나와 남편은 부모로서 성인이 될 때까지 가이드해주겠지만, 이후의 가이드는 본인의 몫. 그 "본인의 몫"이 어떻든 간에 부모로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나와 남편의 역할. 딸이니, 어쩌면 더 중요할 엄마인 나의 역할.
결국 나도 돌잡이에 연연하는, 쿨하지 못한 엄마임을 확인하고,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은 혹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보통의 엄마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의 아이는 나랑 비슷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나를 긍정해야, 아이를 긍정할 수 있고, 나를 잘 키워야,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주 금요일쯤 결과가 나온다. 안절부절못하지 말고, 하루를 충실히 나답게 살아내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