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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 아방가르드- 제로베이스, 1화

by 카테난조



제로베이스와 어울리는 디스토피아 분위.png




Episode 5:

# 아방가르드- 제로베이스, 1화







1. 청송동에 머문 지, 얼추 반년이다. 독신세를 내지 않으려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그리워서, 새로운 둥지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 싶어서, 과거의 나를 하나둘 지운다. 이곳에 오니,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느낀다는 표현은 주관적이다. 정정하련다. 사람의 따뜻한 기운은 정량적이다. 정성적이지 않다. 간단한 이치도 그동안 몰랐다. ‘양보다 질이다.’라는 해묵은 가치관을 무너뜨린 청송동. 정량적인 양이 넘쳐야, 정성적인 질의 가치를 만난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질의 가치만으로 행복을 운운했다. 인간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연의 경계는, 인간은 넘을 수 없는 미지[532]의 영역이다. 우리는 미지의 영역을 넘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외부적인 제약으로 다가가기 힘든 미지의 영역은 모두에게 존재한다. 다만, 외부적인 제약의 정도는 상대적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의 정도가 상대적이다. 인생에서 하나만 주어진 이는, 두 개를 가진 이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상상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긴, 나도 몰랐다. 청송동에 오기 전까지는. 무한한 상상으로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고 자신하는가? 꿈꾸는 모든 상상의 양은 외부적인 제약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구의 양분[533]을 섭취해 성장하는 인간은 이를 안다. 모른 척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지의 영역을 상상한다. 이를 건널 수 없는 한계라 상정한다. 한 개를 지닌 자는 노력해도 두 개를 지닌 자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 한계를 넘어서 미지의 영역을 확장하지 않는 한. 역설적이게도, ‘양보다 질이다.’라는 보편적 가치는 가혹한 우주에 내던져진 욕망의 결정체인 인류에게 보내는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정량적인 삶은 스스로 불행하게 하니까. 끝없는 비교의 수렁에 빠지게 하니까. 무지한 인류에게 정성적인 삶을 살라고. 두 개를 지닌 자의 삶을 이해하지 말라고.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개를 지닌 자의 정성적 삶과

두 개를 지닌 자의 정성적 삶은

정량적 삶에 따라,

깊이도 폭도 다르다.


자원봉사로 매일 발밤교회의 문을 연다.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어색한 교회라는 공간은 조금씩 익숙해진다. 무엇보다, 굳게 걸어 잠근 따뜻함의 정의를 이곳에 모인 다양한 사람과 만나면서 확장한다. 놀라운 변화다. 정말로 놀라운 변화다.


“준서 씨, 오늘은 무슨 책을 읽어줘?”

“쌤, 오늘은 뭐 읽어 주세요?”

“준서 군, 오늘은 달짝지근한 거로 부탁해.”

“준서 님, 날이 갈수록 책을 읽는 화술[534]이 좋아지네요.”

“준서 선생, 잘 부탁해요.”





적응이 안 된다. 호칭을 통일하든지. 그런데, 그런대로 듣기가 좋다. ~씨, ~님, ~선생,~군, 쌤 등, 모든 호칭에 따스함이 묻어서다. 그동안 만나던 사람은 독신세를 재촉하는 구청직원이 전부다. 사실, 그조차 고마운 일이다. 문을 쉴 새 없이 두드리며, 무언가를 떠들면서 재촉[535]하던 그들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유일한 위안이니까. 각자의 이유로 청송동에 모인 우리는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536] 실패자다. 특수학교로 보내 재교육을 받기에는 사상[537]은 큰 문제가 없다. 사상의 문제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모인 이들을 보노라면, 사회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통 사람과 섞이기에는 불완전하다. 청송동은 도시 살리기 정책의 일환이다. 거창한[538] 이유다. 많은 이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하는 정부의 배려라고 주야장천 [539]떠든다. 실상은 다르다. 청송동은 불완전한 이를 감시하는 특수학교의 분교[540]이다.

정부의 배려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라고 목사님은 말씀한다. 순진한 목사님이다. 정부의 감시자 역할로 이곳에 부임[541]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희망은 꿈꿀 수 있는 자의 몫이니,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은 아니다. 착하디착한 목사님은 오늘도 긍정적인 말씀을 한다.


“욥기 30장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아멘. 욥은 선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도 재앙이 닥쳤지요. 말씀처럼 욥은 절망[542]했어요. 그리고 고통을 호소했어요. 선한 행실에도 젊은 자에게 멸시당하는 이 현실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났다고, 그리고 외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욥은 자기의 삶은 흑암 속으로 던져진 가혹한 처지라 비관합니다.

욥의 이러한 탄식[543]은 우리가 느끼는, 인간의 고난[544]입니다. 인간의 외로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절망입니다. 불행은 늘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데도, 행운은 다른 이에게 머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545]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께 숱한 질문으로 자신의 불행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욥은 깨닫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나님이 계획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희망을 잃어갑니다. 무엇을 해도, 이해할 수 없으니, 무엇을 하지 않는 게 바른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지녀야 할 행복을 하나둘 포기하면서 사는, 수많은 어린 양이 대한민국에 그득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지극히 오묘하고 극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각자의 불행으로 이곳, 청송동에 모인 형제, 자매님,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의 사정을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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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낮에는 한글을 쓰며 밤에는 카테 잉글리시 영어작문을 가르치는 “하키토브”와 "나는 B급 소피스트입니다."를 집필한 안정호입니다. 많은 이와 즐거운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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