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6. 사실과 진실은 구분하기 어렵다.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사실에는 옳고 그름은 없다. 다름도 없다. 다툼의 여지도 없다. 바꿀 수도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과거다. 인간의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옳고 그름도, 다름도, 다툼도, 바꿀 수도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은 인간이 선택한 과정의 결과다. 결과를 이해하는 과정은 진실의 여부다. 진실의 여부를 판단하려면 사실의 조각을 모아야 한다. 사실의 조각으로 진실의 퍼즐을 완성한다. 문제는 퍼즐의 방향이다. 조각의 방향에 따라서 전혀 다른 퍼즐을 완성해서다. 그렇기에 조각의 방향에 따라서 도출한 진실은 누군가에게는 거짓이다. 결국, 진실과 거짓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앞과 뒤다. 이는 사실이다. 나 역시 이를 활용하려 한다. 사실의 단편[146]을 모아 하나의 진실로 이르는 선전문을 쓰려한다. 중고 서점에서 볼일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 조각의 방향을 고민해야겠다. 물론 선한 방향이다. 서민에게만 유독 가혹한 대한민국을 조금은 살만한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꾸어본다.
미약한 나의 글자가 모여 의미가 되어
당신의 안식처가 따뜻해진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7.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켠 후, 사실의 단편을 검색한다.
서민, 가난, 사기, 사건, 사고, 난방, 음식, 인플레이션, 양적완화, 대물림, 영끌, 빚투, 벼락거지, 소비자지수, 이자율, 채권, 주식, 아파트, 재테크, 전쟁, 지구온난화, 경제, 기름값, 기준금리, 저축
인터넷에서 찾은 사실의 조각을 한참 쳐다본다. 이들을 연결해 하나의 진실을 만들어야 한다. 소설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소설은 결말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린 후 쓰기 시작한다. 즉, 하나의 진실을 정한 후, 사실의 조각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다. 일단, 밑그림이 정해지면, 각 장의 내용을 캐릭터에게 맡긴다. 이는 캐릭터를 창작해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캐릭터의 마음을 헤아려, 작가의 생각이 아닌 캐릭터의 생각을 온전하게 글에 담으려 노력하는 행위다. 작가는 펜을 들어, 캐릭터의 발자취를 따를 뿐이다. 하지만, 이때 작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캐릭터의 행동은 어디로 튈지, 작가 스스로 상상하기 어려워서다. 정말로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게 또 소설을 쓰는 맛이다. 다만, 밑그림 없는 글쓰기를 시도한다면, 한참을 캐릭터와 오붓한 여행을 즐기다가 문득 깨닫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이게 참 죽을 맛이다. 그렇기에 캐릭터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으면 한다. 집필 중인 책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여서다. 반면에, 지금 쓰려는 선전문은 사실의 단편을 모아 하나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소설과는 반대 방향이다. 방향 없는 글을 쓰려니 시작하기가 어렵다. 검색한 키워드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서민, 가난, 사기, 사건, 사고, 난방, 음식, 인플레이션, 양적완화, 대물림, 영끌, 빚투, 벼락거지, 소비자지수, 이자율, 채권, 주식, 아파트, 재테크, 전쟁, 지구온난화, 경제, 기름값, 기준금리, 저축
그래, 한 단어가 떠오른다.
행복
8. 하나의 진실을 찾았다. 열거된 키워드는 천사의 포옹으로 구름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향하려는 모든 이의 간절함이다. 간절함의 끝은 누구나 같다. 행복이다. 그래, 행복한 선전문을 쓰자. 그러려면, 알아야 한다. 단시간에 행복해지는 최선의 길은 무엇인지.
“효상아, 선전문은? 네 작업이 끝나야 본격적으로 투자자를 모을 수 있어.”
사무실이다. 우현이 아버님과 영상통화 후 2주 정도 지났다. 고심한[147] 선전문을 우현이와 승기에게 평가받는 날이다. 단시간에 행복해지는 최선의 길을 선전문에 담는 게 쉽지 않았다.
“임 대표, 일단 초안은 끝냈어.”
“효상아, 그럼 빨리 보여줘. 너의 결과물을.”
승기답지 않게 보챈다. 승기도 아버님과 영상통화 후 이 사업에 진지하게 임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래, 깜짝 놀랄만한 선전문을 공개할 터이니 기대해.
“임 대표 그리고 승기야, 선전문의 키워드를 ‘행복’으로 정했어.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할 테니 잘 들어봐. 중간에 이야기 끊지 말고. 특히 승기 너.
모든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은 조금씩 달라. 예를 들면, 우현이는 영업사원으로, 승기는 철학 강사로, 그리고 난 글쟁이로. 신기하지 않아? 우리 셋은 분명 비슷한 게 많아. 그러니 지금도 이렇게 모여 좋은 일을 도모하려 하고. 안 그래? 그런데도 우리가 선택한 삶의 여정은 너무나 달라.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이의 삶의 무게와 방향 역시 다르겠지. 이러한 다름이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사회를 바르게 구성하려면 무엇보다 다름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해.
각자의 다른 선택을 최선이라 믿으며 여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어. 다름을 선택한 가치의 끝은 무엇일까? 난 행복이라고 생각해. 그렇기에 사람들은 행복하려고 다름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런데 말이다. 승기야 그리고 우현아, 우리 지금 행복하니?
행복하지 않아.
최고의 선택을 했는데도.
우리는 늘 불행하지.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다름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 없다고.
행복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예를 들어서, 우리는 행복을 정량적으로 말하지 않아.
누구는 80% 행복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60% 행복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40% 행복하다고 말하고
만약, 행복을 이처럼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면, 선택한 방향에 따라서 행복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40% 행복을 얻으려고 A의 길을 걷고
누군가는 60% 행복을 얻으려고 B의 길을 걷고
누군가는 80% 행복을 얻으려고 C의 길을 걷고
하지만 이러한 정량적 행복은
존재하지 않아.
한국인에게 행복하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모호하게 답해. 나쁘지 않다든지, 그저 그렇다든지, 평범하다든지,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쁘다든지.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지. 행복하냐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하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답변은 딱 2가지뿐이야.
행복해
또는 행복하지 않아.
행복의 정의를 생각해 본 적 있어? 원하는 게 이루어져 충분히 만족하는 상태라면 그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해. 모든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원하고 하고 싶은 게 조금씩 달라.
그렇기에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행복으로 이르는 첫 번째 단계야. 이는 누구도 예외가 없어. 원하고 하고 싶은 게 없다면 누구도 마지막 단계인 행복으로 이룰 수 없으니까.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야.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일단,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면, 행복으로 이르는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해. 각자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다름을 선택하는 거야. 아까 이야기했지만, 우현이는 영업사원으로 승기는 철학 강사로 나는 글쟁이로 다름을 선택했어. 원하고 하고 싶은 게 다르니까. 선택의 범위와 종류도 다양해지는 게 당연하지. 문제는 말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선택의 다름만 생각해. 하지만 이것도 행복의 단계로 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야.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다시 정리하면,
행복하려면 우리는 원하고 바라는 게 있어야 해.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다름의 선택을 해야 해. 예외는 없어. 첫 번째를 충족하지 않으면 두 번째로 나아갈 수 없어. 행복으로 이르는 길은 처음부터 일방통행이라고. 그렇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야.
지금부터가 중요한 이야기니까 잘 들었으면 해.
아까 행복의 정의를 이야기했어. 행복하려면 원하는 게 이루어져 충분히 만족하는 상태가 되어야 해. 문제는 말이다. 만족하는 상태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아. 생각보다 짧고. 무엇보다 그 상태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더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를 들어서,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연봉 1억’의 꿈을 이루고 싶어 해. 그리고 ‘연봉 1억’을 달성했다면, 그때의 만족감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거야.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연봉 1억’을 받은 그 이후도 그때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더는 ‘연봉 1억’으로는 삶의 자극을 느끼지 못해. 익숙해졌으니까 그리고 당연한 삶이니까. 그렇기에 더 큰 자극을 위한 목표를 세울 거야. 결국, 행복한 상태를 지속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는 거야. 다른 선택을 한다고 행복한 상태를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이루어도 행복한 상태는 제한적이야. 이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지, 다름의 문제라 말하기 어려워. 물론 정량적인 문제도 아니야.
프로젝트에서 고민해야 하는 질문의 지점은 이거야. 우리 역시 타깃에게 행복한 상태를 지속하기는 어려워. 그렇기에 그들에게 만족한 상황을 제공해 행복을 인위적으로 만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봐. 좀 이해하기 어렵지? 풀어서 설명하면, 아까도 말했지만, 행복하려면 반드시 첫 번째 단계를 거쳐 두 번째로 가야 해. 이는 우리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서도 안 돼.
행복을 보장한다는
달콤한 속삭임은
가짜니까.
결국,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그들이 가지지 못한 자원을 활용해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 즉, 삶을 다시 설계하는 용기를 선물하는 거야. 우리의 결과물이 그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어서는 안 돼. 마치 본업의 발달을 포기하고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게 해서는 안 돼. 그건 이러한 선택을 하는 게 현명한 행동이라고 믿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들의 무지를 이용하는 거라고. 사기에 지나지 않아.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그들의 무지를 이용한다면,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그들의 돈을 우리에게 미친 듯이 던질 거야. 그야 뻔하잖아. 현실적인 대안이 우리라면 그들은 더는 새로운 삶을 꿀 이유가 없으니까. 그저 그들의 월급을 모두 우리에게 던지겠지. 돈이 목적이니까. 일확천금이 목표니까.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한다는 헛된 프레임에 갇혀 행복을 좇으니까. 그래, 그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배부른 돼지의 삶을 살아가게 될 거야. 배부른 돼지로 살아간다 한들, 행복은 지속하지 않아. 행복이라는 놈이 원래 그래. 영원한 상태를 약속하지 않아. 그렇기에 행복하려면 끊임없이 갈구해야 해. 그렇기에 행복의 갈구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만 가능해. 행복의 갈구는 항상 불완전한 상태에서 일어나니까.
난 말이야, 잇속만 챙기는 비겁한 성공을 원하지 않아. 비록 우리 모두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기는 해도 그러한 성공을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아버님과 영상 회의 후, 확신했어. 아버님은 그러한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난 말이야, 우리 사업의 결과물로 이들이 스스로 원하고 하고 싶은 게 생겨 다름의 선택까지 이어지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 믿어. 그럼 우리와 그들 모두에게 돈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그것으로 우리의 역할은 다 한 거야. 우리가 제공하는 결과물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큼 숭고한 일도 없어. 흥분되지 않아? 우리가 그러한 중대한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하니? 임 대표, 승기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새로운 길을 열어줘 희망을 선물하는 전도사야. 그리고 그 희망은 다른 희망을 낳는 선한 영향력의 산물[148]이 될 거야. 우리의 대상인 소외된 서민과 중산층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우리와 함께하는 게 큼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to be continued....
[146] 단편 (斷片): 여럿으로 끊어지거나 쪼개진 조각.
[147] 고심 (苦心): 몹시 애를 태우며 마음을 씀.
[148] 산물(產物): 어떤 일의 결과로 생겨나거나 얻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