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9.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채널의 구독자 중 100명을 초대해 사업 설명회를 하는 날이어서다. 사업 설명회가 끝나면, 이들은 우리의 충실한 나팔수 역할로 우리 사업을 알리리라 짐작한다. 그렇기에 오늘 이들에게 전달할 내용은 중요하다.
다른 이에게는 어둡지만,
우리에게는 빛이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차가움이
우리에게는 더워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거칠지만,
우리에게는 부드러워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흐리지만,
우리에게는 선명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멀지만,
우리에게는 가까워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길지만,
우리에게는 짧아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어렵지만,
우리에게는 쉬워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거짓이지만
우리에게는 진실이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복잡하지만,
우리에게는 간단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우리에게는 가능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혼란스럽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더럽지만,
우리에게는 깨끗해야 하고
다른 이에게는 해롭지만,
우리에게는 유익해지는
그래서,
다른 이는 빈곤해지며
우리만 부유해지는.
그런 기운차고, 생생하며, 활발하고, 강하며, 완전하면서 살아있는 내용으로 이들의 마음을 휩쓸어야 한다. 그나저나 이 역할을 누가 하지? 임 대표는 아직 말하지 않는다. 잠정적으로 승기가 하리라 생각한다. 승기 말고는 이러한 언변 능력을 지닌 자가 우리 중에 없다. 그렇다고 누구를 초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누구를 초빙한들 우리의 사업을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그런 것을 아는지 승기도 열차 안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본다.
“오늘, 중요한 손님을 특별하게 모셨어. 사업 설명회의 정점을 찍으려면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할 것 같아서. 효상이와 승기 모두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모셨으니 기대해. 그리고 승기는 이분 발표가 끝나면 간단하게 정리 부탁해. 좀 열정적으로 발표해 줘. 그래야 사업 설명회를 들은 그들이 우리를 열렬하게 홍보할 테니까.”
승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승기는 메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 된 건가? 그래, 말은 안 해도 승기 역시 부담이 내심[171] 크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누구를 불렀다는 거지? 궁금하기는 하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부산역에 도착합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빠르고 편안한 KTX를 이용해 주신 고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We will soon arrive at Busan station, the final destination of this train. Please make sure you have all your belongings with you when leaving the train. Thank you for traveling with fast and convenient KTX.”[172]
10. 부산에 도착해 약속 장소로 이동 중이다. 사업 설명회의 장소는 해운대역 해리단길에 위치한 카페이다. 호텔의 비즈니스룸을 빌려서 진행할까도 고민했다. 현재 사무실은 워낙 작아서다. 또한, 투자자를 모으려면 클래식하게 진행하는 게 정석적이다. 투자설명회의 성공 여부는 모름지기 장소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장소의 분위기에 따라서, 같은 메시지도 파급력이 다르다. 채널의 구독자 성향을 파악하면 자연스레 콘텐츠도 그들의 입맛에 맞게 달라진다. 초기에는 인문학과 관련한 내용으로 구독자를 모집했지만, 모집률은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역시 구독자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진행한 결과다. 현재는 돈과 관련한 재테크 내용이 주류다. 무엇보다 우리 채널의 특징은 인문학 내용을 접목해 돈을 빠르게 벌었던 인물을 위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 역시 구독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나온 방법이다. 그때부터다. 구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많은 이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대부분 내용의 작성은 인공지능 챗봇의 역할이다.
사람들은
‘적당한 전문가’를 무척이나 신뢰한다.
11. 구독자는 모른다. 하긴,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들이 신뢰하는 자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이들을 속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질문의 깊이에 따라서 챗봇의 대답도 달라져서다. 질문의 질은 순전히 우리 세 명의 몫이다. 주로, 승기의 역할이다. 승기는 나름 챗봇과 토론하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그동안 이처럼 전투적인 토론을 인간과 나누기는 어려워서다. 하긴, 누가 승기의 매운 두리안 맛을 끝까지 견딜 수 있겠는가? 미움과 혐오로 얼룩진 상대방의 몸짓이 승기를 향한다면 그때가 비로소 대화의 종료다. 승기는 인공지능 챗봇과 나름대로 심도 있는 토론을 토대로 내용을 작성한 후 작업자에게 대본을 보낸다. 그렇기에 구독자의 증가는 ‘적당한 전문가’와 승기의 공동 작품이다. 그리고 구독자를 속여서 무엇을 얻으려는 욕심은 애초에 없다. ‘카테피아’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안식처이어서다. 사업 설명회의 장소도 구독자의 의견으로 정해졌다. 선별된 구독자 100명을 우리는 ‘카쿠르터’라 부른다.
카쿠르터는
‘카테피아’와 ‘리쿠르터’의 합성어다.
12. 이들은 ‘카테피아’를 조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거다. 단톡방을 만들어 이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뭉글해지는 ‘카테피아’의 청사진을 공유했다. 물론, 반신반의하는 이들의 공격적인 질문은 나와 임 대표 그리고 승기를 가끔 난처하게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진심을 이들에게 전하려 노력한다. 우리의 비전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카테피아’는 한낱 꿈에 불과해서다. 우현이와 승기도 선별된 100명의 카쿠르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 안다. 그렇기에 임 대표와 승기는 달콤한 당근을 이들에게 뿌린다. 예를 들어서, 임 대표는 주로 미래의 물질적인 보상을 모두에게 약속한다. 모두에게 물질적 보상의 약속은 의심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감성과 감정을 자극해 열정만 보이는 주황빛으로 물든 임 대표의 의심스러운 청사진을 믿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주황빛의 미래가 실현 가능한 계획이라고 이들에게 이성적이며 타당하며 논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성실함과 인내력을 바탕으로, ‘카테피아’를 완성할 수 있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이는,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갈색빛의 성숙한 이정표가 필요했다.
이는 승기의 역할이다.
13. 승기는 임 대표와 상의 후,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 수익을 창출하기 전까지 100명의 카쿠르터에게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단톡방에 공지했다. 활동비라고 해서 이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이들에게 주는 작은 용돈을 좀 더 거창한 용어로 부를 뿐이다. 3개월 동안 매달 10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물론, 이를 진행하려면 임 대표가 임 대표의 아버님, 정호님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바로 집행하기에는 상당히 큰돈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3개월 동안 지급하려면 3억 원이 필요해서다. 더군다나, 이들 중, 몇 명이나 카쿠르터의 역할을 제대로 할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사업을 널리 알리는 잠재적 투자자이다. 그렇기에 카쿠르터는 ‘카테피아’의 건설을 위한 첫 단계, 티핑 포인트[173]로 안내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정호님의 승인을 받은 후, 이들에게 100만 원씩 지급한다. 블루고스트의 공격적인 투자로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임 대표와 승기는 프로젝트에 사활[174]을 걸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여하튼, 처음에는 호텔의 비즈니스룸을 빌려 블루고스트의 자금력을 과시하려 했지만, 카쿠르터의 요청으로 해리단길에 위치한 카페를 빌려 사업 설명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카쿠르터가 모인 단톡방은 이미 축제 분위기다. 부산까지 오는 교통 비용과 식대를 우리가 지원하기로 약속해서다. 어느 순간부터 단톡방에서 이들만의 구호가 울린다. 아직은 프로젝트에 관련한 어떠한 업무도 지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스스로 구호를 만들었다. 이건 좀 놀랍기는 하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가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오늘도 단톡방에 울리는 카쿠르터의 외침은 진지하다.
“카테피아가 실패하면 내가 잃게 될 것은 삶 그 자체이며,
카테피아가 성공하면 얻게 될 것은 모든 것이다.”
to be continued....
[171] 내심 (內心): 속마음.
[172] 한국철도공사
[173]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어떤 행동이나 결정의 기점 또는 절반 지점을 말한다. 즉,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나 결정적인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티핑 포인트는 시장에서 이 제품이 성공할 수 있는 여부를 결정하는 지점일 수 있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제품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출처: ChatGPT]
[174] 죽기와 살기라는 뜻으로, 어떤 중대한 문제를 생사(生死)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