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줘.

“요즘 스타일-part 1”

by 카테난조





“미안해요, 소비자가 원하는

요즘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제 이런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아요.

재미가 없어요.”




오늘도 원고를 거절당했다. 또 비슷한 이유다. 이제 조언인지 비난인지 더는 구별하기 어렵다. 싸움의 대상도 없는데도 진 기분이다. 노력도 열정도 다 불태워버리라. 문장마다 잠시 숨을 쉴 공간을 두어 작가의 생각을 고민하게 했던 예전이 그립다. 바로 읽히는 게 책이라 말할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 안고 살아가는지 인상을 너무 찌푸려 이마의 주름이 한가득한 편집장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재미 위주로 책을 만들어 가치를

그렇게 떨어뜨리고 싶다면

차라리 삼류 지라시나 만들어!!’


하지만 현실은....


“하하하, 재미가 없군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편집장님, 다시 한번 써볼게요.”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뭘 어쩌겠는가? 평생 을의 처지를 대변하는 나이다. 그래 내가 또 틀린 거지. 내가 틀린 거야. 내가 잘못된 거라고. 마치 무슨 유행처럼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만의 생각을 닮으라고 강조하는, 서양 문화에 시나브로 문화 식민지로 전락하는 2021년 대한민국에서 적응하기 힘들다. 100m 육상 경기처럼 세상의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따라가라 말하는 2021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게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인가? 난 철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경영학도로 인생을 출발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종교는 기독교이다. 가르치는 내용과 기독교의 교리가 충돌해 가끔은 내가 믿고 있는 게 무엇인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가르치는 학생한테 신념처럼 말한 조언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몸을 억지로 질질 끌어가고 있다.




“애들아, 내일 죽을 확률보다

10년을 더 살 확률이 통계적으로 훨씬 높아.

10년 후, 미래의 너에게 미안한 행동을 오늘 하지 말아라.”




이 빌어먹을 조언의 출처는 도대체 어디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누구의 생각을 살포시 훔쳐 내 뇌의 다섯 번째 줄 위의 세 번째 서랍에 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알 수는 없는데 오늘의 행동을 미래의 나를 위해 투자 중이다. 우리끼리 말하지만, 투자라 말하기도 어렵다. 더는 내게 남은 선택지가 없다. 철학을 가르치는 게 현재 남아 있는 내 삶의 유일한 길이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산다 한들 미래의 내게 떳떳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삶의 남은 시간을 온전히 내게 집중하기는 어려워서다. 난 두 아이의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늘 그렇게 사는 거다. 재산 한 푼 남기지 않고 하나님 곁에서 호의호식하는 아버지를 처음에는 원망했다. 아이를 키워 보니까 알겠다. 내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몇천 배는 가족에게 헌신한 분이다. 지금이라도 아버지 무덤 앞에 달려가 생전에 몹쓸 행동으로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은 지난날을 사죄하고 싶다. 그런데 난 끝까지 불효자다. 아버지를 다시 만날 공간이 없어서다. 험한 세상에 나를 홀로 남겨둔 채 영정사진 안에서 속없이 환하게 웃는 아버지 모습이 싫었든지, 그리 꼰대질만 하더니 결국 가실 때는 친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인생을 비웃고 싶었는지, 평생 나이롱 기독교 신자로 살아가다가 갑자기 신앙심이 생겨 제사를 지내기 싫었든지, 아버지의 시신을 끓어오르는 분노의 마음을 대변한 화장터에 보낸 후 공포로 가득한 공간에 아버지의 가루를 유기했다.





난 물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바다에 버리고 왔다.

현대판 고려장이다.

그 당시는 내 나름대로 복수였다.

결국, 학생에게 강조한 조언을 지키지 않았다.

지금의 나에게 엄청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버지, 오늘은 너무나 사무치게

못난 아들이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