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다시 우경화로 치닫고 있을까?

by Geami

더 평화로운데 왜 민주주의가 퇴보되고 있을까? 지식이 넘치는데 왜 다시 우민화가 되어갈까?


요즘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전체주의와 유사한 사상을 따르고, 우경화된 정권이 점차 생기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예보다 더 발전하고 정보가 넘치고 평화로운데

왜 다시 슬픈 역사를 회귀하려 할까, 왜 국민들은 우민화가 되어갈까, 말이다



심해지는 극단 이기주의


자본주의사상이 오래되면서 양극화심화, 환경파괴, 사회갈등심화 등의

점점 한계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불만은 최고치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불만을 풀 대상으로 서로 탓을 하기 시작하면서,

현대적 파시즘의 유사한 사상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인터넷에 많이 보인다.

이 모든 불평등이 '이민자 때문이야, 그들을 쫓아야 돼.'

'왜 지원을 해줘? 세금 내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약자를 왜 보호해 줘야 돼? 다 똑같은 사람인데 평등해야 옳은 거 아냐?'

'범죄자 인권은 무슨, 다 사형시켜야 돼'

문제의 원점은 따로 있지만, 이렇게 서로 탓을 하면서 혐오가 조장되고, 분열되고,

모든 현재의 사회전반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동체보단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사회나 국가, 정부가 어떻게 되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주의적 무관심 속에서,

점점 대중은 감정적으로 결집하게 되고,

그 틈을 타 혐오를 조장하고 입에 발린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 보수세력들이 지지를 얻는다.

그렇게 사회적 분열로 인한 개인의 불안은 강한 질서와 지도자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고,

자연스레 독재적 리더십을 지지하게 됨으로써 우경화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는 세계 2차 대전에서도 그래왔던 흐름이며, 현재 제3차 대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



민주주의를 보란 듯이 이용하여, 현재의 독재는 교묘하게 진화했다.

선거, 헌법, 의회등 민주주의의 이점을 표면에 내세우고, 안은 독재로 슬며시 채운다.

야당은 존재하지만 법과 언론으로 탄압, 무력화하고,

선거나 발언은 자유롭지만, 언론 역사 정보를 조작해 자신들의 뜻대로 점령한다.

헌법, 의회, 법원은 그대로지만 인사에 자기 사람들을 전부 앉힘으로 사실상 독재와 다를 바 없고

총, 칼등 무력보단 분열을 이용하여 혐오를 조장하고 국민을 분열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만든다

이는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법의 틈을 이용하는 아주 교묘한 방식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법의 얼굴을 하고 이처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형태이다.

예전처럼 총, 칼을 쓰지 않기에 뚜렷한 독재의 형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언론세뇌, 역사왜곡, 혐오조장 등으로 은밀하게 작업하기에

국민들은 당장에 큰 불이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현대의 숨은 독재에 의해 시민들이 겪게 되는 불이익은 아래와 같다.


언론탄압 왜곡, 편파보도로 진실을 멀리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한다.

= 이는 진실, 정의보단 그들이 왜곡, 조작하는 대로 그대로 생각하게 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세뇌하여 비판적 사고와 생각을 약화시킨다.

= 민주주의 가치를 퇴보시키고, 다음 세대를 자신들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검찰, 경찰을 포섭하고 수사나 기소를 선별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하게 적용한다.

= 법의 공정성을 무너뜨려, 시민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권력있는 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여론을 댓글, 알고리즘, SNS 등을 조작, 몰이하여

= 비판하는 사람을 오히려 가해자로 만들어 고립시키고, 진실을 왜곡시킨다.

복지, 의료예산을 축소하고 특정층에 혜택을 집중시킨다.
국가 예산을 독점하고 자기세력에게만 특혜(공공사업 보조금, 세금감면)를 제공한다.

=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서민의 삶의 질을 수직 하락시킨다.



"옛날엔 사람을 때려야 독재였지만, 지금은 생각을 못하게 하면 그것이 독재가 된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건 '돈'이다

정보를 독점해 돈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돈으로 진실을 감추고, 돈으로 입막음을 하는 시대.

즉 시민들의 피와 같은 세금을

특정 권력과 대기업에 몰아주어, 공공의 삶을 수직하락 시키고,

권력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복지는 줄어들고, 언론과 교육을 통제, 왜곡하여

결국엔 국민의 삶 전체를 무너지게 만든다.


< 자발적 노예 생산 >


국민들을 비정규직 vs정규직, 노인 vs청년, 수도권 vs지방, 등으로 혐오, 분열시키고 경쟁시켜

계급을 나누고 사회전반에 혼란을 야기시킨다.

빠른 인터넷 속도로 예전의 10년에 걸친 세뇌를 한 번의 바이럴로 공고히 한다.

불만을 해소하게 하기 위해 이민자, 좌파, 북한, 페미, 인종 등으로 대체대상을 저격하여,

독재정권에 대한 시선을 돌리고, 감정을 배출시켜 통제가 원활하고 쉽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띄지만, 국가예산은 불투명하여 조작하고 언론을 억압하여,

대기업에 퍼주고 복지를 줄였는데도 언론에 '국가를 위해 사용, 경제대통령 탄생'이라는 기사로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에 유리하게 왜곡한다.

국민들은 서서히 줄어드는 복지로 당장의 불이익을 느끼기 어렵다. 이는 '개구리 온도조절' 효과와 같다.

이에 비판적 사고와 정보가 약한 국민들은 자신들의 복지가 줄고 특권층만 더 잘살게 되며,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 열렬히 믿고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복지 퍼주면 나라 망한다',

'최저시급을 올리면 경제가 망한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지.',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을 더 대우해 줘야지!'

이처럼 지배계층이 만든 구호를 피지배층이 그대로 믿고 반복하게 되는 멍청하고도 기괴한 구조가 탄생한다.



물질만능주의 폐해



문학, 철학 등 순수예술은 돈이 되지 않기에, 가치를 낮게 책정하고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돈이 되는 직업, 사업, 투자, 인플루언서 등으로 돈만 벌면 장땡인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맹점인 물질만능주의는 철학, 문학, 역사등 인문 지식부족을 야기시켜,

국민들이 왜곡된 언론과 여론, 역사를 그대로 믿고, 진실에서 멀어지게 하여 우매하게 만든다.

그리고 진실을 보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만 믿는 사람들은 점점

'나만 잘살면 돼', '왜 내 세금으로 약자를 도와줘야 돼?'

같은 이기주의적 사고가 팽배하게 되고, 왜곡 세뇌된 지배층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

정의를 따르기보다는 당장의 자신의 이익과 잘못된 정보만을 쫓고,

민주적인 것을 배타적 존재로 인식하기도 하며,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여,

독재가 정의인양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갈등과 혐오를 굳건히 하며, 이를 조장하는 극우세력을 강하게 만든다.



 " 철학은 돈이 안되지만, 돈만 좇으면 철학이 죽는다"

 " 돈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지만

  철학은 그 돈을 왜 쓰는지, 누구를 위해 써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



철학, 문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게 한다

이는 기존 시스템에 반기를 들게 하고, 불의를 막고 정의를 따르게 한다.

그렇기에 지배계층은 이를 쓸모없고 위험한 것이라 여겨 더더욱 왜곡해 프레임을 씌운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빨리하는 존재가 필요한데,

철학은 소비를 멈추고 생각을 하게 함으로, '왜' 소비해야 하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철학을 불편해하고, 생각 않고 비판 않는 사람을 원한다.

광고와 매체는 철학과 문학의 가치를 '쓸모없는 것'이라 왜곡하며,

물질만능의 메시지를 반복해 사람들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들어,

소비를 하는 도구로서 전락시킨다.

결국 사람들은 생각과 비판을 하지 않게 하고, 그저 소비하는 기계로 길들여진다.



"폭탄을 만드는 기술은 과학이 알려주지만.

그걸 던지지 말라고 말리는 것은 철학이다."



물질, 과학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을 쫓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암흑 속에 맴돌게 된다.

인간은 사유를 하는 존재이며,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인식하고,

더 나은 방향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찰해야 한다.

문명의 기틀이자, 국가의 영혼은 철학과 문학이다.

그것이 무너지고 사라지면, 껍데기만 남는다.

아무리 번쩍번쩍한 껍데기라 해도,

그것을 올바르게 이끌 철학이 없다면, 결국 방향을 잃은 로켓과도 같다.



자본주의에 갇힌 민주주의



세계는 이미 자본가들, 다국적기업, 금융자본, 투자사모펀드들이 초거대시스템 전반을 지배한다.

민주주의 위에 자본주의가 있는 형태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민주주의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실질적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자본이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지만,

자본이 통제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장악하고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표는 공정하지만, 이를 움직이는 건 정치자금, 로비, 언론장악, 왜곡등 자본이 여론과 제도를 좌우해 큰 힘을 지닌다.


<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같은 그림자>


형태와 높낮이는 많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는 당,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자본주의는 초거대 자본(극소수기업, 재벌)들이 권력을 독점한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권력을 쥐는 순간 균형을 잃기 쉽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문명은 거대한 사회집합체를 형성한다.

결국 인간이 모여있는 한, 지배자 vs피지배자, 권력자 vs노동자 등의

체제는 다르지만, 구조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 자유라는 프레임 >


겉으론 "민주적 선택, 자유시장, 평등한 기회"를 외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조직 > 위계질서 > 권력독점 > 착취 > 계급고착화'의 형태가

진하든 흐리든 반드시 존재한다.

인간은 권력과 자원을 손에 쥐게 되면, 더 많이 가지려 할 뿐 절대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극우, 반동 > 민주, 진보 > 또다시 극우, 반동 > 민주, 진보'로 반복된다.

하지만 이것이 예전과 똑같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의 구조는 큰 틀에서 반복되고 있음에도,

점점 인권과 시민의식, 제도적 장치는 분명히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허상의 자유에서 깨어날 때



< 희망이란 이름의 복종 >


'열심히 하면 올라올 수 있어' 그러나 현실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 믿음은 희망고문이 되어 날개를 꺾고 체제에 순응하게 만든다.

민주, 자유, 평등이란 말 자체가 이처럼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세뇌하기 위한 커다란 장치일지 모른다.

루소는 말했다.

" 우리는 자연 상태보다 더 부자유하게 살고 있다. "

마르크스는 경고했다.

" 자유란 허상이자,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

즉 인간은 자연상 태보다 문명 속에서 더 불행하고 부자유하게 살고 있는 셈이다.

태어나자마자 규범, 관습, 예절, 법률, 시장, 시험, 스펙, 보험, 연금 등의 제도장치 속에 편입되어,

끊임없이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간다.

심지어 인간은 멋대로 죽기도 힘들며, 죽을 때조차도 돈이 든다.


자연의 동물들은 사냥하거나 채집하여 한 끼를 먹고, 그 후엔 쉬며 자연을 누린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온갖 제도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자유를 억압받고,

콘크리트 상자 속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앉아서 보내야 한다.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을 불쌍하다고 여길 처지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동물은 매일의 먹을 먹이만 구하면 되지만,

인간은 평생을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며 제도 속에서 투쟁해야 한다.

공부, 사회제도, 인간관계, 취업, 결혼...

이 모든 건 자산, 노후, 집을 위해 평생을 일해야 함을 의미한다.

동물은 어디서든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집을 가지기 위해 평생을 일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 동물 중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은 평생을 '감옥'을 '자유'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인간만이 꿈을 꾼다 >


그렇다고 동물보다 불행하다 단정 지을 순 없다.

분명 그들보다 훨씬 힘들고, 복잡하고, 괴로운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 인간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 그 자체가 어쩌면 자유 일지도 모른다

지배층, 피지배층, 체제, 계급 등은 인간이 모여 사는 한 반드시 생겨난다.

세상에 완벽한 평등을 실현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라'는 건 사회가 만든 채찍이지만,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고 행복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자유가 인간에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하게 반복되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이 다시 퇴보하고, 인간이 다시 통제되고 있을 때,

개인은 그 안에서 어떤 저항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는지,

‘자유’와 ‘기회’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순응하게 만드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비판해야 한다.

비판 없는 자유는 없다.
그리고 그 비판은 꿈꾸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자기 안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상상하고, 꿈꾸는 것.

그것이 진짜 세상을 움직이고,

진정한 자유를 향하는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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