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발로 키운다더니
남편은 요즘 일이 많다. 정확히 언제 나가는지는 모르지만, 새벽 4시 반에 나갈 때도 있는 것 같다. 근무 시간이 유연한 직장에 다니는 덕분에, 새벽같이 나가는 대신 일찍 나간 만큼 이른 퇴근을 한다. 다만, 요즘은 일이 많아 평소 보다 일찍 나가고 평소보다 늦게 퇴근한다.
오늘은 오후 3시에 둘째 초음파 검진이 있었다. 어제나 오늘 오전, 업무가 잘 풀리고 있다고 해서 당연히 그전에 올 거라고 생각하고 오늘 검진에 대한 리마인드를 오늘 하지 않았다. 어제였던가 주초에 리마인드 했었고, 남편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기 때문. 하지만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구글맵에서 확인한 남편의 위치는 아직도 일터였다. 부랴부랴 병원에 전화해 약속을 취소했다. 초음파 검진 시 아동은 동반할 수 없어서, 남편이 첫째를 봐야만, 내가 초음파 검진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저녁 이유식을 먹이는 도중에야 집에 왔다.
지난 초음파 때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도 아직 보지 못한 둘째. 심장과 척추를 봐야 되는데 단단히 숨기고 있어 초음파를 또 따로 봐야 했던 둘째. 체중이 적은 편이었던 둘째. 언니 돌사진 찍느라 엄마가 피곤해서 뻗는 바람에, 지난 정기검진은 놓쳤던 둘째. 이번에는 엄마아빠 간의 의사소통 부재로 초음파 약속을 놓친 둘째. 갑자기 연년생 자매를 둔 부모가 된다는 것이 확 와닿았다. 이젠 둘을 책임져야 한다. 첫째에게만 쏟으면 되던 나의 관심은 이제 반으로 나뉘게 된다. 어린 언니가 있게 될 둘째도 안쓰럽고, 빨리 동생을 보게 된 첫째한테도 새삼 더 미안해졌다. 이제 거의 2달 앞으로 다가온 출산. 사실 첫째를 돌보는 것과 입시에 집중하느라, 둘째를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그래도 둘째도, 우리가 기도하고 계획한 자녀다. 내 나이도 있고, 그놈의 학업 계획도 있어 둘째를 서둘러서 가졌다. 둘째를 가졌을 때도 너무 기뻤다. 다만, 내가 요즘 힘들다. 허리는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무럭무럭 성장 중인 갓 돌을 지난 첫째는 자신을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첫째와 둘째가 최대한 덜 서운하도록 더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 참 어려운 과제다. 의대 입학이든 간호대 입학이든 1년 미룬다면, 아마 시부모님은 입학 직전에 오실 것이다. 나는 아마 8월 이후부터는, 혼자서 갓난쟁이와 아마도 걸어 다닐 첫째를 보아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은 하겠지만, 첫째와 둘째, 그리고 내가 서로 사랑하며 좋은 관계로 보내려면, 엄마의 강철 체력과 멘털이 필요할 텐데.... 한숨과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인가, 저녁은 햄버거가 당겨서 햄버거를 먹었다... 생선가스 버거와 그냥 햄버거, 2개를 먹었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탄산음료는 먹지 않았다. 사실 점심은 부침개와 떡볶이를 먹었다. 고속 노화 풀액셀. 너무 힘들어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다. 둘째가 움직인다. 그래, 오늘 엄마가 많이 먹었으니 너도 많이 먹었고, 에너지가 뻗치겠지. 둘째야 우리 잘해보자... 살아남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