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5: #아방가르드-제로베이스, 5화

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by 카테난조




안녕하세요, 카테난조입니다. 집필은 상당 부분 진행했지만, 생업의 영향으로 업데이트가 늦습니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수선한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불안입니다. 불안은 우리를 시나브로 잠식해, 혁신이라는 허울아래 새로움에 탑승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잃는다는 공포의 선동을 자행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다가오는 불투명한 미래의 혼란으로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기보다는, 그동안 이루어냈고, 그 이루어낸 결과물로 이어지는 현재에 집중해 불안을 우리 안에서 몰아내기를 바랍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Episode5:

#아방가르드-제로베이스, 5화




7. 감시 아닌 감시로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잤다. 몽유병으로 또 다른 자해가,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서다. 30분마다 알람을 맞춰, 일어나고 자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깰 때마다 현재 있는 곳을 확인한다. 지금까지는 자리를 벗어난 흔적은 없다. 하지만, 쪽잠[631]으로 더는 버티기 힘들다. 주민센터에 전화해 도움을 청하자.


“안녕하세요, 이상화 씨 부탁합니다.”

“이상화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했나요?”

“안녕하세요, 김준서입니다.”

“안녕하세요, 청송동 생활은 어떠세요?”

“그럭저럭 지낼만합니다. 그나저나, 홈캠을 구할 수 없을까요?”

“홈캠이요? 무슨 용도로 사용하려고요?”

“개인적인 사정인데요, 말씀을 드려야 하나요?”

“사용 목적을 모르면, 도와주기 어려워요. 그리고 홈캠은 촬영한다는 뜻인데,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고요.”

“다른 용도요? 몰카를 말씀하세요?”

“아니요, 준서 씨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요. 의도를 명확하게 말씀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청송동에 산다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면 서운합니다.”

“설마요,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해요.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오해입니다. 그래도 사용 목적을 말씀해야 합니다.”

“그게...... 제가 몽유병일지도 몰라서요. 그래서 확인하고 싶어요.”

“몽유병이요?”

“얼마 전, 타박상을 입었는데요, 도저히 모르겠어요. 왜 타박상이 생겼는지를요.”

“상처는 어떠세요? 치료는 하셨어요?”

“뭐, 곧 나아지겠죠. 걸을 만합니다.”

“아니, 걷기도 불편할 정도 큰 타박상인가요? 주민센터로 오세요. 상주해[632] 있는 의사가 있어요. 상처 부위를 확인 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해요.”

“주민센터에 의사도 있어요?”

“작은 동네라, 병원이 들어오기는 어렵고, 겸사겸사해서요. 오늘 오세요. 치료는 늦을수록 안 좋아요. 홈캠도 알아볼게요.”

“고맙습니다.”


이상화 씨를 만난 이후로 주민센터는 첫 방문이다. 주민센터로 가는 길은, 탁 트인 해변의 정경[633]으로 솜씨가 아주 좋은 장인이 빗은 작품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국적이다. 에메랄드 물빛을 머금은 파스텔 파도는 잔잔한 마음에 낯선 파동을 전달해서다. 그래서 슬프다. 언제 급변할지 몰라서다. 육의 봉인은 대한민국의 지형[634]을 뒤틀었다. 소중한 과거는 묻히고 험한 새로움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땅의 분노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이의 가치관 또한 뒤틀린다. 발생지역의 예측도 피해 범위의 예상도 가늠하기 어려운 육의 봉인으로, 다가오는 미래는 큰 의미가 없어서다. 오늘의 아름다움을 내일의 눈동자가 그대로 담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부디 이번에는 땅의 분노를 피해 가기를 바랄 뿐이다.


현대인은 현재만 산다.

그래서 과거인을 저주한다.


그들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을 만끽해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아가더라도, 어색한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 때로는 안심이다. 우리 현대인은 죽음과 가까이 살아서다. 죽음과 친숙해서다. 평균수명은 의미가 없어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내일의 죽음을 준비한다. 다가오는 죽음에 초연하다.[635] 제로 베이스 정책도 그래서 가능하다. 무엇을 지키는, 소유가 허망[636]해서다. 물론, 가진 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를 해결하라고 부단히 노력한다. 오십보백보다.[637] 노력조차 허무[638]해서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애써 이를 무시하려 한다. 잊으려 부단히 애쓴다. 그래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육의 봉인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삼키어 새롭게 시작하라고 질책해서다. 현대인은 과거인과 다르게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려 한다. 난 자리는 정하지 못해도, 죽을 자리는 정하고 싶어서다. 그래서인가? 그래서 디파퓰리스트로 활동하는 자가 증가할지도 모른다.


“선생님, 이번에 이주한 김준서 씨예요. 밤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하니, 잘 좀 봐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준서 씨, 불면증인가요?”

“불면증은 아니고요, 그것도 불면증의 일종이라고 해야 하나요?”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수면 중에 돌아다니는, 몽유병인 것 같아요. 이도 불면증일까요?”

“몽유병도, 불면증도 수면 장애는 맞습니다. 다만, 몽유병은 수면 중 일어나지만, 불면증은 잠을 자기 힘든 상황이니, 다른 질병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가요?”

“몽유병이 예전부터 있었나요? 아니면, 최근에 큰 스트레스를 겪었다든지?”

“큰 스트레스는 모르겠고요. 청송동으로 이주한 자체가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입니다.”

“그래요?”

“여기 모인 사람들, 말은 안 해도,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적응자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잖아요. 언제 벗어난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냥, 뭐, 살아갑니다. 그냥저냥.”

“그렇군요.”

“여하튼, 몽유병 증세 중, 자해하는 일은 없을까요?”

“자해요?”

“가령, 신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다는지......”

“신체에 위해를 가한다는 의미가 모호하기는 합니다만, 벽에 부딪히거나, 넘어져 상처가 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직접적인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윗옷을 벗어, 상처 부위를 의사에게 보여 준다.


“선생님, 상처 부위를 확인해 주시겠어요? 수면 중에 일어난 상처라면 심각하지 않을까요?”

“이건, 자해라기보다는, 격투의 흔적인데요, 최근에 몸싸움이 있었나요? 이 정도 상처는 혼자서 만들기 어려워요. 보시면, 손이 닿지 않는 부위도 멍이 보이네요. 복부의 상처는, 당시에 쾌나 아픔을 느꼈겠다고 생각되는데요, 수면 중이라 하더라도, 깨지 않았을까요?”

“제 말이요, 저도 답답합니다.”

“일단, 수면 중 행동을 기록하면 좋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진단은 수면 검사가 필요합니다.”

“이상화 씨에게 홈캠을 부탁했어요. 설치 후, 수면 중 행동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게요.”


홈캠을 설치 후, 수면 중 행동을 살핀다. 이상화에게 아날로그 방식을 요구했지만, 바로 구할 수 있는 제품은 없었다. 남은 방식은 몸에 칩을 삽입해야 한다. 몸에 침을 삽입하는 작업은 절차가 까다롭다. 삼자를 보증인으로 정해야 해서다. 일단, 이상화를 보증인으로 삼는다. 아무런 저항 없이 흔쾌히 수락한다. 하긴, 청송동 내에서 보증인 역할을 할 사람은 마뜩잖다. 오늘부터는 움직임을 외부에서, 그러니까 이상화 역시 수면 중에 일어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다. 꺼림칙하다. 물론, 칩을 설치해 삼자의 관찰을 허용하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 정도 자유 보장은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다만, 모르는 이에게 침실을 공개하는 게 처음이다. 하긴, 찬밥 더운밥 가릴 때인가? 여기는 청송동이다. 어차피 말릴 만큼 말렸다. 감출 게 무어더냐. 실패한 40대 중반의 혼자인, 중년 남자의 모습이다. 이상화가 주의 깊게 관찰할 일도 없다. 언젠가부터 유민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앓던 이가 빠져서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궁금증은 더해 간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커튼으로 가려진 쇠창살

뾰족한 쇠창살 끝에 걸린

혐오스러운 진물과 섞인

형태가 없는 스산한 물체.


그 끔찍한 것이 다가온다.


그리고

나를 어루만진다.

괴롭다.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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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낮에는 한글을 쓰며 밤에는 카테 잉글리시 영어작문을 가르치는 “하키토브”와 "나는 B급 소피스트입니다."를 집필한 안정호입니다. 많은 이와 즐거운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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