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로 접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우리 동네에서 떨어진 의대와 인터뷰가 있었다. 캐주얼한 분위기의 인터뷰였다. 여기에 붙게 된다면 Doctor of Medicine, MD 아니고 정골의학 의사가 된다(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 DO). 엠디 대학이 배우는 의대 과정에 더해, 정골의학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골의학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 기술은 카이로프랙틱이랑은 다르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유튜브로 봤을 때는 뼈 맞추는 기술과 비슷해 보였다. 정골의학 의사들도 실제 의료 현장에서 잘 안 쓰는 것 같다. 내가 어전트 케어에서 본 바로는, 엠디나 디오나 하는 일도, 사고 과정도 같았다.
이 학교에 붙고 싶다. 쉼표가 많았던 나의 프리메드로서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리고 다음 챕터를 시작하고 싶다.
그런데 2년 동안 이론 공부를 몇 시간 떨어진 도시에서 해야 되는 게 문제다. 1살 반, 2달이 된 아기를 가족과 남편에 손에 맡겨놓고 2년 간 다른 곳에서 산다. 토요일 엄마/부인이 될 것이다. 게다가 룸메가 있다고 해도, 나만을 위한 숙소와 생활비가 들어간다. 사립 의대라서 학자금+이자도 아주 높다. 아이 둘의 미래만 준비하기에도 벅찬 시간에.
이 학교의 결과는 일주일 정도 후에 나온다. 합격일 수도, 불합격일수도, 다시 대기자 명단일 수도 있다. 세 가지 선택지 모두 장단이 있다. 세 가지 결과 모두 나에게 약간의 안도와 큰 슬픔을 줄 것이다. 나는 어쩌자고 연년생을 낳으면서 의대까지 지원할 생각을 했을까. 남편이 하나님도 아니고, 이렇게 큰 재정적,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주면서까지. 준비과정도 힘들었는데, 연년생 낳아 놓고 주말부부까지 해야 한다면? 남편 인생 최대 빌런은 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균형한 부담을 유지하는 것이, 결혼과 가정생활, 그리고 내 자존감에 유익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나중에 내가 고연봉이 된다고 하더라도, 의대 4년, 레지던트 4년, 복리로 쌓일 학비와 이자를 갚는 동안 남편과 가족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남편의 건강을 해칠까 두렵다. 말도 못하는 아이들 걱정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동네의 간호대를 붙는다면, 제일 현실적인 것 같다. 공부도 짧고, 이사도 안 가고. 모두가 행복하다. 다만 내 지난 4년은 그냥 교양 쌓고, 인생 경험 쌓은 것으로 퉁치는 거 말고는 의미 없는 4년이 된다. 무응답, 불합격, 불충분, 무시를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신앙의 힘으로 어찌어찌 우울감을 누르고 살겠지만, 때로 매우 힘들 것이다. 나는 왜 그런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선택만 하며 청춘을 보냈을까 하면서. 물론 동네에 있는 의대를 붙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25번으로서 희망이 없어 보인다.
만약 동네 의대도, 먼 의대도, 간호대도 다 떨어진다면, 더 우울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옆에는 오랜 시간 있어줄 수 있겠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복한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현재로선 상상이 안된다.
알바 면접도 답이 없고, 집에서 아기와 씨름하며 웃다가 감정적으로는 땅 파는 나날들이다. 무기력을 이기고, 우울을 이기고 싶다. 출산도 얼마 안 남았고, 몸도 무거우니 더 우울한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무력하게 살게 되었을까. 꿈 많고 욕심만 많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낭비한 세월이라고 느껴져서 더 힘들다. 이렇게 기분 관리 못하다간, 더 안 좋게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감정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주 일요일, 아기 돌때는 환하게 웃고 싶다.
존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자신을 세우고, 주변을 지키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존엄. 나도 그것을 가지고 싶다. 그러려면 어떤 길이 제일 좋을까. 지난 4년 낭비했다 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신앙인으로서, 25번으로서 합격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되는 걸까. 고난 주간이다. 부질없는 고민들에 마음 뺏기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예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먹방이나 사 먹는 정크푸드를 지양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