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9: # 출장 4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9:

# 출장 4화






14. 콘크리트 요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요새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아도, 난생처음 펼쳐진 광경에 눈은 휘둥그레진다. 얼추 4층 정도 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차갑고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꼭대기 층을 제외하면 창문은 보이지 않는다. 창문 없이 건설한 이유가 있을까? 그래도 숨은 쉬고 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손바닥 정도 크기의 사각형 구멍은 군데군데 보인다. 무엇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려고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까? 검게 그을린 중국인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추 보아도 열댓 명은 된다.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자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하는 일을 멈추고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下午好,老板!!”





15. 직감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리고 확신한다. 아버지는 이곳의 주인이다. 차 안에서 그렇게 떨렸던 이유도 이제야 설명이 된다. 숨길 수 없는 아버지의 카리스마에 짓눌려서다. 내가 기억하는 돈가스 사장의 아버지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차 안에서 예상 질문의 답변은 어느 정도 준비했다. 대기하는 시간은 끝났다. 곧 최종 면접이다. 긴장을 늦추지 마! 임우현! 콘크리트 요새에서 한 여성이 뛰어나온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어머니다. 타지생활로 마음고생이 심했나? 아버지와 달리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어머니를.



“내 아들, 우현이 맞니? 정말 우현이니?

정말 우현이구나. 내 아들 우현이.

오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니?


어디 좀 보자. 어디 좀 봐. 정말 많이 컸구나.

엄마가 미안하구나. 엄마가 미안해.


그때 같이 왔어야 했는데... 어린 너만 혼자 남겨두고....

그동안 혼자서 헤쳐가느라 고생이 많았지?”





16. 그래, 이러한 대화가 15년 만에 만난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다. 상상한 이산가족의 상봉을 드디어 실현한다. 흐느끼며 말하는 어머니의 고해성사를 감정적으로 이겨낼 재간은 없다. 빚쟁이에 시달린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그토록 아버지에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20대의 철부지로 돌아간다. 어머니를 끌어안으니 눈물샘을 꽁꽁 묶은 고무줄은 자연스레 끊어진다.



“엄마, 왜 이렇게 마른 거야? 아버지는 저리 뚱뚱한데? 응, 나 힘들었어. 엄마, 나 많이 힘들었어. 왜 나만 남겨두고 가버린 거야? 내 편은 어디에도 없었어. 빚쟁이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철저하게 난 혼자였어. 외톨이였다고! 외톨이!!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마.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아버지는 우두커니 우리를 바라본다. 모자의 상봉을 감성적인 영화의 한 장면 정도로 생각했을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요새로 먼저 들어간다. 나약한 모습에 실망한 걸까?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 최종 면접이 남아있다. 눈물을 훔친 후, 어머니와 함께 요새로 향한다. 요새 안은 어떠한 모습일까? 너무나 궁금하다. 친구들과 다시 한번 오고 싶다. 승기와 효상이, 두 녀석 모두 깜짝 놀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승기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승기가 변해야 효상이도 변해서다. 눈앞에 펼쳐진 환경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의 뇌가 상상해 그려낼 수 있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게 상상 이상이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와....”



17. 도대체 오늘 몇 번을 놀라는가? 눈앞에 펼쳐진 내부 모습으로 단전[62]에서 우러나온 진한 탄성을 내뱉는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어떻게 내부를 이처럼 만들 수 있을까? 가운데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기둥 삼아 T자형으로 이루어진 내부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은 고급 병원을 떠오르게 한다. 내부가 이리도 크리라 예상치 못했다. 가정집이라 생각해서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족히 300m는 된다. 대리석 바닥을 바라본다. 얼마나 청소를 열심히 했을까? 얼굴이 다 비칠 정도다. 벽의 소재는 외부와 같다. 무늬 없는 회색 콘크리트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줄지어진 검은색 철제 책상과 파란색 노트북은 테헤란로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뻥 뚫린 한산한 느낌이다. 층고가 상당히 높아서다. 얼추 3층 높이는 되는 것 같다. 높은 층고에 매달린 수많은 원통 LED 레일 조명은 마치 CCTV를 연상케 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명 사이로 수십 개의 감시 카메라가 눈에 띈다. 음악이 흐른다. 잊을 수 없는 클래식 음악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메인 테마를 연상케 하는 웅장함, 강렬하고 폭발적인 연주에도 몸에 소름이 끼쳐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꼈던 음산함, 그리고 아름다운 평온한 선율에도 연주의 강약조절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했던 그 음악이다. 연예 시절, 와이프가 좋아했기에 유일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오페라.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또는 유령선 (Le vaisseau fantôme)의 서곡





18. 일하는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음악과 어울리는 옷차림이다. 한껏 그들의 맵시를 뽐낸 짧은 남자 머리의 대표적인 헤어 스타일인 리젠트 컷과 스와트 컷, 내근보다 외근이 어울릴 만큼 햇볕에 탄 얼굴, 숨쉬기 힘들어 보일 만큼 목을 죄는 밝은 파란색 넥타이를 맨 짙은 남색 정장 차림의 그들. 그들의 다부진 눈빛과 도도한 표정은 한눈에 보아도, 아버지와 일하는 오늘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효상이와 승기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사진을 찍으려 핸드폰을 들었다. 중국인 한 명이 다가와 손을 들며 소리친다.



“不可以! 禁止拍照!”


“우현아, 이곳을 촬영하면 안 된다.”



자상하게 말하는 아버지 목소리는 단호하다. 오히려 부드럽게 말하니 더욱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중국인에게 소리친다.



“对不起, 对不起, 对不起”



아버지가 소리치자마자 중국인은 고개를 숙이며 연신 이 말을 내게 반복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뉘앙스다. 아버지의 아들이어서 다행이다. 아버지 아들이 아니었다면, 어디론가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았을까?




“우현아, 사무실로 가자.”



19. 가운데에 있는 빨간 엘리베이터로 아버지와 함께 향한다. 신기하게도 엘리베이터에 버튼은 없다. 아버지는 손바닥을 펴 엘리베이터 문 옆에 있는 검은색 사각형을 누른다. 조금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은 열린다. 아무래도 생체인식 시스템이 있는 듯하다. 아버지 사무실의 모습은 여느 한국 가정집과 다르지 않다. 어머니가 살만한 공간이라서 다행이다. 어머니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는 오직 아버지만 사용할 수 있다. 어머니는 출입할 때 다른 문을 사용한다. 나 역시 어머니와 같은 문을 사용해 출입하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드디어 최종 면접이다. 어머니와 회포[63] 후, 준비했던 답변은 한 줌의 재로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40 세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공자는 말씀하셨다. 거짓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 감정은 월영산과 부엉산을 잇는 출렁다리와 같다. 출렁다리에 올라선 본 경험이 있는가? 70kg의 성인 1500명이 동시에 통행할 수 있는 하중을 버티는 안전한 출렁다리. [64] 안전하다고 확신하지만, 안전 밧줄을 있는 힘껏 꽉 잡아 손바닥이 얼얼해지는 희한한 경험. 300m 남짓인 길이가 3km처럼 느껴지는 기하학적 착시 경험.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임에도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험. 유리 멘털이다. 그런데도 주위 사람에게 태연하게 보이려는 상남자 코스프레. 그래, 맞다. 40세의 감정은 이렇게나 출렁거린다. 정신 차리자. 아버지에게 듬직한 아들로 비쳐야 한다. 더는 출렁다리를 걷는 기분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현아, 아버지의 사업을 말하기 전에, 확실하게 알아둘 게 있어. 이 일은 어느 정도 위험이 있어. 상황에 따라서 판단 실수가 커다란 손해를 가져올 수도 있고. 그러니 위험을 감수할 결심이 없다면 아버지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게 좋아. 며칠, 엄마하고 여행 좀 하든가. 굳이 같이 일하지 않아도 돼. 너한테 틈틈이 돈을 보낼 생각이니까.”



20. 첫 번째 면접 질문이다. 아버지의 질문은 처음부터 강공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라고 날 떠본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굳이 위험한 일을 하면서 수익을 만들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이 일을 참여하지 않아도 때마다 아버지가 돈을 보내 줄 거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승기에게 할 말이 없다. 승기에게 난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어서다. 승기의 마지막 희망을 꺾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인가요? 사실,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얼마 전에 큰 사기를 당해서 이를 만회[65]해야 하거든요. 아버지가 예전에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도 있고, 그래서 아버지도 볼 겸, 겸사겸사 찾아온 거예요.”



To be continued....



[62] 단전 (丹田): 배꼽 아래로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 아랫배에 해당하며 여기에 힘을 주면 건강과 용기를 얻는다고 함.

[63] 회포 (懷抱):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64] 금산 구청 관광명소 ‘월영산 출렁다리’

[65] 만회 (挽回): 바로잡아 돌이킴.