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2: # 프로파간다, 3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12:

# 프로파간다, 3화







9. 잠시 말을 멈추고, 임 대표와 승기의 반응을 살핀다. 그들의 표정을 살피니 내 의도는 성공한 듯하다. 특히, 승기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뭐에 홀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승기가 한마디 거둔다.



“효상아, 정말 놀랍다. 일반적인 마케팅 관점에서 수익을 내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어. 회사는 영리 추구가 목적이니까. 하지만 이처럼 원초적인 문제를 다루리라 예상을 못 했어. 그동안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살았던 게냐?


예전에 말이다. 강변역 포차에서 1년을 지켜봤는데 변한 게 없다고, 그래서 글쓰기를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다그쳤던 것 기억해? 오히려 내가 다 부끄럽구나. 네가 꿈꾸는 삶을 이해하기에는 옹졸한 사람이었어. 누구를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세상의 모든 고민은 혼자서 한다고 생각했어. 너와 임 대표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고 믿었어. 네가 말한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려는 게 너희들의 최종 목표라 믿어서야. 그래서 한심하게 생각했지.


이번에 일을 같이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 모든 이는 각자 지닌 소명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스스로 얼마나 부족한지도. 난 오만했어. 신이 있다면, 전세 사기를 통해 성장하기를 원했는지도 몰라. 전세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너희 둘을 여전히 계몽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을 거야. 이제는 알겠어. 너희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나였어. 그래, 효상아, 그래서 우리가 이들에게 행복의 길로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효상아, 너를 통해 새로움 꿈을 꾸고 싶어 졌어.”





10. 승기의 반응은 이례적[149]이다. 승기의 반응으로 난 확신한다. 많은 이가 우리와 함께하리라고.



“고마워 승기야, 그렇게 말해줘서. 그래서 말이야, 특별한 사람으로 그들이 느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어. 흔히 말하는 VIP 조건이 있어.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VIP 고객이 되려면, 연간 1억 정도를 소비해야 해. 평범한 사람이 받는 월급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이야. 질투 나지 않아? 나는 질투도 나고 상대적 박탈감도 느껴. 그들에게 이처럼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연간 1억을 소비해서? 물론 어느 정도는 부럽겠지.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야.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VIP라는 특정 집단에 속해서 아닐까?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둥지를 만들어 심리적 안정감을 이루려 해. 심리적 안정감이 없다면 행복하기도 어려우니까. 그렇기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각자의 집단은 인간에게 중요해. 불안을 잠재우는 최소한의 장치가 인간에게는 필요해. 우리는 그것을 준거집단이라고 해. 준거집단은 다양해. 때로는 가족으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학교에서, 때로는 회사에서, 때로는 정치로. 때로는 정치로. 이러한 준거집단의 규범을 통해서 인간은 판단하고 행동해. 어떠한 준거집단에 속해 있느냐가 결국 대부분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준거집단은 인간의 가치관을 만드는 가치 기준을 제공하니까.


그렇기에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 불안을 잠재워야 해. 우리가 그들의 새로운 준거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야. 그렇다고 이들을 강제하거나 이들에게 일률적인 가치관을 심는다는 뜻은 아니야. 유기적[150] 관계로 서로를 쉼터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그들과 우리는 떼어낼 수 없는 정치적 동맹체인 하나의 생물이 되어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할 거야.


그래서 우리가 조성하려는 생태계의 기준으로 새로운 VIP를 만들 거야.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것으로는 절대로 VIP가 될 수 없어. 기존의 VIP가 아닌 완전하게 다른 새로운 개념의 VIP. 돈으로도, 학벌로도, 권력으로도, 외모로도, 그 어떤 세상의 좋은 조건으로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앞으로 이 생태계를 ‘카테피아’라고 부르려고. ‘카테’와 ‘유토피아’의 합성어야.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조건으로는 절대로 ‘카테피아’에 입장할 수 없어.


오직 소외된 서민과 중산층만이 VIP로 입장해 ‘카테피아’에서 태평성대[151]를 누리게 될 거야.

그래서, 선전문은 귀한 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초대장 형식으로 진행하려고.”





11. 임 대표가 입을 삐죽거린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나?



“효상아, 네 생각은 잘 알겠다.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해 우리만의 기준으로 VIP를 선정한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해. ‘카테피아’라고? 마음이 뭉클해지네. 그런데 말이다, 실현이 가능한 계획인 거야? 우리는 사업하려고 모인 거야.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야. 아무리 들어도, ‘카테피아’로 어떻게 돈을 버는 수단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뭐로 돈을 벌어?”



우현이가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수익 모델은 처음부터 블루 고스트에서 제공하는 것 아니었나? 이미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인제 와서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승기 앞이라 똑똑한 척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 최대한 자존심을 건들지 않고 이야기해야겠다.



“임 대표, 네 말이 맞아. 수익 모델은 정말 중요해. 그래서 임 대표와 블루 고스트가 있다고 생각해. 임 대표와 블루 고스트와 없었다면 사업조차 시작할 수 없었으니까. 안 그래? 그래서 늘 임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이야.”



우현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 말을 부정하지 않는 표정이다. 기분이 좋은 게 틀림없다. 나 참, 때아닌 사내 정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것도 가장 친한 우현이에게! 우현이가 대표는 대표인가 보다. 평소라면 승기가 날 선 한마디를 던졌을 텐데, 오늘은 잠자코 있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조한다. 우현이에게 아부하는 승기라니! 승기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이제 이곳은 더는 친목 도모 모임이 아니다. 이곳은 회사다. 그나저나 우현이를 보면서 느끼지만, 정말 자리가 사람을 비슷하게 만든다. 우현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현이는 여전히 나와 승기를 존중한다. 다만, 가끔 거들먹거리는[152] 태도를 보이면, 내가 아는 우현이가 맞나 싶다. 영업 사원으로 살아가면서 그렇게나 싫어했으면서. 거들먹거리는 바이어를.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초심을 왜 다들 잃을까? 아니면 변한 게 없는데, 그저 내가 우현이를 시기하나?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사내 정치는 우리 셋 중에 우현이가 달인이다. 그동안 업무와 관련 없는 사내 정치로 고생한 우현이가 딱하게 느껴진다. 승기도 나도 사내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난 회사를 그만두었다. 승기는 사내 정치를 거부한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이 없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 둘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정치질이라니! 우현이가 기분 좋은 이 타이밍을 잘 살리자. 뭐가 됐든, 우현이가 오케이를 해야, 이 회의는 끝난다.



“그래서, 임 대표, 나와 승기는 사람을 모으는 작은 역할이잖아. 그 작은 역할을 잘 해내려면, 소외된 서민과 중산층이 우리 사업에 관심이 있게 해야 해. 그들이 오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억지로 끌고 와도 결국 돌아갈 거야. 진정성이 없다면. 우리는 진정성이 필요해. 그래야 타깃은 계속 우리와 함께할 거야. 그러려면 이들의 충성도를 높일 환경을 만들어야 해. 기존의 세상에서 아등바등[153]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곳에서도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그러려면 새로운 생태계 조성은 필수적이야.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해야 임 대표와 블루 고스트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어. 임 대표가 고생해서 만든 소중한 기회를 허무하게 놓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임 대표?”



승기는 우리의 대화로 신이 나서 벌써 무언가 된 것처럼 우쭐거린다. 신바람이 난 승기가 입을 연다.



“그래, 효상아, 새로운 생태계인 카테피아를 조성하려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심장이 나대는 소리가 들려? 미치겠다.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 그동안 있었던가 싶다. 무엇을 해야 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12. 글을 쓰겠다는 이유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승기를 포함한, 나를 걱정하는 수많은 시선에 둘러싸여 원하는 길을 걷는 게 맞는지를 수없이 자문했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점점 변한다는 것을. 사람과의 소통으로 조금이나마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 하지만 초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방에 홀로 처박혀 의미 없는 낱말을 모아 문장을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또 쌓여만 갔다. 과거의 사건과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문장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반복적인 몸짓은 글쓰기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참회? 아니다, 푸념에 불과하다. 나도 참 힘들게 살았으니까, 누가 좀 알아달라는, 누가 좀 봐 달라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누군가의 손길이 간절하다고, 나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 달라고.



참 쓸모없는 겁쟁이다.



진심이었지만 결국 거짓말이 돼버린, 프러포즈하면서 말했던 달콤한 다짐들, 아이의 성장만큼 비례하는 양육비의 부담, 어느 순간부터 연차가 쌓일수록 퇴보하고 있다는 비참함, 그리고 얼마나 멍청한지 스스로 증명한 골방에 갇힌 한심한 내 모습. 그리고 청춘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한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우울함으로 40대를 보낸다. 불안함을 감추려고 더욱더 글쓰기에 몰두[154]한다.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겁쟁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내 공간의 자물쇠를 굳게 채우고 살아간다. 그렇게 세상에서 나를 지우려 한다. 그렇게 잊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승기와 우현이의 시선은, 홀로 지낸 무한의 시간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속삭인다. 나를 바라보던 불안한 시선과는 사뭇 다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시선이다. 고맙다, 승기야 그리고 우현아. 너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외롭지 않구나. 더는.



“승기야, 쓰려지더라도 돌아갈 작은 쉼터인, 이 공간에서 스스로 꿈꾸어 나아갈 수 있는, 우리만의 아지트이며 위로의 안식처인 카테피아를 어떻게 만들지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말해줄게. 그래, 정말로 두근거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to be continued....




[149] 이례적 (異例的): 보통 있는 일이 아닌 특이한 (것).

[150] 유기적 (有機的):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갖는 (것).

[151] 태평성대 (太平聖代):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이나 시대.

[152] 거들먹거리다: 신이 나서 잘난 체하며 자꾸 도도하게 굴다.

[153] 아등바등: 몹시 억지스럽게 애를 쓰거나 우겨대는 모양.

[154] 몰두(沒頭): 어떤 일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열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