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인정해 주기
오늘 애착에 대한 영상을 보다가, 아이에게 세심하게 반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무심한 성격, 연년생 임신, 바쁜 일상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중 한 이유는, 꼰대의 마음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아빠, 집에 있는 엄마, 화목한 우리 부부의 관계, 양가 첫 손주라 모두가 표현하는 큰 관심과 사랑 등... 나나 남편의 어린 시절에 비해 감사하게도 우리 딸은 훨씬 안정적인 환경에서 크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아기에게 "이 정도면 되었지, 뭘 더 바라니?" 하는 마음이 있었고, 처음 엄마가 된 사람치고는 아이를 노심초사하며 키우지 않았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hyperextended right knee를 가지고 태어나 2주간 마음 졸이다가 전문의에게서 정상이라는 소리를 듣고 느꼈던 안도감이 커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해결될 거 같지 않은 문제도, 많은 경우 별거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 육아 스트레스라는 것이, 조절하지 않으면 정말 무한으로 받을 수 있기에, 아예 차단기를 내리듯 덜 걱정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간 키워온 나의 첫 딸. 아기는 낯가림이 심하지 않다. 가끔 낯선 사람들을 보고 울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잘 안기고, 누가 자기를 건드려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무던한 편이다. 집에서는 나를 찾는 거 같은데, 외부에서는 나한테서 떨어져 다른 사람이 안아줘도, 내가 다시 가까이 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은 것인지, 나를 닮아 성격이 무뚝뚝한 것인지, 좀 헷갈린다. 집에서는, 나를 찾고 내가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좋아한다. 사실 아이의 애착이 현재 어떤 상태이건 상관없이,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아이와 더 질 좋은 상호작용과 애정 표현의 시간을 가지는 일. 눈을 더 맞추고 많이 안아주는 일. 최대한 아이의 필요에 반응하는 일.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나의 딸은 "신뢰 vs 불신"의 시기를 보냈다. 주 양육자인 내가 아이의 니즈에 잘 반응해 주고 수용해 주었다면, 아이는 세상을 신뢰할만한 곳으로 여길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주 자주 지루했고, 나는 그 일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들키곤 했다. 내가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검색하는 모습, 아이가 얼른 낮잠을 잤으면 하는 마음, 분유를 먹이며 눈을 맞추다가도 한숨을 쉬거나 투덜거리는 것을 아이는 지난 1년간 다 봤다. 물론 아이는 내가 자기를 안아주고, 놀아주고, 아기가 끄집어내는 책들을 다시 정리하고, 이유식을 잘 먹을 때 좋아하는 모습, 애착 인형을 안고 있으면 귀여워하는 모습도 다 보았다.
아기는 그러니까, 내가 보호자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엄마가 되고는, 아기가 너무너무 예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고깔모자 모양의 머리에 약간 회색빛이 돌던, 3.6킬로의 내 아기. 아이가 알고 있던 예정일보다 3주 일찍 나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기도 했다. 엄마가 된 것이 얼떨떨하기도 하고 낯설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아기가 소중하고,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인건 확실했다. 내가 했던 모든 행동 중에서 Undo, Ctrl+Z 가 가장 불가능한 행동, 새 생명을 낳은 것. 세상에 그리고 역사상 하나뿐인, 나의 첫아기.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소중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하다 보니 1년이 갔다.
둘이 아웅다웅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서 일까, 첫째가 드디어 너무 예쁘다. 여전히 아주 크고, 소년미 넘치며, 무던하고 통통한 나를 많이 닮은 내 첫 딸. 단순히 보호할 대상이 아닌, 나의 보물. 나의 보물은 나를 신뢰할만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을까. 나와 남편과 우리의 커뮤니티와 다른 가족들을 통해 보여준 세상이, 따뜻하고 살아볼 만한 곳이었기를 바란다. 아니었다면, 부족한 엄마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 보련다. 측정할 수 없는 나와 너의 애착... 꼰대 같은 생각 그만하고, 너의 마음을 읽어주진 못해도 인정은 해줄게! 우리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