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11. 하차감의 끝판왕인 자동차를 타고 왕족 놀이 중이다. 처음부터 아버지 일을 도왔어야 했다. 어설픈 의심으로 아버지의 능력을 무시했다. 생각해 보니까, 아직도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야반도주했는지 모른다. 주위 사람과 채무 관계에 얽혔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하지만 때마다 보내준 돈으로 그 채무 관계도 거의 끝나간다. 그렇기에 일부 빚쟁이와 돈독한 관계로 변한 거다. 빚쟁이 중, 우리 회사 제품과 관련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로 인해, 영업 실적도 다수 올렸다. 어찌 보면 이것도 아버지 덕분이다. 돈가스 사장님이었던, 남들보다 조금 돈이 많았던, 그가 지금은 거대한 산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산이 내 옆에 앉아 있다. 곧 다양한 질문이 내게 쏟아질 것 같다. 그리고 내 역량을 다양한 질문의 답변으로 가늠[59]할 것 같다. 아버지와는 20대 초반에 헤어졌기에, 아버지는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 거다. 원하는 게 있으면 온갖 떼를 썼던 그때의 나. 이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60]이다.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얼마 전, 다리에 뛰어내려 죽는다고 그 난리를 쳤다. 얼마나 한심하게 비쳤을까? 아버지의 사업 제안으로 중국에 왔다. 효상이와 우현 그리고 나를 위해 이곳으로 왔다. 아니다, 이는 다 핑계다. 날 혼자 두고 중국으로 야반도주한 아버지를 원망하러 온 거다. 아버지를 원망하여 속풀이를 하러 왔는데, 분명히 그러려고 왔는데, 그럴 수가 없다. 최종면접으로 밖에서 대기하는 기분이다. 제기랄, 아버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정자세로 앉는다. 부끄럽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아버지라기보다는 회사 사장님과 독대하는 기분이다. 아버지한테 잘 보이고 싶다. 이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인가?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너무나 낯설다. 왕족 놀이는 더는 할 수 없다. 그동안 맛볼 수 없었던 극락세계를 자랑하는 아버지의 자동차 좌석이 가시방석으로 변한다. 뭐 이렇게 떨리지? 하지만 이는 기분 좋은 떨림이다. 확실하다. 이미 난 이 기분을 몇 번 맛보았다. 승진 명단 리스트에 이름이 있을 때와 기분이 같아서다.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강하게 그리고 자극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우현아, 이건 기회야.
아버지가 무엇을 하자고 해도
무조건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해.”
12. 아버지 차는 한참을 달린다. 발달한 도시의 빌딩은 점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보기 어렵다. 일직선 도로 위로 달리는 빨간색 세단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긴 일직선 도로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육안으로는 곧게 쭉 뻗은 도로의 끝을 가늠할 수 없다. 일직선 도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버지를 힐끔 보았다. 눈을 감고 있다. 다시 아버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세월이 지나도 귓불이 두툼한, 크고 단단한 잘생긴 귀는 여전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주름살로 가득했다. 군데군데 검버섯도 보인다. 얼굴에 점이 저리도 많았던가? 영락없는 노인이다. 아버지도 그리 쉬이 살지는 않았나 보다. 깊게 팬 팔자 주름에 입꼬리가 축 처져 있다. 생각에 잠긴 듯하다.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혹시라도 내 모습에 실망해 사업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아버지와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재력을 일정 부분 확인했기에, 앞으로 펼쳐질 삶의 여정은 예전과는 다르다고 확신한다. 설사 어리광을 부리는 아들로 돌아간들 아버지가 나를 모른척하지는 않을 거다. 그게 원래 내 모습이다. 어쩌면 사업은 핑계고 아버지의 재기를 눈으로 확인하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래, 난 일정 부분 로또를 맞았다. 다만 1등은 아니다. 1등과 2등 사이라고 하는 게 맞다. 1등처럼 한꺼번에 큰 금액을 받는 게 아니지만 꾸준하게 2등 정도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효상이와 승기에게 면이 서지 않아서다. 그리고 조금은 높은 단계에서 승기를 내려다보고 싶다. 무시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다. 다만, 승기가 갇혀 있는 작은 세계관을 부수고 싶다. 스스로 철장 문을 걸어 감옥생활을 자처하는 승기가 안타까워서다. 더는 외롭게 두지 않으리라. 자기의 생각이 정의라고 믿는 승기에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 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라면 가능하다. 그러려면 승기와 효상이가 아버지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아버지에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난 1등을 원한다. 철부지 아들이 아닌 아버지의 조력자 역할로.
덜컹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덜컹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덜컹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덜컹 딸깍딸깍딸깍딸깍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덜컹 우우우웅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13. 유난히도 방지턱이 많은 도로다. 우회전 깜빡이를 켠 후, 아주 긴 다리로 진입한다. 마지막 방지턱을 넘어 차가 서서히 멈춘다. 가톨릭교회를 연상하는 고딕 양식의 거대한 철문 앞이다. 철문의 높이는 어림잡아 5m다. 철문을 넘어서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기에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철문 위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이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은 굉음을 내며 달팽이의 움직임을 연상하듯 아주 천천히 열린다. 안에서 사람이 무거운 문을 직접 여는 듯싶다. 검게 그을린 중국인 4명은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下午好,老板!!”
답답해 죽겠다. 도대체 뭐라는 거냐? 아버지는 차의 창문을 잠깐 열어 뭐라고 말한다.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도 중국어를 편하게 구사하는 아버지 모습은 멋지다. 철문 너머는 예상과 다른 풍경이다. 또 다른 도로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 걸까? 그렇게 한 5분을 더 달렸다. 그리고 5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으로 입이 떡 벌어진다. 온갖 수식어로 표현하고 싶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딱 하나다.
‘콘크리트 요새[61]’
to be continued....
[59] 가늠: 일이 되어 가는 모양이나 형편을 살펴보고 하는 짐작.
[60] 아킬레스건: 치명적인 약점의 비유.
[61] 요새: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조직적이며 견고하게 구축된 군용 시설, 또는 그와 같은 시설이 되어 있는 전략적 요지 [출처: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