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합격으로 인한 기쁨도 잠시, 大고민의 시작
지난 수요일, 집에서 좀 떨어진 정골의학전문대학원에서 합격 메일을 받았다. 처음에 한 3분 정도는 정말 기뻤다. 그리고는 오늘까지, 아마 깨어있는 순간에는 계속 고민을 했다. 합격한 학교를 입학하면, 첫 2년은 지금 사는 곳에서 3시간 떨어진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요즘 분위기상, 남편이 재택을 승인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입학 한 달 전, 둘째가 태어난다. 학비도 1년에 7만 불로 아주 비싸다.
뒤늦은 합격
대학 졸업한 지 10년. 결혼한 지 9년. 첫 2.5년은 해외에서 과외해서 학자금 갚느라 바빴고, 갚은 후에는 또 다른 해외로 이사. 미국에서 간호대 지원을 위한 예비 과목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이 2019년 봄이었으니 그 후로는 6년이 지났다. 첫 2년은 간호 과목 수업, 그다음 2년은 의대에 필요한 수업을 들었고 이사를 한번 더했다, 재작년엔 파트타임으로 스크라이빙을 했었다. 작년엔 출산과 육아, 그리고 둘째 임신. 어떻게 보아도 늦은 합격이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낭비한 돈과 시간도 많다. 내가 바라던 최상의 결과는 아니지만 합격이 하나가 있으니, 그 지지부진했던 과정들이 마무리가 된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물론 지지부진하던 그 사이에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했지만, 가정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남편에게 미안하다.
여하튼 나도 뭔가 해냈구나! 하여 기쁜 건 사실이다. 대학을 14년 만에 졸업한 느낌이다. 교회 사역이든 신학자이든 기독교 쪽 일도 내 길이 아니었고, 졸업하고 한 비영리기관에서 잠깐 일하고는, 그것도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결혼을 선택하고, 해외에서 과외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 미국에서는 드디어 나의 진로 결정을 위해 의료 분야 직업 중 간호를 결심하고는, 간호대 수업을 듣다가 끝까지 가보기로 결정하고는 의대 준비를 결심했다. 미국 학부 학위도 없이, 시민권도 없이, 이사와 편입으로 대학도 두 번 옮겨가며 여기까지 왔다. 병원에서 알바를 한 적도 있지만, 뭔가 경력이라고 할만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학생일 때도, 학교에서 졸업할 학생이 아니다 보니 붕 뜬 기분이었고, 정체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 많은 이방인 학생으로, 의대 준비를 하며 현지 친구 사귀기도 어려웠고, 한국의 안정되어 가는 친구들과 할 말도 적어져 나는 고립되어 갔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병원에서 본 스탭 중에선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작년에 엄마가 되고는, 시작한 건 끝내자는 마음으로, 좋지 않은 스펙이지만 원서를 꾸역꾸역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는 합격 통지를 하나 받았다. 개인적으론 기쁘지만, 여러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합격.
그래서 합격 발표를 받은 지난 수요일 이후로 남편과 나는 머리 싸매고 거의 깨어있는 순간에는 고민을 했다. 결론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의대를 진학한다는 것. 첫째로는, 학교에서 나오는 부분 장학금이든, 다른 기관을 통해서 받는 전액 장학금 (대신 레지던시 후 장학금 받은 햇수만큼, 기관이 원하는 곳에서 일해야 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 둘째로는, 현 직장에서 남편의 재택근무를 2년간 허락해 주어야 한다는 것. 이러려면, 입학 유예를 1년 하고 장학금 받을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어차피 나는 둘째가 6월에 태어나서, 1년 유예하는 동안 두 딸을 더 키울 수 있어 나쁜 선택은 아니다.
플랜 B?
만약에 장학금과 남편의 재택근무 승인이 불가할 경우의 플랜 비는, 올해 여름에 의사보조 Physician assistant 대학원을 지원해서 내년 가을에 입학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사실 이 플랜 B가 현실적으로 제일 좋은 대안이다. 플랜 A가 아닌 게 이상할 정도. 의사 보조가 되기 위한 전문 대학원에 합격하고 의사 보조가 된다면, 만 40세쯤 되면 학자금 빚도 다 갚았을 것 같고, 최종 학위일 것이기 때문에 따로 다른 대학원을 갈 필요도 없고 (간호사의 경우 전문 간호사가 되려면 대학원을 또 가야 한다), 우리가 자녀들과 시부모님과 같이 2년간 타 도시로 이사 갈 필요도 없으며, 근무 시간도 아이 키우기에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고생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쉽게 의대 합격을 포기하기는 아까운 마음이 든다. 우선 의대 입학 수락은 했고, 입학금은 아직 내지 않았다. 4월 초가 데드라인이다. 일단 현재는 1년 유예하며, 피에이 대학원 결과와 의대 장학금 수령 결과를 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간호대를 합격한다면, 그것도 아마 1년을 유예할 것 같다.
무엇이 맞는 선택일까
한편으로는, 만약 의대에서 주는 반액 장학금을 받는다면, 그냥 이번 7월에 몸 컨디션만 괜찮다면, 그냥 에라 모르겠다, 시작하고 싶기도 하다. 유예하고, 늦추는 것이 너무 지겹다. 딱히 대단한 스펙도 없이 의대도 늦게 들어가는데, 얼른 시작하고 싶다. 지금 시작해도, 40대 중반에나 본격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 게다가 장학금을 받는다면, 레지던시 후 지정해 주는 특정 기관에서 몇 년간 일을 해야 하니, 본격적으로 돈도 벌고 자유를 누리는 시기는 40대 후반. 빨리 돈 벌기 시작하고 재테크 잘 한 사람들은 이른 은퇴를 할 나이이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다.
한편으로, 의대는 접고 다른 선택을 해서, 최대한 빨리 돈 벌고 아이들과 여유로운 저녁과 주말을 보내는 게 내가 더 행복한 길일 것 같기도 하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가족을 위해서.
고민은 계속된다
이제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기는 정말 지났다. 남편의 도움으로 그렇게 살았다. 퇴행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다. 최대한 빨리 두 발로 서야 할 때이다. 방금도 첫째가 웬일로 자다 깨서 울고, 달래니 진이 다 빠진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길고 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다 마칠 수 있을까. 의사가 된 후에 나는 웃을 수 있을까?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수고를 요구하면서까지, 이게 옳은 일일까? 내가 그 정도로 이것을 원하나? 기회비용 때문에 나중에 후회할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결정하기가 참 어렵다.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