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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첫째

엄마는 치즈케이크를 우걱우걱

by 다시

아기는 원래 오후 1시면 자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2시가 되어서야 낮잠을 잤다. 내가 오전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쉬느라 내가 자기랑 놀아주지 않아서 에너지를 덜 쓴 것인지, 아님 그냥 오늘은 에너지가 뻗치는지... 아기는 평소 자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잤다. 나는 자고 일어났는데도 컨디션이 안 좋아, 아이가 그저 얼른 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난 아기를 재우는 스킬이 부족하다. 그냥 아기가 자야 되는 시간에 졸리지 않으면 더 놀아줘서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 편이다. 책도 읽어주고, 관심 있어 하는 물건도 쥐어주고 (음료수병, 영수증, 등), 바닥에 앉아 눈 맞추며 놀아주기 등. 사실 요즘은 바닥에 앉아서 놀아주는 것이 너무 힘들다. 다시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특히 아이를 들고 바닥에서 일어나야 할 때 허리가 아프기 때문.


돌이 지나며 확실히 첫째의 자아가 눈에 띈다. 순둥이 첫째인 듯 하지만, 불호는 아주 확실하다. 지난번 돌잡이 거부도 그렇고, 요즘은 자기가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을 뺏으면 얼굴이 빨개지며 눈물을 펑펑 흘리고, 악을 쓰며 운다. 예를 들어, 요즘 첫째는 책장 넘기는 것을 좋아한다. 문제는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페이지를 찢는다는 것. 페이지를 찢을 것 같거나, 책을 너무 다루는 손길이 거칠면 나는 아기에게서 책을 뺏는다. 그러면 아이는 얼굴이 시뻘게지며 대성통곡한다. 또 아기는 손톱 깎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내가 아기의 손톱을 깎아주는데 아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여덟 개의 이빨로 내 팔을 앙, 물었다. 그리고 아기가 졸리지 않은데, 시간이 된 듯하여 아이를 자기 침대로 데려가면 자지러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가 만족할 만큼 내가 충분히 아이를 안아주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으면, 화를 낸다 (그런데 솔직히 이 10킬로의 아이가 너무 무겁다...). 물티슈나 젖은 수건으로 얼굴 닦아주는 것을 싫어한다. 빨대컵을 싫어한다. 또 뭐가 있지... 지루하면 엄지를 빠는 것 같다.


여하튼 첫째는 전광석화처럼 집을 기어 다닌다. 진격의 첫째. 서랍을 열고, 캐비닛을 열어 온갖 것들을 꺼내며 논다. 방문을 닫고, 내가 적당히 빨리 방문을 열어주면 좋아한다. 스위치를 눌러 불을 키는 것을 좋아한다. 수건을 밑으로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토끼 애착인형을 좋아한다. 요구르트에 블루베리 담아주면 수저로 먹다가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귤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던지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기저귀를 갈 때 아기 손에 뭐가 쥐어져 있어야 좋아한다. 내가 자기 기저귀를 갈고 짧게 마사지해주면 좋아한다. 아기가 내 어깨를 짚고 내 뒤에 서있을 때, 내가 고개를 돌려 'ㅇㅇ이가 여기 있네~' 하면 까르르 웃는다. 수건을 머리에 썼다가 벗는 것을 (아마도 까꿍~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진격하듯, 몸도 마음도 폭풍 성장하고 있는 첫째를 사랑한다. 첫째를 사랑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인색하다. 대략은 예측 가능하며 정상인 것 같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이 아이의 성장속도와 위치가 답답하다. 그래서 아이가 잠들면, 나는 폭식을 한다. 오늘은 치즈케이크 1.5조각을 먹었다. 먹는 것은 나에게 아주 빠르게, 확실한 위로와 만족을 준다. 공허한 마음도 채우고, 소화하느라 피가 위로 쏠리니 잠시 생각도 적어진다. 누군가를 만나서 스몰토크를 할 필요가 없다. 몇 걸음만 걷고, 유아 펜스를 지나, 냉동실의 냉기만 견디면 바로 내 안에 확실한 행복이 주어진다. 물론 귀여운 나의 첫째도 내 안에 큰 행복을 준다. 하지만 첫째와의 행복은 나의 소진을 전제로 한다. 나를 잊어야 아기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기가 낮잠을 자면, 안타깝게도 폭식을 하며, 한 곳에 밀어둔 나를 깨워 꺼내온다. 그리고 글을 쓴다.


누군가를 키우려면, 누군가는 밀어둬야 한다. 자기 세계가 강하고 폭식하는 엄마이긴 해도, 내 아기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4월 초까지 의대 입학을 위한 예치금을 입금해야 되는데, 하기로 했으면서도 손가락이 안 떨어진다. 금액이 크기도 하고, 진격의 통통이 우리 딸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아마도 만만치 않을 통통이인 둘째도.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해, 너희 둘을 수년간 밀어두는 것이 과연 좋은 행동일까. 나는 자주, 밀어놓은 나를 채우기 위해 폭식을 하며 엄마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선택권도 없이 밀어진 너희는, 무엇을 하게 될까. 귤을 많이 먹게 될까. 아니면 엄마 아닌 다른 어른들의 제한된 애정을 무한히 갈구하게 될까. 친절한 타인의 작은 호의에 무한 감동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치즈 케이크가 몇 조각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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